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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성평가 무용론]수수료 1500만원 제값하나…베일에 싸인 평가툴 불만③평가항목에 주관 개입 여지 많아‥탈락 후 재도전하면 원점

오찬미 기자공개 2019-12-18 08:14:14

[편집자주]

기술성 평가 제도가 도입된지 20년이 지났다. 한국거래소는 적자 상태의 기업들도 기술력을 인정받으면 상장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줬다.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장기간 기술 개발에 나서라는 취지다. 대표적인 분야가 개발 기간이 오래 걸리는 신약개발 바이오 기업들이다. 기평은 바이오 산업 육성에 기여를 했지만 잡음도 많다. 기평을 통과한 기업들이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하거나 반대로 우량 기업은 기평 통과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더벨은 기평을 둘러싼 논란을 재점검하고 개선 방향을 모색해봤다.

이 기사는 2019년 12월 09일 07:2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어느 평가 기관이 걸리느냐에 따라 당락이 달라진다."

무언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주관이 개입할 수 밖에 없는 미래 기술을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적을 내지 못하는 기술 기업의 미래 가치를 평가하는 기술성 평가는 더욱 어렵다.

하지만 기술성 평가가 누가, 어떤 항목을 평가하느냐에 따라 편차가 크다는 것은 시스템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기평을 받는 기업들의 반응은 못 믿겠다는 것이다. 평가기관에 따라, 평가자에 따라 편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어떤 기관이 걸리느냐에 따라 당락이 달라진다.

더욱이 평가툴은 비공개다. 평가기관이 평가는 고유의 영역이라는 이유로 평가툴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기술성 평가에서 한차례 탈락하면 미비점을 보완해 재도전해야 하는데 2차 평가도 원점에서 다시 준비해야 한다. 1500만원의 수수료를 내고 있지만 그 값을 제대로 하는지 의문이다. 반대로 평가기관 입장에서는 1500만원의 수수료에 전문 인력을 대거 투입하기도 어렵다. 이런 이유로 기술성 평가는 기관들의 본업에 비해 차순위로 밀려나기 일쑤다.

기업들은 평가기관의 평가툴과 평가시스템의 공개를 주장하고 있다. 평가툴에 기준을 두고 상장 준비작업을 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을 성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투명한 평가툴과 평가시스템이 정립되면 평가 결과에 대한 신뢰도 높아진다.

기술평가 점수와 평가결과를 공개하는 것도 필요하다. 기술평가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투자자들에게도 보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기업들이 기평 통과 뒤 자발적으로 평가등급과 종합의견을 공시하고 있다.

◇투명한 평가툴·점수반영 시스템 공개요구

기평 제도와 관련 평가가이드로 오픈된 것은 공통 심사 항목 정도다. 평가기관들의 공통된 심사항목은 △기술의 경쟁우위 △기술성공 가능성 △연구개발역량 △지식재산 보유 △수익창출 가능성이다. 세부 내용과 평가 가중치, 이 밖의 심사항목은 평가기관마다 다르다. 바이오기업들은 대부분 기술성과 시장성을 바탕으로 한 기술기반 기업평가를 받는다.

기술기반 기업평가에는 기술성 부문에서 4가지 평가항목이, 시장성 부문에서 2가지 평가항목이 필수로 들어간다.

먼저 기술의 완성도·모방난이도·확장성을 토대로 한 '기술의 완성도' 평가와 주력기술의 차별성·기술제품의 수명·기술개발 수상(인증)실적·지식재산보유현황·연구개발 투자 비중 등을 토대로 한 '기술의 경쟁우위도'가 포함된다.

기술경영 경험수준·지식수준·관리능력과 주요 경영진의 전문성·사업몰입도, 최고기술경영자와 기술인력의 전문성 등을 바탕으로 '기술인력의 수준'이 평가된다. 기술제품의 생산역량·상용화를 위한 자본조달 능력, 기술제품 판매처의 다양성·안정성·부가가치 창출능력 등을 토대로 '기술제품의 상용화 경쟁력'이 파악된다.

주력기술제품의 시장규모·시장의 성장성·시장구조 및 특성을 평가해 '기술제품의 시장규모 및 성장잠재력'이 측정되며, 기술제품의 시장지위·경쟁제품 대비 비교우위성을 토대로 '기술제품의 경쟁력'이 평가된다.

