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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의 사명감, 이름자 걸고 가치투자 이식하다 [한국투자금융을 움직이는 사람들]⑫철학 담아 '동원밸류 이채원펀드' 결성…저위험 중수익 시장 뿌리

양정우 기자공개 2019-06-24 13:00:00

[편집자주]

한국투자금융그룹의 슬로건은 'VISION 2020 아시아의 선도금융기관'이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굴지의 금융그룹으로 자리잡았고 이제 글로벌 투자은행과 어깨를 견줄 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 71억원에 인수한 중소 증권사를 자산 71조원의 거대 금융그룹으로 일군 입지전적 인물들이 있다. 한국투자금융그룹을 이끌고 있는 핵심 인력의 면면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19년 06월 18일 10:2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경제학자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주식시장을 미인대회에 비유했다. "주식 투자는 미인대회에서 가장 예쁜 여자를 고르는 게 아니라 1위에 오를 여자를 고르는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 미인이 아니고 평균적으로 가장 예쁘게 느낄 사람도 아니다. 미인대회 투표자, 즉 시장 참여자가 1등으로 뽑을 미인을 맞추는 게임이다.

그러나 그 누가 이런 예지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할 수 있겠는가.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사장, 사진) 역시 도저히 자신이 없다고 손을 내젓는다.

그가 게임처럼 예측으로 도박을 거는 대신 내린 결론은 가치투자였다. 투기가 아닌 투자를 하는 것. 돈을 벌려는 마음을 버리고 돈을 잃지 않고자 노력하는 것. 기업의 내재가치(Instric Value)를 믿고 가슴을 뛰게 하는 기업을 찾아내는 것. 옛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의 말단 사원이 품은 가치투자에 대한 신념은 이제 국내 대표 운용사인 한국투자밸류운용으로 자라났다.

◇주식에 미친 증권사 영업직원…한국의 가치투자 선구자로 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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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 대표가 첫 직장으로 증권사를 선택한 데 거창한 포부는 없었다. 다만 경영학도로서 이공 계열보다 경쟁력을 갖춘 업종을 고민했을 뿐이다. 아무래도 제조업보다는 금융업이 낫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주식시장 플레이어로서 영업점에 실전 배치되자 특유의 집중력과 열정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당시 주식에 완전히 미쳤다고 말한다. 상장기업 600곳의 종목코드를 모조리 외우고 있을 정도였다. 투자 정보의 밑천이 되는 상장기업편람을 탐독하며 밤을 지샌 나날이었다.

열정이 가득했던 신출내기 영업사원은 일본 동경사무소로 배치되면서 투자 운명이 뒤바뀐다. 외국인 매매 패턴을 보며 시야를 넓히다가 워런 버핏의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의 저서를 접한 것. 가치투자에 대한 그의 각성이 이뤄진 시점이다. 이채원 대표는 그레이엄이 집대성한 가치투자의 철학, 논리, 실증을 살펴보며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고 한다.

주식은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사람의 심리에 따른 수급을 통해 가격이 결정된다. 주가가 오를수록 투자자가 앞다퉈 베팅하고 떨어질수록 외면을 받는다. 가치투자자는 여기서 시장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는다. 기업엔 저마다 결국 주가가 수렴되는 내재가치가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핫'한 주식의 모멘텀에 뛰어들 때 오히려 매도를 선택해 찬물을 끼얹는다. 냉정한 밸류에이션으로 헐값에 주식을 사 제값에 파는 게 가치투자의 본질이다.

이채원 대표가 가치투자에 전율을 느낀 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을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워런 버핏은 가치투자가 사람들에게 즉각 먹히거나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이 흥미롭다고 말한다. 흥분과 환희를 주식 투자의 원동력으로 여기는 투자자는 가치투자 콘셉트에 쉽게 설득되지 않는다. 고객의 재산 앞에 한없이 소심한 이 대표였기에 가치투자를 가뭄의 단비처럼 여겼을 것이다.

◇국내 최초 가치투자 펀드 '동원밸류 이채원펀드'…6년 운용 'K-펀드' 결실

이채원 대표는 옛 동원투자신탁운용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펀드매니저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의 지향점은 가치투자였지만 아직 체화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1996년 온갖 작전주가 판을 치던 시절 급등주와 테마주에 휘둘리지 않는 정도였다.

