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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보글' 꿈꾸는 탁용문 교보악사운용 본부장 [매니저 프로파일]투자자 위한 펀드매니저 '소망'…20년 금융 경험 TDF에 녹였다

김진현 기자공개 2020-01-22 13:08:08

이 기사는 2020년 01월 20일 15:05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노력형 천재' 탁용문 교보악사자산운용 멀티에셋본부장(사진)에 대한 주변인들의 평가다. 이런 노력형 천재들은 주로 주변인들의 시기를 받기 마련이지만 그는 서글서글한 성격과 겸손함으로 주변인들에게 '착하거나 잘나거나 둘 중 하나만 하라'며 면박을 받을 정도로 주변인들의 신임을 받았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도 그가 너무 착하고 순수해 '때를 묻히고 싶었다'고 말할 정도로 투자자밖에 모르는 바보같은 매니저라고 평했다. 그가 퀀트 매니저가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자신이 돋보이길 원했다면 액티브 주식 매니저가 됐을 텐데 퀀트 매니저를 선택한건 타고난 천성 때문이라고 봐야한다.

그는 1990년대 국내 자산운용업계에 금융공학(Quant·퀀트)이라는 운용 기법이 알려지기 시작했을 무렵 가장 우수한 인재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가 이런 평가를 받기까지 쉬운 길을 걸은 건 아니었다.

◇ '좌절' 맛본 사회초년생…다시 대학원으로

그는 대학 시절부터 펀드 매니저를 꿈꿨다. "돈도 많이 주고 장이 안열리는 주말엔 실컷 놀 수 있다는 환상이 있었습니다. 막상 펀드매니저가 돼보니 환상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영화나 드라마로 접한 펀드 매니저 생활은 속된 말로 '폼'이 났다. 수화기를 들고 몇 주를 사라느니 팔라느니 외치며 책상을 쿵 내리치는 모습 등, 그는 이런 막연한 환상을 품고 펀드 매니저에 도전했다.

학교를 다닐때는 졸업만 하면 취업이 어렵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한국 경제는 주저앉았다. 그가 졸업을 앞둔 1998년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조금융을 요청했다. 주가는 폭락했고 내로라하는 금융기관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금융사들이 몸집을 줄이는 와중에 펀드매니저가 되기 위한 취업 문턱은 더 높아졌다.

결국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들어간 곳은 선물거래소(현 한국거래소)였다. 펀드 매니저가 되고 싶었던 그는 생각지도 않았던 선물거래소로 입사했다. 같은 금융권이니 언젠간 펀드매니저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고 우선 취업이라는 급한 불부터 껐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신입사원 탁용문은 학사 출신인 자신이 펀드매니저가 되기 위해선 더 공부를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다시 학문의 길로 돌아섰다.

그는 2001년 금융공학 석사 과정을 위해 대학원으로 돌아갔다. 어린 시절부터 숫자를 사랑했던 그는 자신의 장기로 금융공학을 택했다. 예측 불가능한 시장을 이기는 방법은 정확한 데이터값을 가지고 리스크를 관리하는 퀀트 분석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석사를 마친 뒤에야 그는 꿈에 그리던 펀드매니저가 될 기회를 잡았다. 2004년 농협CA투자신탁운용(현 NH아문디자산운용)에 입사했다. '똘똘한' 중고 신입은 그해 펀드매니저 시험에서 수석 합격을 거머쥔다. 138명 가운데 1등으로 시험을 통과한 그는 1년만에 러브콜을 받아 국민연금공단으로 옮겨간다. 짧은 펀드매니저 생활을 마친 그는 5년 가까이 국민연금에서 근무했다.

그가 국민연금으로 옮긴 건 자신만의 원칙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멋진 펀드매니저가 되겠다는 환상을 품고 있긴 했지만 사실 그는 투자자를 위한 펀드매니저가 되고 싶었다. 나라의 곳간을 관리하는 국민연금이야 말로 자신의 투자 철학에 부합하는 곳이란 판단을 내렸다.

