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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의 글로벌 오토게임]피아트제국의 전문경영인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19-06-10 08:17:30

이 기사는 2019년 06월 10일 10: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피아트제국, 즉 아넬리 다이너스티의 ‘총수'는 존 엘칸(John Elkann)이다. 1976년생이다. 아마도 글로벌 자동차회사 이사회 의장들 중 가장 젊을 것 같다. 2003년에 타계한 ‘이탈리아 왕' 지아니 아넬리의 외손자다. 국제적인 교육을 받은 인물이다. 모친이 이탈리아인이지만 뉴욕에서 출생했다. 영국과 브라질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파리에서 바칼로레아를 치렀다. 토리노공대를 나왔다. 이렇다 보니 4개 국어를 한다. 정작 이탈리아어가 좀 이상하다고 알려진다.

지아니 아넬리는 동생 움베르토의 아들 알베르토를 후계자로 지명했는데 알베르토가 희귀병으로 갑자기 사망했다. 33세였다. 그래서 엘칸이 21세에 피아트 이사회에 들어오면서 후계자가 되었다. 1997년이었다. 그런데 피아트의 후계자로 이사회에 들어온 다음에도 릴리와 GE에서 일을 한 것으로 나온다. (필자가 알던 한 크레디스위스의 전무도 나중에 알고 보니 스위스에서 가장 큰 맥주회사의 최대주주이자 이사회 의장이었다.)

2003년 아넬리가 세상을 떠나고 다음 해 엘칸이 아넬리패밀리의 투자회사 엑소르(Exor) 이사회와 피아트 이사회의 부의장으로서 본격적으로 회사 일을 시작했을 때 지나치게 젊었기(어렸기) 때문에 피아트 경영진 모두가 엘칸에 우호적이었고 도와주려고 했다. 아무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나이가 한 40만 되었더라도 모든 것이 달랐을 것이라고 엘칸 스스로가 말한다.

당시 피아트는 위기 상황에 있었다. 주세페 모르치오가 CEO였는데 유능했지만 욕심이 있어 이사회 의장 자리까지 요구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회사를 떠나겠다고 어르고 있었다. 아넬리패밀리는 외부인에게 전권을 주는 데 거부감을 느꼈다. 그래서 세르지오 마르치오네(Sergio Marchionne, 1952~2018)가 CEO로 영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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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치오네는 스위스 제네바의 품질관리회사 SGS의 CEO였는데 2003년에 피아트의 사외이사로 선임되었었다. 마르치오네의 CEO 영입에는 엘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자동차회사 경영 경험이 전무했던 마르치오네는 처음에 고사했으나 결국 수락했고 피아트를 살려냈다. 그리고 나중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도산한 크라이슬러도 살려내 2014년에 오늘날의 FCA를 탄생시켰다. 엘칸은 운이 좋았던 동시에 전문가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는 유능한 인물로 기록되었다. 사주로서는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엘칸과 마르치오네의 관계는 헨리 포드 2세와 멀러리의 관계보다 더 가깝고 우호적이었다. 모든 것을 같이 상의했다. 엘칸은 노련한 경영자인 마르치오네를 전적으로 신임했다. 마르치오네는 아넬리패밀리의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회사뿐 아니라 아넬리패밀리까지 변모시켰다. 엘칸은 마르치오네와 함께 해외사업을 확장함으로써 피아트를 이탈리아 회사에서 글로벌 회사로 발전시켰다.

피아트 내 또 한 사람의 저명한 전문경영인은 지아니 아넬리 타계 시에 피아트 이사회 의장이었던 몬테체몰로(Montezemolo)다. 피에몬트 귀족의 후손으로 피아트 카레이서 출신이다. 피아트에 입사했다가 1973년에 페라리로 옮겨 엔조 페라리의 조수가 되었다. 페라리가 카레이싱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두면서 몬테체몰로도 피아트그룹 내에서 승승장구했다. 엔조 페라리 사망 후 회사가 고전하자 아넬리는 몬테체몰로를 페라리 CEO에 임명했고 페라리는 위기에서 벗어나 좋은 실적을 냈다. 1997년에 마세라티를 인수했고 2000년에는 1979년 이래 처음으로 포뮬러원에서 우승했다.

몬테체몰로는 2004년 움베르토 아넬리 사후에 피아트 이사회 의장이 되었다. 2010년에 엘칸이 이사회 의장이 되면서 몬테체몰로는 페라리 이사회 의장 겸 CEO 자리만 가지고 있었는데 마르치오네와의 알력이 심해져서 2014년에 그만두고 이탈리아 국적항공사 알리탈리아 이사회 의장으로 이동했다. 2015년에는 국제모터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엘칸-마르치오네 콤비가 피아트와 크라이슬러를 위기에서 구해내기는 했지만 회사의 상황이 녹록한 것은 아니다. 2015년에는 GM에 FCA와의 합병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일도 있다. 철회하기는 했지만 FCA와 르노의 50:50 합병제안도 그 연장선에서 보면 될 듯하다.

마르치오네는 가족경영기업 내에서 가족 구성원들과 전문경영인의 관계가 어때야 하는지, 전문경영인의 역할이 어디까지일 수 있는지를 가장 모범적으로 보여준 인물로 기록되었다. 2018년 7월 마르치오네가 갑자기 병상에 누웠을 때 피아트는 비상승계계획을 마련해 두었지만 같은 달 마르치오네의 사망 소식으로 피아트 주가는 급락했었다.

마르치오네가 떠난 FCA를 엘칸이 어떻게 이끌어갈지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르노와의 합병안은 아마도 마르치오네와 같이 작업한 계획일 것이다. 아넬리패밀리는 베네데티, 로미티, 그리고 몬테체몰로에 이어 마르치오네까지 네 번이나 탁월한 전문경영인을 만난 보기 드문 행운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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