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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의 글로벌 오토게임]피아트의 5세 경영권 승계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19-05-07 15:49:26

이 기사는 2019년 05월 07일 15: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에서 대기업 3세 경영 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그런데 가업 승계, 나아가 계열 분리에는 본질적인 제약이 있다. 먼저, 자손의 수가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중에 경영능력을 갖춘 재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기업은 이제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 잘 경영해 나가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복잡하다. 첫 번째가 충족되면 두 번째도 용이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상속을 포함한 가족들간 분쟁이 생길 가능성도 같이 높아진다.

바라건대 능력이 출중한 전문경영인이 영입되어서 가업을 승계한 3세와 다름없이 회사와 주주에게 잘하면 좋겠다. 가능할까? 해외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그런 기적 같은 경우가 가끔 발생한다. 반대로, 전문경영인이 지나치게 개성이 강하고 의욕에 넘쳐서 줄곧 대주주 가족 구성원들과 마찰을 빚는 경우도 있다. 이 문제는 우리 기업들도 곧 부딪히게 될 문제다.

1899년 지오반니 아넬리 주도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창업되고 1910년에 이미 이탈리아 최대의 자동차회사가 되었던 피아트(Fiat)가 좋은 사례다. 피아트는 단순한 자동차회사가 아닌 거대 복합기업이다. 한때 이탈리아 GDP의 4.4%, 총고용의 3.1%, R&D 투자의 16.5%를 담당했다. ‘피아트에 좋은 것이 이탈리아에 좋은 것이다'는 슬로건이 통하는 지경이었다.

창업자의 손자 지아니 아넬리(Gianni Agnelli, 1921~2003)는 피아트의 대주주 겸 경영자였다. 부친이 회사에 관심 없이 스포츠와 레저를 과하게 즐기다가 사고로 사망하는 바람에 일찍이 가업을 승계했다. 이탈리아 현대사에서 가장 부자였고 대기업의 회장이라기보다는 제왕과 같은 이미지와 사회적 지위를 가졌던 사람이다. 대중적인 인기가 대단해서 많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넬리를 ‘이탈리아 왕'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7남매 중 둘째였던 아넬리는 2차대전에 참전했고 타고난 엄격함과 절제, 명석함과 교양으로 해외에서 가장 저명한 이탈리아인이었는데 키신저와 록펠러를 포함한 글로벌 정치인, 기업인들과 폭넓은 교분을 가지면서 이탈리아의 외교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근사하게 사느라 회사의 경영에는 별 관심과 시간이 없었다.

이 대목에서 비토리오 발레타가 등장한다. 발레타는 피아트의 경영을 총괄하면서 아넬리가 회사 밖에서 바쁜 것을 좋아한 만큼 회사를 경영하는 것을 좋아했다. 발레타는 오너 수준을 넘는 철권통치자로 원성도 자자했다. 노조 결성 움직임이 있자 한꺼번에 2000 명을 해고해 버린 적도 있다. 그 대신 종업원 주거시설과 어린이집을 짓고 건강보험과 은퇴 후의 복지를 챙겼다. 무엇보다도 고위직 은퇴 정년을 정해서 엄격히 집행했다. 회사에 인사적체가 없었다.

발레타는 1966년에 은퇴했는데 발레타의 재직기간 동안 피아트는 1945년에 연 3260대의 차를 생산하던 회사가 매일 그만큼을 생산하는 회사로 커졌고 외형은 15억 달러가 되었다. 유럽 평균의 두 배 이상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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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타 은퇴 후 카를로 베네데티가 영입되었다. 그런데 너무 열심이었다. 아넬리가 좀 ‘살살하라'고 했음에도 지나치게 서둘렀다. 결국 100일 만에 떠나 올리베티로 갔다. 아넬리는 할 수 없이 직접 회사를 경영하기 시작한다. 그 무렵 피아트는 폭스바겐을 추월해서 유럽 최대가 되어 있었다. 크라이슬러를 제치고 GM과 포드에 이어 글로벌 넘버3가 될 참이었다. 아넬리는 지름길을 택했다. 미쉐린으로부터 지분을 인수해서 프랑스 시트로엥과의 합병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작업은 5년 만에 실패로 끝났다.

그러자 피아트에 두 번째 행운이 찾아왔다. 쎄사레 로미티가 나타난 것이다. 노련한 로미티는 정부와 의회를 잘 ‘관리'했고 알파로메오를 인수하면서 포드의 이탈리아 시장 진출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아넬리는 우아하게 있었고 로미티가 악역을 다 떠맡았다. 아그넬리 은퇴 후 로미티는 이사회 의장이 되었다.

하버드대의 역사학자 란데스 교수는 가족기업의 역사에 관한 책(Dynasties, 2006)에서 좀처럼 일어나기 어려운 행운이 피아트에 두 번이나 찾아왔다고 논평한다. 유능하고 헌신적이지만 절대로 오너의 위치를 넘보지 않는 전문경영자와의 만남이다.

잘 되는 기업에는 행운이 따른다. 즉, 3세가 재능이 있고 에너지가 넘치는 행운이다. 그러나 그런 행운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그래서 전문경영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피아트와 마찬가지로 가족기업의 속성을 보전해 내려온 미국의 포드자동차에서는 가족들과 전문경영인들이 회사 경영의 주도권을 놓고 지속적으로 마찰을 일으켰다.

아넬리는 로미티 이후의 회사 경영을 누구에게 맡길지로 고심했다. 아들은 회사에 관심이 없었고 자유분방했으며 보수적인 이탈리아 사회에서 동성애자로 고통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는 동안 피아트는 쇠락을 계속했다. 2000년에는 지분 20%를 GM에 매각하기까지 했다.

딸들에게 회사를 물려주지는 않는 것이 이탈리아의 분위기여서 아넬리는 조카를 후계자로 낙점했는데 암으로 요절해버렸다. 그다음으로 외손자 존 엘칸을 후계자로 낙점했다. 지금 43세인 엘칸이 피아트 경영자다. 피아트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 도산한 크라이슬러를 2009년에 인수한 후 2014년 FCA의 자회사로 재편되어서 글로벌 8위로 오늘에 이르지만 고전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2015년에는 페라리를 독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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