◇ '을'에서 '갑', 다시 '갑'에서 '을'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로 옮긴 그는 위탁운용을 맡길 자산운용사를 선정했다. 소위 말하는 '을'에서 '갑'이 됐다. 다양한 회사의 펀드매니저를 만나 미팅을 하고 운용을 맡기며 그가 느낀건 좌절감이었다. 기본적인 리스크 관리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도 펀드를 운용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고 상대만을 탓할 수는 없었다. 자금 위탁을 맡길 수 있는 믿을만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를 고르기 위해 문턱을 높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자신이 전공한 퀀트를 활용해 위탁 일임 유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국민연금은 인덱스펀드에 한창 투자를 늘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불쑥 등장한 신입사원이 인덱스 운용 대신 퀀트라는 신문물을 활용해야한다고 주장하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국내에는 퀀트라는 개념이 막 도입됐을 때여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의 동료들도 "요즘은 퀀트 베이스로 투자하는 친구들이 많지만 그때는 그 친구가 가장 우수했던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켜 결국 액티브 퀀트 위탁 유형을 신설했다. 액티브퀀트 유형은 정량적 방식으로 리스크를 통제하며 투자하는 방식을 말한다. 상장주식과 파생상품 등에 한해서만 투자할 수 있는 기존 유형을 보완하기 위해 신설한 위탁 부문이다.

그에게는 이러한 투자 방식이 새로운 기법이 아니었다. 퀀트 전공자였던 그에게 정량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리스크를 통제하며 투자하는 방식은 펀드매니저라면 당연히 해야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 여겼다.

"리스크 관리 없이 마구 매집하다보면 그 중에 하나가 터지게 돼 있습니다. 그렇게 소위 스타매니저가 탄생하는 거라고 봐요. 그런 방식이라면 전 스타 매니저 등장을 반대합니다"

지난해 교보악사자산운용에 합류해 국민연금 액티브 퀀트 유형 위탁운용 일임을 맡은 탁 본부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자신이 놓은 덫에 자신이 걸렸다며 웃었다. 교보악사자산운용은 2008년 이후 액티브 퀀트 유형을 위탁운용해오고 있다.

"갑과 을을 다 경험할 줄 몰랐던 거죠. 그때는 제가 국민연금 자금을 운용할 줄 몰랐습니다. 운용할 때 신경써야 할 부분이 상당히 많지만 펀드매니저가 편하면 고객이 불편해진다는 신념을 가지고 운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에서 그는 리스크 관리와 자산배분이 수익률의 90%를 결정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 다시 자산운용사로 돌아온 뒤에도 자산배분과 리스크 관리에 가장 중점을 두고 펀드를 운용해왔다고 설명한다.


◇ 우상 '존 보글', 투자자 위한 운용 실천 '목표'

4년반 동안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있던 그는 2009년 다시 자산운용사로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그는 투자자를 위한 펀드매니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화려한 펀드 매니저를 꿈꿨던 대학생이 10년만에 본격적인 펀드 매니저 생활을 시작하게 된 셈이다.

그는 국민연금에서 근무하며 '꾸준함'과 '안정성'이라는 두가지 단어가 한몸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운용의 본질은 투자 전문가에게 자신의 자금을 일임하는 건데 반짝 수익률에 목메는 순간 자신의 책임을 저버리는 일이 된다고 여겼다.

세이에셋코리아자산운용(현 베어링자산운용)으로 돌아온 이후 그는 다시 한번 존 보글(John Bogle)의 저서를 꺼내 들었다. 존 보글은 흔히 인덱스펀드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존 보글이 인덱스펀드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 액티브 매니저들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출발했다. 자신 역시 액티브 매니저였지만 기본적인 자질이 안돼 있는 펀드 매니저가 너무 많다고 느꼈다. 이런 이들에게 돈을 맡길 바에야 저렴한 보수의 인덱스펀드로 시장을 다 사버리는 편이 수익률 면에서도 낫다고 여겼다.

탁 본부장이 바라본 존 보글은 평생을 투자자만을 생각한 펀드매니저였다. 다소 사회주의 서적처럼 보이는 '만국의 주주들이여, 단결하라'는 책에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주주행동주의와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다. 존 보글은 주주를 위한 자본주의가 경영자를 위한 자본주의로 변질되고 있어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내용을 책 속에 담았다.

