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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업 공정경제 트래커]호텔신라, '동화면세점 악연' 중소특허 침범 위기김기병 회장과 주식매매 청구 소송, 2심 재판부 '경영권 취득 목적' 계약 인정

김선호 기자공개 2021-04-13 08:14:43

[편집자주]

2010년대 초반 정치권을 중심으로 확산된 '경제민주화'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현재 '공정경제'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재계에 더 날카로운 칼날이 드리워졌다. 특히 유통업계는 중소상공인과 상생이 필요한 영역으로 공정경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상위권 대그룹과 달리 여전히 구태 흔적이 역력한 유통기업들은 이제 비로소 변화를 준비하는 출발선에 서 있다. 유통기업들의 공정거래 현주소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진단해 봤다.

이 기사는 2021년 04월 12일 16: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대규모점포에 적용되는 규제의 칼날은 면세점에도 존재한다. 대기업의 면세점 출점을 제한하는 한편 중소·중견기업의 시장 진입을 용이하기 위해 정부가 이들에게 별도로 특허 사업권을 발급해주는 제도를 도입 운영한데 따른 것이다. 이에 대기업은 당연히 중소·중견 면세점을 운영할 수 없게 됐다.

이런 가운데 최근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 발생했다. 대기업집단에 속하는 호텔신라가 중소·중견 동화면세점의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호텔신라로서는 원치 않는 기업이 자회사로 편입되는 것으로 사실상 동화면세점의 존폐 위기까지 거론되고 있다.

호텔신라는 이러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기존 동화면세점의 최대주주인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을 상대로 진행 중인 법정 공방에서 승기를 잡아야만 한다. 만약 최종 3심에서조차 패소할 경우 호텔신라는 공정경제의 칼날까지 맞아야 하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신세계 견제카드' 롯데관광개발 유동성 지원이 불씨

2013년 호텔신라는 김 회장이 보유한 동화면세점 주식 19.9%를 600억원에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와 함께 계약 체결일로부터 3년이 지난 후 매도청구권(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게 했다. 만약 김 회장은 채무 불이행 시 동화면세점 지분 30.2%를 추가로 내놓기로 했다.


이러한 계약이 맺어진 배경에는 신세계그룹의 움직임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롯데관광개발은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할 정도로 위험한 상태였다. 김 회장은 결국 보유한 동화면세점 지분을 매물로 내놨고 신세계그룹이 인수 의향을 내비쳤다.

면세업계 고위 관계자는 “신세계그룹이 부산 파라다이스 면세점에 이어 동화면세점까지 인수할 경우 업계 2위인 호텔신라(신라면세점)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라며 “신세계그룹의 서울 면세시장 진출을 막기 위해 호텔신라가 김 회장에게 거금을 빌려주게 됐다"고 전했다.

이를 통해 김 회장은 동화면세점 최대주주 지위를 지키면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호텔신라의 경우 동화면세점 지분 확보와 동시에 대기업 경쟁사의 시장 진출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다. 물론 경쟁력 있는 업체였던 동화면세점을 품에 안을 기회도 노려볼 수 있었다.

동화면세점은 롯데·신라면세점에만 입점해 있는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등 세계 3대 명품 브랜드 매장을 보유한 경쟁력 있는 업체 중 하나였다. 하지만 현재는 경쟁심화와 맞물려 중국 경제보복과 코로나19를 겪으며 점포 규모가 줄고 기존 명품 브랜드 대부분이 철수한 상태다.

◇김기병 회장 디폴트 선언, '동화면세점' 지분 매도청구권 다툼

국내 면세시장의 영업환경은 호텔신라에게 호의적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2013년 면세점 사업 운영 특허를 대기업과 중소·중견으로 나뉘어 운영하는 관세법 개정안이 시행됐고 이 가운데 다수의 업체가 시장 진입하며 경쟁도 심화됐다.

이 과정에서 호텔신라가 애써 진출을 막고자 했던 신세계그룹도 ㈜신세계의 자회사로 신세계디에프를 설립하고 2016년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관에 면세점을 개점했다. 서울 지역에 면세점 신규 특허가 잇따라 발급됐고 이를 신세계디에프가 거머쥐었다.

'경제민주화'가 화두였던 2012년부터 면세점이 대기업의 배만 불리는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여론에 힘입어 중소·중견 기업만 참여할 수 있는 면세점 특허가 발급됐다. 이 과정에서 동화면세점은 자연스레 중소·중견 기업으로 분류돼 운영됐다.


때문에 호텔신라는 동화면세점의 지분을 굳이 보유할 필요가 없어졌다. 주식매매계약이 이뤄진 3년 뒤인 2016년 매도청구권을 행사하고 김 회장에게 동화면세점 지분 19.9%를 재매입하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디폴트(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담보로 제공했던 동화면세점 지분 30.2%를 내놓기로 결정했다. 호텔신라는 당연히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담보 지분을 추가 취득할 시 호텔신라는 동화면세점 지분 50.1%를 보유,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호텔신라가 동화면세점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될 시 중소·중견 면세점이 대기업집단에 속하게 되는 것으로 현행 관세법 상의 면세점 특허제도와 맞부딪히게 된다. 사실상 2013년 관세법 개정과 함께 호텔신라와 김 회장 간의 소송 전은 이미 예고된 것과 같은 셈이다. 신세계그룹의 면세시장 진출을 방어하기 위한 호텔신라의 전략이 지금에서는 패착이 됐다는 평가다.

◇2심 재판부 "경영권 취득목적 계약"…관세청 "기재부에 유권 해석 요청"

호텔신라는 결국 2017년 김 회장을 상대로 주식매매대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호텔신라 측은 김 회장이 롯데관광개발의 용산개발사업 부실 해결을 위해 600억원을 요구했고 동화면세점 지분을 담보로 이를 빌려줬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반환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1심에서 법원은 호텔신라의 손을 들어줬고 김 회장에게 총 788억1047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2심에서 판세가 뒤바뀌었다. 법원은 계약 시 호텔신라가 동화면세점의 경영권 취득 의사를 지니고 있었다고 바라봤다. 김 회장이 잔여주식을 위약벌로 귀속시키는 이상 추가 청구하지 않기로 약정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석이라고 판시했다.

2심 판결대로면 대기업 호텔신라로서는 불가피하게 중소·중견 기업에게 허용된 면세시장에 발을 담그게 된다. 불가침 영역에 침범하게 되는 셈이다. 이와 같은 유례없는 일이 발생하면서 면세점 특허를 관리 감독하는 관세청도 혼란에 빠졌다. 면세점 특허 기간 도중 중소·중견 기업이 대기업집단에 속하게 된 적은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다.

관세청 관계자는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해야 되는 사항으로 현행 관세법 적용 여부에 관한 유권 해석을 받아야 봐야 한다”며 “동화면세점의 특허를 기존대로 존속시켜야 할지 또는 특허를 박탈해야 될지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호텔신라는 3심까지 진행해 최종 판결을 받아볼 계획이다. 2심까지 진행된 판결문을 토대로 살펴볼 때에 주요 쟁점 사항은 2013년 계약 당시 호텔신라가 동화면세점의 경영권 확보에 대한 의사가 있었는지에 대한 해석이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2심 판결은 납득을 할 수 없는 결과로 법무팀에 요청해 현재 3심을 진행하기 위한 준비를 해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전했다.

반면 김 회장 측은 "소송이 끝난 뒤 정부의 조치에 따라 동화면세점을 운영하면 된다"며 "정부의 지침이 내려진 후 경영에 대한 여러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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