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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기술 동냥'의 추억, 옛말이라고? [thebell note]

구태우 기자공개 2019-12-05 08:28:56

이 기사는 2019년 12월 04일 08:15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일본인과 사업을 해본 기업인이라면 '혼네(本音·속내)와 다테마에(建前·배려)를 구분해 들어야 한다'는 얘기를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일본인은 본심과 배려를 구별해 사용하는데 익숙한데, 오해를 하지 않으려면 가려들어야 한다는데서 나온 말이다.

얼마 전 만난 제련소 관계자는 일본 기술자들이 '진심'으로 한국 기술을 배우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일 합작 제련소에서 근무하는데, 최근 일본 기술자들 사이에서 우리 기술에 대한 질문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설비 운영은 어떻게 하는지. 생산 효율성은 어떻게 높이는지 등 일본 기술자들의 질문이 계속되고 있다는 게 이 관계자의 말이다.

일본 제련소 기술자의 질문은 이유가 있다. 몇 해 전부터 중국 제련소들은 제련비를 낮추면서 '제로섬 게임'을 시작했다. 한국과 일본 등 글로벌 제련소들은 중국의 제련비 인하 정책에 대응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추세다. 일본 제련소들은 우수한 제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한국 제련소에서 배워야 하는 처지가 됐다.

A씨가 근무하는 제련소는 한일 합작사인 LS니꼬동제련(이하 LS니꼬)이다. LS니꼬는 1990년대 후반 일본 니꼬 금속 등에서 투자금을 받아 합작사로 출범했다. LS니꼬는 이후 일본에서 미츠비시 공법을 이식받았다. LS니꼬의 기술자들은 일본에 건너가 미츠비시 공법을 배워왔다.

아무리 합작사라고 해도 '비법'을 전수받기 쉽지 않았을 터. 적잖은 시행착오와 '기술 빈국'의 설움을 겪은 후에야 지금처럼 안정적으로 미츠비시 공법을 운용할 수 있게 됐다. LS니꼬는 과거 일본 제련기술을 수입하던 것에서 진일보해 공정에 스마트 팩토리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한일 간 제조기업 간 기술교류 역사는 오래됐다. 국내 기업들은 과거 '육해공'과 소재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일본 기업에서 기술을 전수받았다. 현대중공업은 과거 현대조선소를 지은 직후 일본 가와사키중공업에 기술자를 파견보냈다.

일진그룹 창업주 허진규 회장은 1970년대 일본에서 '눈동냥'으로 동박(2차전지 소재) 제조 기술을 배웠다. 일본 기업인들의 문전박대에 지친 그가 "새가 되어 공장을 날아다니고 싶다"고 말한 일화가 있을 정도다.

이제 기업인들이 신사업을 위해 일본에서 '기술 동냥'을 하던 얘기는 옛말이 됐다. 국내 제조기업의 노력 끝에 일본 기업이 이제는 역으로 우리 기술을 배워가고 있다. 비단 LS니꼬 만의 얘기가 아니다.

얼마 전 SK텔레콤은 일본 이동통신업체 라쿠텐에 5G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기술의 '한류'는 조선업계와 제련업계를 뛰어 넘어 전자통신 업계까지 확장했다. 한국은 과거 기술 수입국에서 기술 수출국으로 변모했다.

어쩌면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조치는 과거 기술 강국의 영광을 뺏긴 것에 대한 조급한 '혼네(속내)'가 발동한 게 아닐까 싶다. 이럴 때 일수록 R&D 투자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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