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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성평가 무용론]평가기관 못믿겠다…"전문성·신뢰성 의문"②전문가 배제되는 구조…평가내역 공개· 해외 평가 의뢰도 고민해야

오찬미 기자공개 2019-12-17 08:13:13

[편집자주]

기술성 평가 제도가 도입된지 20년이 지났다. 한국거래소는 적자 상태의 기업들도 기술력을 인정받으면 상장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줬다.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장기간 기술 개발에 나서라는 취지다. 대표적인 분야가 개발 기간이 오래 걸리는 신약개발 바이오 기업들이다. 기평은 바이오 산업 육성에 기여를 했지만 잡음도 많다. 기평을 통과한 기업들이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하거나 반대로 우량 기업은 기평 통과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더벨은 기평을 둘러싼 논란을 재점검하고 개선 방향을 모색해봤다.

이 기사는 2019년 12월 05일 10:1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진짜 전문가는 기술성 평가에 없다."

한 바이오텍 대표는 기평에 대해 이렇게 잘라 말했다.

바이오 기업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현직 종사자들이다. 주요 연구원들이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업계 소식을 접하고 기술에 대해 이해도가 높다. 기술성평가는 이같은 현직 바이오텍 연구원들은 배제되는 구조다. 현직 연구원들이 기평에 참여하면 동종업계에서 교류가 힘들어진다. 주관이 개입할 여지도 크다. 객관성을 확보할 순 있지만 진짜 전문가는 기평에서 배제되고 있다.

업계에선 기평에 참여하는 평가기관의 전문성과 신뢰성에 대해 의문부호를 던진다. 평가기관과 평가위원을 선정하는 과정도 불투명하고 평가기관이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지도 의문이다. 기평에서 탈락한 기업이 몇달 새에 글로벌 제약사로부터 조단위 라이선스 아웃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은 평가기관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해외 전문가의 평가가 더 신뢰할만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평 대신 라이선스 아웃을 기준으로 기술성을 평가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 전문성 있나…신규 기술일수록 통과 어려워

두차례 기술성 평가에서 떨어진 브릿지바이오는 NRDO란 업태 때문에 기평에서 불이익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NRDO는 연구는 없고 개발만 하는 회사를 뜻한다. 외부의 신약후보물질을 도입해 이를 개발한 뒤 다시 라이선스아웃하는 형태의 바이오기업이다. 신약물질을 직접 개발하지 않는다며 기평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두차례 상장 시도가 무산됐다.

브릿지바이오는 기평 탈락 뒤 지난 7월 베링거인겔하임에게 특발성 폐섬유증 신약 후보물질 'BBT-877'을 11억4500만유로에 기술수출했다. 이 신약물질은 레고켐바이오로부터 도입한 물질이다. 베링거인겔하임은 브릿지바이오의 물질 개발 능력을 높이 평가해 1조원이 넘는 계약을 체결했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인정하는 기술을 기평 평가기관은 제대로 판별하지 못한 셈이다.

바이오 기업들이 기평을 두고 가장 우려하는 것은 평기가관에 대한 전문성이다. 기술성 평가가 진행되는 동안 평가위원의 경력이나 학력 등은 모두 비공개다. 어떤 경력이 있는 평가위원이 평가를 하는지 알수가 없다.

국내에 덜 알려져 있는 새로운 부문일수록 기평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다는 속설아닌 속설도 있다.

평가단은 통상 내부인력과 외부인력이 절반씩 구성된 6~7명으로 이뤄진다. 바이오전문가 4명 이상이면 평가단의 기준을 충족한다. 하지만 새로운 신약 부분일수록 국내에서 이를 연구하는 연구인력을 찾기는 쉽지 않다. 기술분야가 좁을수록 이해관계자일 가능성도 높아진다. 국내에서는 신규 기술이 평가에서 '패널티'를 받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벨이 기술성 평가를 통해 상장한 바이오 벤처기업 40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제기됐다. 설문참여자 36%는 기평이 바이오 기업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이유로 기술성 평가단 또는 심사위원의 전문성 부족을 꼽았다.

뒤를 이어 가장 많은 응답(25%)은 양적 평가 위주의 한계라는 답이었다. 기술에 대한 실질적인 검증보다 양적인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기술을 평가하기 위해 고안된 기술성평가 제도가 정작 평가단의 전문성 부족으로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게 기업들의 종합적인 입장이다. 설문참여자 대다수는 이미 평가를 받아 상장한 기업 관계자다.

◇순번에 따라 배정…본업에 밀리는 기평

평가기관 선정부터 평가단 구성 절차도 문제 요인이다. 평가기관은 통상 거래소의 풀에 따라 순차적으로 배정된다. 거래소는 기술 평가기관의 풀을 내부적으로 두고 있는데, 관련 풀은 바이오(BT), 정보통신(IT), 환경(ET) 등 세개 안팎으로 구성된다. 기술평가를 요청하는 기업의 특성에 따라 거래소가 하나의 풀을 택하고, 요청 기업 순으로 평가기관을 배정한다. 바이오기업의 경우 TCB기관 6곳이 모두 포함되며 정부기관 7곳 가운데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을 제외한 6곳이 참여한다.


바이오 전문인력이 4명 이상이 되면 평가기관의 기준을 충족한다. 하지만 평가기관이 연구 등 다른 업무를 진행하느라 순서가 오더라도 평가를 건너뛰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한다. '전문 평가기관'이라고 칭한 기관이 기술 평가만을 전문으로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평가기관의 내부인력이 부족하면 평가 대상 기업을 외부에 알리고 희망하는 외부 평가자를 받는다. 교수, 연구진, 의사, 업계 관계자 등으로 구성되는 외부 평가자들은 향후 어떤 기업을 평가할지 미리 알고 평가단에 들어올지를 선택할 수 있다.

바이오기업의 불신은 이 지점에서도 발생한다. 특례상장을 신청한 바이오기업과 업무 관련성이 있거나 학회에서 자주 마주한 이해관계자가 평가에 참여하는 것은 신뢰성을 저해한다. 회사에 관심을 보인 관계자가 해당 회사의 외부 평가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도 평가의 신뢰도에 치명적이다.



더벨 설문조사에서 기술성평가기관의 전문성 제고를 위한 방안이 무엇이겠느냐는 질문에 평가기관별 주요 평가 내역 공개란 응답이 38%로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평가 기관에 대한 자체 평가를 하자는 의견이 30%로 뒤를 이었고 해외 전문가 또는 평가기관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22%였다. 평가기관의 평가 내역과 전문성을 공개해야 평가기관의 전문성과 신뢰성이 더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평가할 사람이 없다면 해외 기관을 통해서라도 제대로 된 기술 평가를 진행해야 한다"며 "바이오기술의 한국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해외기관에서 기술평가를 받으면 국내에서 2개 받은 걸로 인정해주는 등의 방법으로 해외 유력 기관과 더 협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필요하다면 기술성 평가 비용의 상향조정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평가기관의 보수를 높여 평가기관에서도 제대로 전문가를 뽑는 등 좀 더 책임지고 평가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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