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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 증권사엔 '펀드매니저'가 없습니다 [thebell note]

최필우 기자공개 2020-06-30 13:01:24

이 기사는 2020년 06월 26일 08:02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수습 생활을 마치고 자산관리 취재 기자로 발령 받은 2016년 7월 영화 '부산행'을 봤다. 1000만 관객을 모으며 대박을 친 이 영화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마동석이 공유의 직업을 '증권사 펀드매니저'라 듣고 그를 '개미핥기'라 칭한다. 이 장면은 펀드매니저를 돈밖에 모르는 인간 군상으로 표현하면서 수많은 개미투자자에게 통쾌함을 선사했다.

이상한 건 증권사 펀드매니저라는 표현이다. 증권사 펀드매니저라는 직업은 없다. 증권사는 펀드를 파는 판매사고 펀드매니저는 펀드를 설정해 운용하는 자산운용사 소속이다. 시나리오 작가가 이 개념을 몰랐는지 알길이 없지만 결과적으로 영화는 보통 한국인의 펀드에 대한 인식을 정확히 반영했다. 펀드에 가입하면 증권사가 돈을 알아서 잘 굴려줄 것으로 생각하는 고객이 태반이다.

영화 개봉 후 4년이 흐른 지금도 국내 투자자들의 펀드 인식에는 큰 변화가 없다. 최근 옵티머스자산운용 환매 중단 사태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옵티머스자산운용의 펀드 설정액은 5000억원이 넘는다. 이중 90%가 NH투자증권에서 팔렸다. 이번 사태 전에는 전혀 주목받지 못한 옵티머스자산운용 스스로 이만한 금액을 모으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고객들이 NH투자증권이라는 '이름값'을 믿고 투자했다는 얘기다.

사기 사건에 휘말릴 상품을 판 NH투자증권도 할 말이 없지만 대다수 고객들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건 마찬가지다. 옵티머스자산운용 상품은 사모펀드다. 당시 기준으로 사모펀드 최소가입금액은 1억원이다. 상품을 권유한 증권사 PB만 믿고 맡기기엔 적지 않은 금액이다. 당사자들은 기가 막힐 노릇이겠지만 펀드 제안서를 받기 전엔 이름 한번 들어본 적 없는 곳에 수억원을 맡기는 의사결정도 공감을 얻긴 어렵다.

이 상품이 라임 사태 이후 불티나게 팔렸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1년간 금융상품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이해관계자들은 일관된 방식으로 대응했다. 판매사와 운용사는 저자세를 취하고 건수를 찾은 법무법인은 집단 소송을 준비한다. 뒷짐을 지고 있던 금융당국은 책임론이 불거지면 판매사 옆구리를 찔러 배상을 유도한다. 결국 고객들의 투자 행태는 달라지지 않고 또 다른 사기 사건이 반복된다.

악순환을 끊으려면 사모펀드 제도 개선과 판매사 영업 문화 개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고객에게 할 말을 해야 한다. 한 펀드에 수억원을 투자하는 고객에게도 펀드매니저와 자산운용사를 스스로 검증할 마땅한 책임이 있다고 말이다.

금융 당국은 사모펀드 전수조사 같은 언발에 오줌누기 대책으로는 추가 피해를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펀드가 잘못되면 다 증권사 탓이라는 고객 인식을 바로잡는 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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