다만 세부적인 기술평가 내용은 평가기관마다 모두 다르다. 각 평가항목에 대한 평가방식이나 평가 가중치, 이밖에 어떤 평가툴을 쓰느냐는 모두 전문평가기관의 재량에 맡겨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어떤 곳은 A, B, C로 등급을 매기고 어떤 곳은 점수로 매긴다고 알고 있다"며 "평가기관에 따라 완전히 다른 평가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있어 객관성에 의문이 간다"고 지적했다.

거래소 심사부는 두 달에 한번씩 평가기관들이 모이는 자리를 만들어 각 평가기관들의 점수 통계를 서로가 볼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 평가 결과의 편차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평가점수를 눈에 띄게 낮게 준 기관이나 너무 높게 준 기관들에게 평가가 달라진 배경에 대해 묻거나 확인하는 절차를 갖진 않는다. 기관들이 스스로 자정할 수 있게 하는 게 거래소가 개입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란 설명이다.

지난 11월 평가기관들과의 만남에서도 거래소는 '기업의 상장에 합목적성을 두고 평가를 하자'고 평가툴의 방향성을 제시한 바 있다.

◇평가료 1500만원 수준…복불복 평가기관 선정

평가툴은 평가기관의 영업비밀로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평가가 끝나면 평가기관은 300~400페이지 정도의 평가결과서 원본을 거래소에 송부하고, 70~100페이지 가량의 요약 평가결과서를 상장주관사에 송부한다. 기업은 주관사에 요청해서 요약 평가결과서를 받아볼 수 있다.

각 평가기관마다 평가툴, 채점방식, 가중치가 달라 요약 평가결과서만으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점수를 덜 받았는지 기업이 알기 어렵다. 평가결과서에는 평가항목을 배제한 기술 내용만 담겨있다. 평가결과서 원본을 받은 거래소도 평가기관의 평가툴, 채점방식 등은 알지 못한다.

거래소 관계자는 평가에 참여할만한 전문 평가기관들이 국내에는 많지 않은 상황이라 거래소가 나서서 평가기관에게 평가툴의 공개를 요구하거나 평가절차에 대한 적극적인 시정요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문평가기관 대상이 되려면 △정부산하 연구기관(또는 평가기관)이거나 기업평가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일 것 △박사 및 기술사 등 전문평가인력(외부가용인력 포함)이 10인 이상일 것 △과거 기술평가 또는 사업평가 경험이 있을 것이란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데 평가업무를 하는 곳이 많지 않다는 게 거래소의 고민이다. 지금까지 특정 평가기관에 대한 민원이 들어오더라도 해당 평가기관을 평가툴에서 제외하는 경우가 한 번도 없었던 이유다.

전문평가에 권위를 갖고 있는 평가기관에게는 1건당 1500만원의 기술심사료가 큰 수익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기술성평가 심사에 대한 책임을 묻거나 추가적인 사항을 더 요청할 수 없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됐다.

평가기관들은 거래소의 심사업무에 협력하는 MOU관계에 그친다. 전문평가기관들이 다른 주업무를 하느라고 기술성평가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기술성 평가를 받는 기업들 사이에선 평가기관 선정이 '복불복'이란 속설도 있다. 공적 성격을 지닌 평가기관일수록 비전문가가 평가 담당이 될 경우도 많다.

한 바이오 기업 관계자는 "공적 성격의 평가기관이 담당하게 되면 예측이 더 어렵다"며 "심사역 대부분이 문과생인데 기술을 제대로 볼 수 있을 지 항상 의문이다"고 꼬집었다.

◇평가 내용 공개라도 시작해야

평가 시스템을 전면 보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평가기관의 신뢰성과 평가 시스템 전반을 손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같은 시스템 전반을 손보기에 앞서 자율적으로 시스템이 개선되도록 평가 내용을 공개하자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더벨이 기평을 통과한 기업 40여곳의 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기술성 평가 비공개 문제에 대해 개선해야 한다는 응답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았다.

설문 참가자 60%는 평가기관별 세부 점수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26%는 떨어진 기업까지 공개하면 가혹하니 기술평가를 통과한 기업에 대해서만이라도 결과를 공개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지금처럼 비공개하자는 의견은 6%에 불과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평가툴과 평가 항목별 점수를 공개해 평가자 주관이 관여할 여지를 없애야 한다"며 "붙은 기업은 무조건 등급을 공개하고, 신고서에도 평가등급과 특정 점수를 받은 평가기관의 논리가 상세히 기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평가에 떨어진 기업에게는 거래소가 받은 것과 비슷한 수준의 풀 리포트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다른 관계자는 "요약본만으로는 평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며 "부족한 부분은 기업이 시간을 두고 보완할 수 있도록 풀리포트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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