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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바 M&A 딜스토리]"엔고 영향 예외없다"…통찰력이 기회로① 도시바서 엘피다 SK에 공동인수 제안 인연…5년전 딜 가능성 포착

윤동희 기자공개 2018-05-31 08:20:24

[편집자주]

베인캐피탈 컨소시엄의 도시바메모리 인수는 글로벌 테크 M&A 역사상 가장 주목할만 한 거래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200억 달러에 육박하는 거래규모에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 지형을 바꿀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서다. 이같은 임팩트를 잘 아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도시바메모리를 경쟁자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속속 뛰어들며 많은 뒷이야기들을 남겼다. 그 이야기들의 중심에는 SK하이닉스가 있었다.

이 기사는 2018년 05월 28일 14:4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K그룹은 2012년 2월 하이닉스 인수를 마무리 지었다. 미묘한 시기였다. 2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SK하이닉스는 일본의 도시바로부터 엘피다 공동인수 제의를 받았다.

엘피다는 당시 D램 세계 3위를 자랑하는 기업이었으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매물 신세가 됐다. 도시바는 단독인수보다는 함께 메모리 개발 전력이 있는 SK하이닉스와 공동인수 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경영권은 도시바가 잡되 출자비율은 절반 정도로 맞춘다는 제안이었다. SK하이닉스는 본입찰 참가자격을 부여받았으나 실익이 없다면서 최종적으로 인수 의사를 접었다.

SK하이닉스의 통찰력은 여기서 빛났다. 엘피다 인수, 도시바와의 공동투자 등을 검토하며 SK하이닉스는 일본 IT전자산업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엘피다 사건은 일본 경제 전반의 위기에서 기인한 문제로 개별 기업이 더 이상 버텨낼 재간이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

2011년 말은 국내에도 일본의 전자산업 위기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한 시기다. 일본의 여덟 개 주요 전자회사 중 4개 회사가 적자를 기록했고 이듬해 실적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기까지 했다. 유럽 재정위기와 태국 홍수피해, 동일본 지진 등 거시적인 경제 상황과 자연재해의 여파가 컸다.

엔고 여파로 수출가격은 떨어지고 원자재 가격은 상승했다. 일례로 일본의 대표 전자회사 소니는 2011년 결산 손실 예상치를 600억엔에서 900억엔(약 1조원)으로 조정했다. 4년 연속 적자를 낼 것이란 의미였다. 수출기업에 불리한 환율 탓에·영업이익이 650억엔 줄었다고 했다. 파나소닉은 같은 해 4200억엔(약 5조원) 적자를 예상했다. 전자부품 제조 대기업인 TDK는 엔고 등 경영환경 악화를 이유로 인력의 12%(1만1000명) 감원계획을 밝혔다.

일본 재무성이 외환 시장에 개입할 정도로 사태는 심각했다. 특히 일본 반도체 업체들은 이익률 관리보다 기술개발에 집중해온 게 문제였다. 연구개발비에 과잉투자를 하는 기조가 오래 유지돼, 불황기에는 적자에 가까운 실적을 기록하고 호황기에는 이익이 나더라도 외사대비 현저히 낮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재무구조가 장기간에 걸쳐 악화됐고 지속적인 엔고 현상으로 부채를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을 잃어버렸다.

산업 전반에 걸친 약점이었다. 실제로 이 시기의 일본 반도체 회사는 모두 실적이 좋지 않았다. 엘피다는 매출이 절반이상 감소해 적자전환됐다. 엘피다처럼 NEC, 히타치, 미쓰비시의 합종연횡으로 만들어진 르네사스는 2011년 상반기 420억엔의 적자를 기록했다. 2012년 르네사스는 최대 1만명 인력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고 엘피다는 파산신청을 했다.

도시바는 르네사스나 엘피다처럼 분사나 통합 등 사업구조를 개편하지 않고 꾸준히 낸드플래시 메모리 개발에 투자해 일본 반도체 패권의 명맥을 유지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도시바 역시 당시에는 엔고 영향으로 2011년 4~9월 D램 사업 이익이 200억엔 감소했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도 일본 제조업체의 고질적인 문제와 엔고 풍파를 비껴가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에는 어떤 딜(deal)도 기약할 수는 없었지만 SK하이닉스는 도시바 이사회와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게 옳다는 판단을 내리고 이 때부터 일본 현지 뱅커를 섭외해 전략적인 네크워킹을 만들기 시작했다.

2017년 3월, 도시바 메모리가 매물로 나왔다. 비메모리 사업 매각은 수년 전에도 검토된 바 있지만 핵심 사업의 경영권 매각결정은 처음이었다. 도시바는 당초 메모리사업부의 19.9%만 매각할 계획이었으나 원전사업에서 빚어진 손실을 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SK하이닉스가 엿보던 기회가 5년 만에 도래한 셈이다. 도시바는 그 어느 기업들보다 SK하이닉스가 가장 잘 아는 반도체 회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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