탁 본부장 또한 존 보글과 동일한 관점에서 주주행동주의의 장점에 동의한다. 돈을 투자한 투자자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경영을 펼쳐야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분명 회사가 돈을 벌었는데 투자자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딘가로 새고 있다는 소리와 다름 없다고 본다.

◇ 꿈 펼칠 무대 찾아 '삼매경'…노하우 집약체 'TDF'

투자자를 위한 펀드매니저를 자처한 그는 내새울 만한 '대표펀드'는 꼽기 어렵다고 말한다. 주로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 자금을 일임으로 운용한 탓에 이렇다할 트랙레코드가 남아있지 않은 탓이다.

다만 그는 그동안 자신이 운용을 맡은 펀드 운용자금, 고유계정, 위탁운용 자금 등을 성심성의껏 운용해왔다고 자부한다. 극적인 수익률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꾸준한 운용 성과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의 강점이라고 설명한다. 소위 말하는 스타매니저의 대표상품의 성과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고꾸라지는 걸 목격했기 때문이다.

비교지수(BM)와 비교해 변동성을 줄이고 아웃퍼폼하는 것이 자산운용의 목표다. 리스크 관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조심스러운 운용 스타일은 한화생명보험에 근무하면서 더욱 굳어졌다. 그는 세이에셋자산운용을 떠나 잠시 래이투자자문의 맴버로 합류했다가 2012년 한화생명보험에 합류했다.

보험에서 자금을 운용하면서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더욱 절감했다. 대부분 보험상품이 가입 이후 수익률이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었다. 운용상황을 모르던 고객들이 만기가 다가와 항의 전화를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는 전문가에 투자를 믿고 맡겼다면 그에 합당한 성과를 내는 게 본분이라고 여겼다.

수익은 얻고 싶다고 얻을 수 없지만 리스크는 막고자 한다면 막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뒤에 수익이 오르길 기다리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봤다.

그는 보험사 생활을 경험한 뒤 2015년 하나UBS자산운용으로 돌아왔다. 이후 4년간 투자공학팀 실장으로 퀀트 운용, 전략 수립 등에 대한 전반적인 총괄 업무를 담당하다 지난해 교보악사자산운용에 합류했다.

그가 교보악사자산운용에 합류한 건 그의 꿈을 펼칠 수 있는 팀을 신설해줬기 때문이다. 교보악사자산운용은 퀀트팀을 신설하며 탁 본부장에게 팀원 구성부터 운용까지 책임질 수 있는 권한을 줬다.

"투자자는 투자만 하면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상품을 만들고 싶었고 그러던 와중에 좋은 기회가 와서 교보악사자산운용에 합류했습니다. 타깃데이트펀드(TDF)는 제가 찾던 투자자가 편한 상품이라는 생각이 들어 펀드를 기획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TDF는 단순히 펀드라는 비히클(vehicle)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그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자산배분과 리스크 관리다. 투자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음 놓을 수 있는 상품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TDF에 녹여냈다. 교보악사자산운용은 판매사의 요청에 따라 환헤지형 상품과 환 노출형 상품을 모두 기획했으나 탁 본부장의 반대로 단일 상품으로 내놓았다.

그는 환율에 대한 예측은 전문가도 어려운데 이를 일반 투자자에게 선택하라고 하는 건 책임 전가라고 주장했다. 환율에 따른 헤지 전략을 구사하는 건 전문가의 몫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생애 주기에 맞춘 투자라는 TDF 캐치프레이즈는 마케팅적으론 훌륭하지만 그는 이런 부분에 대해선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탁 본부장이 정의내린 TDF는 자산을 배분해 리스크를 관리하며 자금을 운용해주는 종합선물세트다. 그는 사후적인 리스크 관리는 모순이라고 여긴다. 모든 정량적 지표를 감안해 사전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해야하는 게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제가 운용한 대표펀드가 뭐냐고 묻는다면 TDF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꾸준히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이란 걸 증명하는 게 중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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