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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재벌시스템]긴장감 없는 재계, 그러나 '조커'의 눈은 커지고 있다③자본주의 부작용, 반사회적·반재벌 정서 확산, 재벌 지배구조 변화 필요성

문병선 기자/ 박상희 기자/ 구태우 기자공개 2020-05-25 08:53:27

[편집자주]

세계 최대 농업·식품회사인 카길은 비상장이고 가족지배 기업이지만 현재 가족이 경영하지 않는다. 세계적 플랫폼 기업 구글도 창업자들이 1선에서 모두 퇴진, 인도 출신 순다르 피차이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소유·경영의 분리 사례다. 자본시장의 역사가 짧은 한국 기업은 태생적으로 소유·경영의 융합모델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고도 성장과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너경영 3·4세 시대에 접어들며 변화를 요구받는다. 국내 대표 기업 삼성이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 지배구조 뿐 아니라 이사회·내부통제·조직구성에 까지 영향을 줄 사안이다. '포스트 이재용 선언'은 곧 '포스트 재벌시스템'이다. 이재용 선언 이후의 재벌시스템, 나아가 4차산업혁명 이후의 재벌시스템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5월 21일 08:29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에 등장하는 '타노스'라는 인류 파괴 인물의 우주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꽤 있어 놀란적이 있다.

영화를 두번째 보고 난 몇일 후 식사자리에서 만난 한 지인은 "세계를 악당들로부터 지킨다는 '영웅'의 삶에 매력을 느끼고 박수쳐주던 시대가 아닌것 같다"며 "영웅의 무용담보다 악당이 악당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성장 배경과 철학에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갖는 시대가 된 것 같다"고 했다.

타노스가 손가락 터치 한번으로 전 우주 절반의 생명체를 파괴하는 해괴한 설정은 영화에서 보듯 참으로 SF(공상과학소설)적이다.

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 스틸 컷

그러나 그 이유가 "왜 지구의 절반은 굶주려야 하는가"라는 '인구론' 저자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의 논리와 함께 제시되면 관객들은 "아, 그럴듯 하다"라는 생각을 갖는다. 자본주의의 부작용인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오버랩된다. 가난한자는 왜 예전보다 더 상대적으로 가난해지는지, 왜 세계 대부분의 부는 1% 부자들에게만 집중되는지 그 억울함을 역설적으로 악당들의 논리를 통해 위안받는다.

◇자본주의 부작용, 반사회적·반재벌 정서 확산

히어로물 영화를 생각해보면 그럴 듯해 보이는 분석이다. 수퍼맨, 배트맨 등 DC코믹스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악당 루터와 조커는 과거 대중들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하던 인물이다. 그저 '나쁜놈' 이었다.

그러나 영화 '맨오브스틸'에서 루터의 성장과정과 철학은 재조명된다. 또 영화 '조커'에서 살인마 조커의 인생여정이 보여질 때 많은 관객이 조커가 악당이 될 수밖에 없었던 성장 과정을 다시 보게 되고 측은함을 느끼며 그의 반사회적 행동에 공감을 했다.

영화 '조커' 스틸 컷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사회에서 소외된 자와 연대를 꿈꾸고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현상은 미국 오스카상을 휩쓴 영화 '기생충'에서도 목격된다. "한국을 담은 영화이지만 동시에 전 지구적으로 긴급하고 우리 모두의 삶과 연관이 있는 그 무엇을 이야기한다"는게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이었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평이다.

남시중 박사는 한 언론 기고글에서 "한국 영화 ‘기생충'이 왜 미국에서 그토록 환영을 받았을까?. 미국인에게 ‘기생충'은 새로운 도덕관에 확신을 던져준 영화다. 부를 존경하는 청교도 사고에 정면으로 반하는 한국 서민의 말세적 도덕관을 보여줬다. ‘부자는 나쁜 사람'이라는 한국식 사고가 진실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고 했다.

◇이재용 불승계 발언 평가절하 평가 많아

많은 재계 인사들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불승계 선언'을 평가절하한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나 삼성물산 합병 이슈 관련 사과하라고 했더니 경영권 자녀 승계 않겠단 충격 선언으로 다른 이슈를 다 잡아먹었다"며 "같은 맥락에서 삼성 자녀가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이야기를 할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고 했다.

