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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의 글로벌 오토게임]마세라티와 페라리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19-08-12 07:54:18

이 기사는 2019년 08월 05일 10:25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탈리아의 마세라티는 알피에리 마세라티(Alfieri Maserati, 1887~1932)가 네 형제와 함께 1914년 볼로냐에서 창업한 회사다. 볼로냐의 마지오레 광장에는 바다의 신 넵튠(포세이돈)상이 있는데 삼지창(trident)을 들고 있다. 삼지창은 마세라티 5형제의 한 친구의 제안에 따라 1920년에 마세라티의 로고가 되었다.

알피에리 사후 형제들이 이끌어 가다가 1937년에 아돌포 오르시(Adolfo Orsi, 1888~1972)패밀리에 매각되면서 오늘날의 회사 본부가 있는 모데나로 회사를 이전했다. 모데나는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고향이기도 하다. 역시 5형제의 장남이었던 오르시는 무학에 자수성가 해서 1920년대에 약 3천 명을 거느리는 기업가가 되었던 인물이다. 그 중에는 피아트 대리점도 포함되었다. 나중에 오르시는 마세라티 오너로 더 잘 알려지게 된다.

1950년대에 카레이싱 광이었던 아르헨티나의 페론 대통령이 마세라티에 다량의 기계 주문을 보내 마세라티에는 활기가 넘쳤다. 그런데 페론은 실각하고 망명을 해 버렸고 마세라티는 수금에 애를 먹었다. 비슷한 일이 스페인 정부와도 일어났다. 마세라티는 결국 채권단 손에 넘겨졌다.

마세라티는 1968년에 프랑스의 시트로엥이 인수했지만 오르시가 계속 경영을 맡았다. 오일쇼크로 1974년에 시트로엥이 도산한 후 PSA가 탄생하면서 마세라티도 PSA의 브랜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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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에 PSA가 돌연 마세라티 브랜드를 정리하겠다고 발표해서 소란이 일어났다. 노조, 모데나 시장, 지역 정치인들이 800개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고 이탈리아 산업부 장관이 파리로 날아가서 PSA 회장과 면담까지 했다. 그 결과 이탈리아 정부가 6개월간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조건으로 정리가 보류되었다가 마세라티 자산은 이탈리아 정부 소유 지주회사인 GEPI에 이전되었다.

이 대목에서 아르헨티나의 실업가인 드토마소(De Tomaso)가 공동투자자로 나선다. 드토마소는 카레이서 출신이다. GEPI가 88.75%, 드토마소가 11.25%로 정리되었다.

1984년에 크라이슬러가 마세라티 지분 5%를 취득하면서 등장했다. 1986년에 15.6%로 높혔다. 그러다가 1989년에 피아트가 49%를 사고 드토마소와 49:51 지분 관계가 되었다. 1993년에 드토마소는 지분 전부를 피아트에 처분하고 떠난다. 이후 피아트에 의한 대대적인 투자가 이루어져 마세라티는 거듭났다.

1997년에 피아트는 마세라티의 50%를 페라리에 넘긴다. 1999년에는 페라리가 마세라티의 100% 주주가 되었다. 마세라티는 2005년에 알파로메오와 함께 피아트그룹 산하로 재편되었고 2007년에는 피아트가 첫 투자를 한 지 17년 만에 처음 흑자를 냈다. 그 후 마세라티는 FCA 산하에서 순항 중이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좋다. 소지섭의 영화 ‘회사원'(2012)에서도 잠깐 나온다.

엔조 페라리(Enzo Ferrari, 1898~1988)는 1963년에 회사가 어려워지자 포드에 1800만 달러로 회사를 매각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포드가 회사를 인수하면 자신에게 레이싱팀을 전담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협상을 중단했다. 1969년에는 피아트에 지분 50%를 넘기게 되었는데 레이싱팀은 자신이 맡는다는 조건이었다. 피아트는 페라리가 사망한 1988년에 지분을 90%로 올렸다.

페라리는 은둔형 사업가였다. 언론에 거의 나오지 않았다. 고향인 모데나와 마라넬로를 좀처럼 떠나지 않았고 한 번도 로마에 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비행기를 타지 않았고 절대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페라리는 눈 폭풍 때문에 출생신고가 이틀 늦었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사망 이틀 후에 세상에 알리게 했다고 한다.

페라리에게는 아들이 있었다. 후계자로 삼으려 했지만 병으로 사망했다. 페라리는 혼외자를 두었는데 피에로 페라리다. 이탈리아에서는 1975년까지 이혼이 불법이어서 피에로는 페라리 부인 사후에야 2세로 인정받았다. 피아트가 보유했던 90% 외의 10% 지분은 바로 피에로 페라리가 보유하는 것이다. 피에로는 현재 페라리 부회장이고 23.5%를 가진 FCA의 최대주주 엑소르에 이어 2대 주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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