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세·관리감독 배제…의무 없이 실속만 [한국물 무면허 영업 점검]자본금·고용 등 국내 투자 제로…라이선스 무용론도 대두
피혜림 기자공개 2019-04-09 13:00:00
이 기사는 2019년 04월 08일 07:0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무인가 외국계 하우스의 한국물(Korean Paper·KP) 시장 잠식으로 국내 자본시장 생태계가 흔들리고 있다. 국내에 증권 라이선스가 없는 하우스의 경우 과세는 물론 직원 고용, 국내법에 따른 관리·감독, 자본금 투하 등의 각종 의무에서 제외된다. 한국물 시장에서만큼은 국내 투자 없이도 수익을 내는 데 제약이 없다. 정정당당하게 허가를 받은 외국계 IB의 국내 시장 진입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한국물의 주요 발행사인 공기업과 국책은행 역시 대부분 형평성 등을 이유로 주관사 선정 시 라이선스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직접 라이선스가 없는 외국계 하우스에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뿌리는 등 증권업 인가의 주체마저도 무면허 한국물 영업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이다. 증권업 인가를 받은 하우스에 대한 역차별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수익은 국내, 세금은 해외?…제약없는 무면허 IB
더벨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물 시장의 전체 발행물량은 276억 6462만달러(약 31조원)였다. 통상적으로 한국물 주관사가 30~50bp 가량의 수수료를 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해당 분야에서 나온 주관 업무 수익만 최소 8293억달러(약 943억원) 규모에 달하는 셈이다.
문제는 국내에 증권 라이선스가 없는 곳의 경우 해당 수익을 과세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무면허 외국계 하우스의 경우 통상적으로 홍콩 지점에 배치한 부채자본시장(DCM) 뱅커가 국내를 방문해 주관 업무를 하는 형태다. 뱅커가 홍콩지점에 소속된 탓에 국내에서 발생한 수익 역시 홍콩 소득세로 부과된다.
무면허 하우스의 경우 국내에 자본금 납입 등 일정 수준을 투자할 의무 역시 없다. 국내에서 금융업 인가를 받기 위해서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최저 자기자본을 납입하고 국내 직원을 고용해야 한다.
반면 라이선스가 없는 외국계 IB의 경우 해당 의무에서 자유롭다. 자본금 투입과 직원 고용 등 일정 수준의 투자를 하지 않고도 국내 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셈이다. 정부 기관의 관리·감독에서도 배제돼 있어 국내 규정을 지키며 업무를 진행해야하는 증권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업하기가 용이한 환경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본금을 납입하고 한국 법규에 따라 영업을 하는 하우스와 무면허 하우스 간 영업의 차이가 없다보니 라이선스의 효용성에 의문이 든다"며 "라이선스를 받을 경우 주 52시간 근무제 등 각종 규제 아래에 놓이게 돼 도리어 불리한 환경"이라고 말했다.
◇정부·공공기관, 라이선스 고려 안 해…공정성 vs 역차별
금융업 인가 제도를 마련한 정부 역시 한국물 발행에 있어서만큼은 라이선스에 대한 문제의식이 희박한 상태다. 2017년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 당시에는 기획재정부가 주관사 선정을 위한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라이선스 없는 외국계 하우스에 보내기도 했다.
한국물 시장의 주요 발행사인 국책은행과 공공기관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달 한국주택금융공사는 외화 커버드본드 발행을 위한 주관사로 증권업 라이선스가 없는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을 선정했다. 한국주택금융공사는 물론 대부분의 공공기관과 국책은행은 주관사 선정을 위한 평가 기준에 증권업 라이선스 유무가 포함되지 않는다. 무면허 외국계 하우스와 금융업 인가를 받은 하우스가 동일선상에서 평가받는다.
국가기관과 공공기업 등이 왜곡된 공정성에 빠져 스스로 금융업 인가 제도의 취지를 해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부분 선진국가들이 증권 라이선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점과는 대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홍콩, 싱가포르, 런던 등의 경우 관련 업무 시 라이선스를 보유한 자국 지점 인력과 동행하게 하는 등 관련 절차가 엄격하다"며 "반대로 한국은 증권사 간 형평성 등을 이유로 차이를 두지 않아 라이선스를 받아야 할 필요성조차 사라지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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