하지만 1997년 국내 주식시장이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자 다시 한번 가치투자에 확신을 갖게 됐다. 그리고 운용 포트폴리오의 전면적인 방향 선회를 결정한다. 1998년 말엔 국내 최초의 가치투자 전용 펀드인 '동원밸류 이채원펀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물론 이 대표가 가치투자 전문 펀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매달렸기 때문이다. 당시 삼성전자와 SK텔레콤, 롯데칠성, 유한양행 등 '저PER(주가수익비율)주', '저PBR(주가순자산비율)주'를 쓸어담아 1년이 채 안돼 130%에 육박하는 수익률을 올렸다. 그 때 국내 펀드 중 최고 수익률이었다.

이채원 대표가 국내 시장에서 가치투자 전문가로 자리를 굳힌 시기는 2000년~2006년이다. 동원증권 주식운용팀장을 맡아 회사 돈(고유계정)으로 조성한 'K-펀드'를 운용해 드라마틱한 결실을 거뒀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의 신뢰를 받아 론칭한 펀드였다. 6년여 간 누적 수익률이 435%에 달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수익률은 56.4%에 불과했다. 이 대표도 평소 이 6년의 시간을 가치투자자로서 모든 역량을 바쳐 일한 시기로 꼽고 있다.

가치투자자는 장기 투자에 승부를 건다. 길게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주가가 기업의 내재가치에 부합하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아무리 가치투자자라도 시장이 출렁일 때마다 어찌 한결같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 대표 역시 펀드 수익률이 하락할 때마다 심리적 압박을 받아왔다. 기술주 버블 당시 수익률이 급락했을 때는 사표를 쓸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끝까지 가치투자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채원 대표는 일생에 걸쳐 큰 도움을 준 사람으로 김남구 부회장을 꼽는다. 국내외 크고 작은 이슈와 단기적 부진에 부딪힐 때마다 심한 압박감을 받았다. 하지만 다시 주식을 운용하기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김 부회장이 다른 길을 열어줬고 이 대표는 한 단계 더 성숙해질 수 있었다.

◇가치투자 철학담은 한국밸류운용 설립…'로우 리스크 미디엄 리턴' 대표 주자

이런 이채원 대표의 투자 철학을 기반으로 한국투자금융그룹에 새로운 계열사가 설립됐다. 2006년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이 문을 열었다. 출범 당시 무리한 시도라는 내부 시각도 있었지만 김남구 부회장은 이 대표의 뚜렷한 신념에 힘을 실어줬다. 전폭적인 지원을 토대로 '한국밸류 10년투자 증권투자신탁1호(이하 한국밸류 1호)'을 선보였다.

올해 4월 말 기준 한국밸류 1호의 설정 후 수익률은 143%에 이르고 있다. 동일한 유형, 투자기간을 보유한 펀드(219개) 가운데 11위에 위치하고 있다. 코스피 수익률(54.9%) 기준 초과 수익률은 88.1%에 달한다. 실제 수익률은 연평균 복리 기준 10% 수준으로 이 대표의 초기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

이채원 대표는 올해부터 본격화되는 스튜어드십 코드와 최근 부각된 행동주의 자본에서 새로운 흐름을 엿보고 있다. 지난해 공모 사회책임투자(SRI) 펀드(한국밸류 10년투자 주주행복)를 출시했고 지난달엔 SRI 사모펀드인 '한국밸류 사파이어 밸류업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를 내놨다. 가치투자의 틀 안에서 사회책임투자 라인업을 갖추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가치투자가로서 명성을 쌓아온 이 대표는 역설적으로 가치투자가 최선의 방법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한다. 끝까지 고수해온 투자 원칙이지만 완벽한 투자법은 없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주식시장에서 겸손을 깨우친 그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가치투자자의 전형으로 여겨진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

<학력>
△1964년 출생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중앙대학교 국제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경력>
△1988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 국제부 역외펀드 운용
△1996 동원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본부장
△2000 동원증권 주식운용팀장
△2005 한국투자증권 자산운용본부장
△2006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 및 최고운용책임자(CIO)
△2018~현재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이사 및 최고운용책임자(C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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