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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기업지배구조 블랙홀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19-04-04 13:29:20

이 기사는 2019년 04월 04일 13:2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기업지배구조 논의는 원래 분배 논의다. 그래서 정치색이 짙고 세간의 관심을 많이 끈다. 대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는 정치 권력 문제만큼이나 흥미가 있다. 헌법개정 다음으로 상법개정이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는 이유다.

우선은 권한의 분배 문제다. 주주, 경영진, 종업원 누가 어떤 권한을 가지고 회사의 운영에 어떻게 참여할지를 정한다. 권한의 분배는 과실의 분배로 연결된다. 대주주가 경영자의 지위를 겸하고 회사가 생산한 결과를 부당하게 많이 가지고 가는지를 점검한다. 다음은 지배주주, 소수주주 간의 분배 문제다. 경영진 보수 문제와 노조의 경영 참여 문제, 이해관계자 이익 문제는 좀 더 큰 그림에서의 분배 문제다. 기관투자자 비중이 늘어나면서 대기업 기업지배구조는 자본시장 전체의 분배 문제가 되었고 국민연금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국민 전체의 분배 문제, 세대 간 분배 문제로 발전하고 있다.

분배가 공정하지 않으면 생산이 비효율적이 되고 여기서 악순환이 발생한다. 분배가 공정하지 않으면 분쟁이 발생한다. 평화와 인권이 파괴된다. 그래서 분배가 공정하지 않을 것이면 아예 분배할 것이 없는 편이 낫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기업지배구조는 기업이 잘되게 하는 수많은 요소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중요성 순위를 따지자면 최상위권에 들지도 못한다. 가장 중요한 기업의 성공요소는 물론 기술이다. 다음은 인재의 발굴과 양성, 교육이다. 그리고 물건을 열심히 잘 팔아야 된다. 좋은 기업지배구조는 아마 그다음 순서쯤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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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업지배구조가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은 맞다. 사회적 가치도 창출한다. 그러나 다른 조건들이 같을 때 이야기다. 더 큰 조건인 거시경제와 기술력의 악화로 생산력과 기업가치가 크게 낮아질 때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이 기여할 여지는 크지 않다. 따라서 그런 시기에는 무리하게 기업지배구조에 집착할 필요는 없고 그룹 전체를 개편하는 것 같은 큰 작업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현대자동차를 염두에 둔 것이다. 지금 큰 쓰나미가 몰려오는 것 같다. 생산량 감소, 대규모 영업손실, 리콜, 경쟁사들 약진 등 악재가 수두룩하다. 온라인 여론을 유심히 살펴보아도 기업지배구조 문제나 경영권 승계 문제보다는 품질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훨씬 많이 눈에 띈다. 그래도 리더십은 반드시 정비해야 했기에 어렵사리 올해 주총 시즌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당분간 회사의 내실 다지기에 주력하는 것이 옳아 보인다.

이 마당에 작년과 같은 큰 그림 그리기를 다시 들고나올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하면 정작 회사에 더 중요한 문제가 퇴색되고 행동주의 주주들과의 전선만 넓어질 것이다. 경영과 조직의 집중력이 흐트러질 가능성도 다분하다. 기술개발과 품질 점검, 판매에 매진해야 할 인적자원이 주주총회 준비에 동원된다. 기업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2~3년의 시간을 두고 진행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올해 주총이 ‘성공적'이어서 내친김에 지배구조 개편도 마무리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주총은 특수한 상대와의 겨루기였다. 주주들도 어느 쪽을 지지하는가의 문제를 받아들었을 뿐이고 선택은 의외로 쉬웠다. 반면, 그룹 기업지배구조 재편은 훨씬 더 어려운 분배 고차방정식이고 주주들이 양자 간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찬성이나 반대를 하는 문제다.

사실 기업지배구조개편은 정부가 압박해서 그렇게들 하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상대적으로 덜 시급한 작업이다. 순환출자구조가 지속된다고 해서 바로 분배가 불공정해지지는 않는다. 낙후된 기업지배구조는 그에 내포된 위험성이 문제이지 악용되지만 않는다면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일단 투명성을 높이고 주주,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처하고 조만간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임을 인정하고 있으면 된다. 정부도 지금의 경제 상황에서 딱히 채근할 것 같지는 않다. 정부는 순환출자 같은 구조적 측면보다는 일감몰아주기 같은 행위적 측면 규제에 치중해야 옳다.

다시 강조하자면 기업은 기술이 최우선이다. 지금 미국에서는 온통 인공지능(AI) 이야기뿐일 정도다. 기업과 대학들이 다투어 연구과 개발에 뛰어든다. MIT에서는 천 명이 넘는 인재들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고 1조 원 이상을 투자해 아예 단과대학을 만든다. AI 연구프로그램이 있는 대학을 나열한 한 리스트에 약 30개국이 나오는데 아직 한국은 없다. 미국에서는 약 100개 대학이 AI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뒤처지면 분배를 논의할 기초조차 없어질 것이다. 기업지배구조가 블랙홀이 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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