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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업 성장 막는 '편견' [thebell note]

전효점 기자공개 2018-10-18 08:25:12

이 기사는 2018년 10월 17일 07:5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식품·유통업계 대표들을 줄소환하기 앞서 의원들이 공개한 신문 요지서는 업계에 대한 당국자들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공통적인 소환 사유는 '골목상권 위협'과 '갑질'.

대표들을 국감장으로 불러들인 소환 사유가 부당하다는 것이 아니다. 오리온의 노조 탄압 의혹이나 미스터피자의 가맹점 갑질 행태는 비판을 제기할 근거가 충분하다. 하지만 '골목상권 침해'와 '갑질', '상생 위협' 등 식품업계의 타락과 그에 따른 규제의 정당성을 주장할 때마다 유행어처럼 반복되는 단어들은 눈여겨볼 만하다. 그 기저에는 하나의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

제조·유통·가맹업을 막론하고 식품업은 영세한 사업이고, 영세한 사업이어야만 한다는 편견이 그것이다. 최근 한 제과업계 임원은 기자에게 왜 국내 식품업계가 연매출 100조원대 규모 네슬레가 나올 수 없는 구조인지에 대해 토로했다. 그는 "연매출 1~2조원만 돼도 시장의 독점자, 과점 기업이라는 불명예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세해야 한다'는 편견이 너무나 강력하다는 것이다.

국감장에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는 "국내 자영업자 수가 지나치게 많아 진입장벽을 높여야 한다"는 소신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국내 식품업계의 근본적인 문제는 대기업이 아니라 '보호해야 할' 영세 자영업자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수년 전 CJ제일제당과 오리온 등이 도전했던 '막걸리의 세계화'는 2011년 막걸리가 영세 양조업체들의 주장에 따라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좌절됐다. '두부의 세계화'도 마찬가지다.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 시행을 두 달 앞둔 지금 시점, 장류와 김, 김치가 같은 궤적을 밟으려 하고 있다.

한식 외 업종에서도 십수년 간 수천억원을 투자해 가며 글로벌의 벽을 두드리는 식품 중견기업들이 많다. 이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국내 시장의 취약한 기반이다. CJ제일제당을 제외하면 연 매출 2조원을 넘는 기업이 거의 없다. 영업이익률은 5%이하로 제조업 평균을 밑돈다. 수십 조원 단위의 기반을 가진 신생 중국 기업들과 경쟁하기엔 턱도 없는 토대다. 이날 백 대표는 의원들이 유행어처럼 되뇌는 '상생'의 허점을 지적했다. "양쪽이 다 잘 살도록 해야 하는 것이며, 한쪽에서 양보하거나 도와주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고 말이다.

물론 시장에서 과점 위치를 점한 '갑'들의 지위남용은 합당한 징계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과점이 갑질과 인과성은 있을지언정, 과점적 지위가 곧 갑질은 아니다. 약하다고 반드시 보호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듯 말이다. 포퓰리즘은 쉽다. 하지만 식품업계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좀 더 복잡한 고민을 해야 한다. 상생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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