대기업 다른 인사는 "능력이 있으면 승계해도 되는걸 무조건 승계를 안하겠다는 식으로 발표를 해버리는 것은 발표의 다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평가절하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기자회견에서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논란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그러나 재계 인사들이 놓치는 게 있다. 한국의 성장을 이끌어 온 일부 재벌에 대한 대중의 감정이 세월이 흐르며 악화됐고 그 원한 감정이 한계에 도달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내부자들의 시각과 외부에서 바라보는 외부자의 시각엔 분명한 격차가 있다. 부자를 향한 원한 감정은 상징적으로 재벌을 통해 표출되고 있고 삼성은 그 정점에 있는 그룹이라는 점이다. 그 다음 순서는 누가 될 지 모른다.

'부의 인문학'을 쓴 필명 '우석'은 최근 자신의 글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하게 사는 것은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사회에서보다 정신적으로 더 고통스럽다"며 "가난 그 자체가 가져다주는 고통보다 실패자와 루저로 낙인찍는 타인의 눈초리를 견뎌야하기 때문이다"고 썼다.

그는 니이체의 '르상티망(ressentiment)'을 현상 설명 용어로 거론했다. 프랑스어 '르상티망'은 '원한, 증오, 질투 따위의 감정이 되풀이되어 마음 속에 쌓인 상태'라는 뜻이다.

니이체는 르상티망에 대해 "다수의 실패자와 루저가 소수의 성공자에 대해서 원한, 시기심, 질투심, 증오심을 가지게 된다"며 "르상티망을 가진 열등한 다수가 '가치전복'을 꾀한다"고 주장했다.

가치전복이란 영화 '조커'에서처럼 사회를 뒤집는다는 뜻이 아니다. 부자는 탐욕스럽고 지독하다, 부자는 지옥간다 등 다수의 가난한 자는 기존 가치체계 상으론 열등감에 시달리면서 살아야 하니 괴로워 이런 생각을 스스로 바꾸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가치 전복이다.

사실을 왜곡하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가치전복' 현상은 재벌을 향해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재용은 부친 잘 만나 삼성을 갖게 됐다'거나 '삼성은 정경유착으로 지금껏 커온 기업일 뿐'이라는 시각이 대표적인 가치전복 현상이다. 부자를 향한, 재벌을 향한 원한 감정이 이런 식으로 대중들에게 인식되면서 반재벌 정서는 확산된다.

◇땅콩회항과 가치전복, 재벌 지배구조 바꿀 필요성

우리나라 재벌 시스템은 3세와 4세대에 들어서며 큰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조현아의 '땅콩 회항' 사건이 대중적 '가치전복' 현상에 기름을 부었다. 수많은 재벌3세 또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갑질'은 인터넷 매체를 통해 나머지 99%에게 실시간 전달되며 공분을 샀다.

이런 분노의 감정을 삭혀주려면,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월가를 점령하라'와 같은 반자본주의 대중 운동에 불을 지르지 않으려면, 그들의 감정을 어루만져주고 부자인 것을 자랑하지 않으며 겸손해야 한다.

이 부회장의 불승계 발언은 이런 면에서 "부를 세습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고 대중들에게 상당한 감정 정화를 줄 수 있다. 시대 변화와도 부합한다. 비록 이 부회장이 다른 목적이 있어 이런 선언을 했다해도 역사가 반드시 좋은 의도 때문에 움직였던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평가절하보다 의미있는 재벌의 변화로 받아들이는게 좋아 보인다.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경영이론가이자 유명한 '히든챔피언(Hidden Champions of the 21st Century)'의 저자 헤르만 지몬은 "숨겨진 챔피언들 다수는 여전히 창업주 가문의 소유이다. 가족 회사는 소수의 사람을 위해, 또 그들에 의해 운영된다. 그 소수의 지도자들은 매우 정직하고 융통성있는 관계를 형성한다. 권력 게임에 몰두하는 거대한 관료제를 배격한다"고 말했다.

한국 재벌들과 달리 독일 히든챔피언들이 독일 국민들로부터 가족기업이면서도 존경을 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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