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8년 10월 17일 08:0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왜 여성 대표·심사역 인터뷰 앞에는 여성이라는 단어가 붙나요? 남성 대표·심사역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으면서요"10년 이상 벤처 업계에 몸담아 온 벤처캐피탈 여성 대표 A씨의 얘기다. 남성 중심적으로 구축되고 있는 창업 생태계의 현실 일부를 보여준다. 최근 2~3년 전부터 벤처 투자 생태계는 여성에게 우호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각 벤처캐피탈마다 여성심사역을 1명 이상 채용하고 있으며 여성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벤처펀드 결성 규모도 당초보다 400억원 가량 확대됐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창업가들이 투자유치 과정에서 여성투자자나 금융전문가를 만날 가능성은 '하늘에 별 따기'다. 지난해 국내에서 투자 유치에 성공한 스타트업 중 여성 창업기업은 11%에 불과하며 전체 투자심사역 중 여성 심사역 비중은 7~8% 수준이다. 이는 투자생태계에서 '구조적 요인'을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투자시장이 몇십 년간 남성 위주로 이뤄져 온 만큼, 투자 프로세스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젠더불평등이 여성에게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관련 여성 인력이 적어 기회 자체도 불공평한 환경이다. 특히 많은 투자자가 여성창업가의 '사업 지속성'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한 여성창업가 B씨는 투자 심사 과정에서 대표 개인 역량이 아닌 "결혼과 임신 예정일을 묻거나 육아와 동시에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지, 여성만의 장점이 무엇인지" 등의 질문을 받았다고 하소연했다. 이는 사업평가 시 고려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단지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한 현 제도가 미비한 것일 뿐이다.
이런 젠더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액셀러레이터 'SOPOONG'은 올해 처음 쿼터제를 도입했다. 서류 선발 시 여성대표가 있는 팀의 비율을 일정 비율 이상으로 정해 놓고 최종 투자 결정시 최소 1개 이상의 여성 대표기업을 반드시 포함하는 등 기존 투자 심사 제도를 대폭 개선한 것이다. 아산나눔재단 등 유한책임투자자(LP)들도 여성창업가를 둔 기업을 우대 선발하거나 여성창업경진대회 등을 개최하며 기회를 만들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이 단발성에 그쳐서는 안된다. 더 많은 자본이 여성에게 지원될 수 있도록 투자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펀드를 신설하는 등 장기적 관점의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 투자 대상 선정과 심사 등에 있어 젠더 관점을 반영한 기준도 새롭게 도입해야 한다.
무엇보다 벤처캐피탈들의 여성심사역 채용이 절실한 시점이다. 여성 심사역의 존재만으로도 젠더편향적 인식이 완화돼 여성 기업 투자유치 확률을 높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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