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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벨로퍼는 '적(敵)'이 아니다 [thebell desk]

문병선 산업1부장공개 2019-10-31 09:48:59

이 기사는 2019년 10월 30일 10:11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부동산개발업자를 지칭할 땐 '업자'라는 말을 쓴다. '놈 자(者)'가 들어가는 단어가 누군가를 경시하는 듯한 뉘앙스 때문에 차츰 사라지고 있으나 부동산개발과 관련한 종사자를 얘기할 때면 여전히 '부동산개발업자'라는 단어를 무심코 사용한다. 반도체를 만드는 제조업체 종사자를 '반도체제조업자'라고 칭하지 않고 기술자를 이제는 '엔지니어'라 말하는 트렌드와 다소 다르다.

얼마전 있었던 국회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일부 의원이 중견건설사 '벌떼 입찰'의 문제를 지적했다. 요약하면 수많은 페이퍼컴퍼니를 동원해 LH(한국토지주택공사) 공공택지 입찰에 참여해 낙찰받은 후 고분양으로 막대한 이득을 취했는데, 국가 시스템을 다시 살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주장이었다. 집없는 사람에게 혜택을 나누어주기 위해 분양하는 공공택지 사업에서 건설사가 편법으로 택지를 받아 불로소득을 취한 것처럼 일견 들린다. 그리고 이를 내밀히 들여다보면 부동산개발업자(디벨로퍼)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있는 프레임인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2007~2008년의 부동산 경기는 금융위기 여파가 몰아치며 대형건설사마저 공공택지 분양 시장을 외면하던, 그야말로 암울한 시장 상황이었다. 당시 아무도 분양받지 않던 땅을 일부 디벨로퍼와 중견건설사들은 페이퍼컴퍼니를 동원해 금융비용 부담과 가격하락 위험을 무릅쓰고 LH로부터 낙찰받았다. 낙찰 대금이 흘러들어간 곳은 LH이자 정부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면서 위험을 감수하고 산 이 땅들이 '보배'로 돌아왔다.

'디벨로퍼=불로소득 집단'이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시선, 사실 어쩔 수 없다. 과거 많은 부동산개발업자들이 분양사기에 휘말려 안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놓은게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었고 개발업은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디벨로퍼=리스크 테이커(Risk Taker)'로 바라보는 시각이 등장했고 디벨로퍼를 공간과 문화를 새로 만들어내는 '디벨로퍼=크리에이터(Creator)'라는 시각이 생겨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일레븐건설'이라는 디벨로퍼는 정부의 정책 탓에 많은 고생을 하고 있는 건설업체이자 시행업체다. 일레븐건설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노른자위 땅인 유엔사 부지 약 1만3000평을 1조552억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낙찰 받은 때가 2017년 6월이다. 일레븐건설 덕에 LH는 감정가(약 8000억원)보다 2000억원 이상 벌어들였고 최초 취득 가액을 크게 상회하는 거금을 위험없이 손에 쥐었다. 그러나 일레븐건설이 매입한 땅을 개발해 수지를 맞추려면 평당 약 4000만원에 분양을 해야 하지만 최근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땅을 팔아 이득을 취한 LH가 금융비용을 보상해 줄리는 만무하다. 위험을 홀로 버티고 있는 일레븐건설은 수지를 맞출 묘안을 고민하고 있다. 아직 어떤 것도 결정되지 않았다. 다만 무엇인가 개발이 성공한다면 일레븐건설은 그동안의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을 훌륭히 해 낸 '리스크 테이커'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네오밸류'라는 디벨로퍼는 광교 아이파크 주상복합 사업을 시행하며 지하2층~지상3층 전 공간을 '앨리웨이 광교'라는 복합상업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네오밸류는 분양을 했더라면 얻었을 상가 분양수익 약 2500억원을 포기했다. 대신 이 공간을 지역특성에 맞게 큐레이션된 특화 콘텐츠로 채워넣었다. 카페도 직접 경영하고 빵집도 직접 운영한다. 주말이면 다양한 예술 행사가 열리는, 흥미로운 마켓과 볼거리가 많은 곳으로 만들었다. 화제성으로는 포털 검색량으로 인근 유명 경쟁몰을 압도한다. 네오밸류가 한 일은 구태의연한 개발방식을 버렸다는 것이다. 정종현 네오밸류 부사장은 "부동산을 단순한 '하드에셋'이 아니라 콘텐츠를 담는 '플랫폼'으로 보는 눈도 키워야 한다"고 했다.

최근 더벨 주최 디벨로퍼 포럼에 참석한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는 "과거 디벨로퍼에 대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이 많았지만 이제는 자본축적에 성공한 디벨로퍼들이 나타나 지속 성장의 기반을 닦고 있다"며 "제4차 산업혁명 시대와 맞물려 부동산 서비스를 미래창조 산업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도시공간 경쟁력을 키워 사람들을 몰려들게 하고 경제가 살아나도록 디벨로퍼의 땀과 헌신을 필요로 하는 시대"라며 "이런 노력이 이뤄지기 위해서 정부 규제개혁과 제도혁신이 반드시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가 몸담고 있는 피데스개발은 부동산 산업을 '초융합' 산업으로 바라보고 4차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개발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부동산을 '업'으로 삼은 요즘 디벨로퍼들은 예전의 디벨로퍼가 아니다. 성과와 행보를 본다면 더 이상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기는 힘들다.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은 이미 과거와 달리 고도화됐고 복합적인 접근을 필요로 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처럼 국가를 대표하고 도시를 살리는 디벨로퍼를 키워주는 것이 국가경제적으로 더 큰 이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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