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에 낀 삼성]중국삼성, 황득규 체제 3년 변화는②中사업 방향타 '세트→부품' 전환…완제품 생산기지 매력 저하
원충희 기자공개 2021-05-25 08:14:23
[편집자주]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자국주의'가 한층 맹렬해지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삼성도 두 고래의 헤게모니 다툼에 자칫 새우등 터질 수 있는 만큼 경영과 투자 모두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특히 미중 슈퍼파워 게임의 격전장이 된 반도체 산업은 더욱 민감한 상황이다. 삼성의 미·중 사업현황을 점검하고 이들을 둘러싼 글로벌 시장 환경을 들여다봤다.
이 기사는 2021년 05월 18일 13:4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의 중국사업 총괄조직인 '중국삼성'은 2017년 그룹 미래전략실 해체 후 삼성전자 휘하로 편제됐다. 사령탑도 중국통이었던 장원기 사장에서 황득규 사장(사진)으로 바뀌었다. 황 사장 체제 3년 동안 텐진과 후이저우, 쑤저우 등의 PC, TV, 스마트폰 생산라인이 잇따라 중단·청산됐다. 미전실 해체의 여파와 삼성의 대 중국 전략 변화가 반영된 결과다.이 와중에도 삼성의 중국 내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투자는 되레 늘었다. 완제품 생산기지로서의 매력은 떨어진 반면 반도체 최대 구매자 역할이 더 부각된 형세다. 삼성에게 중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지만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관계가 험악해지면서 애매한 상황에 처했다.
중국삼성은 1995년 그룹 차원에서 중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미전실 산하에서 중국에 진출한 주요 계열사들을 컨트롤해 왔다. 미국과 더불어 세계 양대시장인 중국은 삼성으로서도 공들일 수밖에 없는 시장이다. 미전실 해체 후 삼성전자 내에 남아있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당시 삼성은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발 경제위기의 타개법 중 하나로 중국시장 공략에 매진했다. 선진시장인 유럽과 미국이 침체된 가운데 여전히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던 중국시장은 기회의 땅이었다. 이재용 부회장이 시진핑 주석을 만나고 최지성 당시 미전실장 등이 중국을 직접 방문해 사업현황을 점검하는 등 그룹 고위층의 관심이 컸다.
미전실 해체 후 중국삼성에 변화가 있었다. 6년간(2012~2017년) 대표를 맡았던 중국통 장원기 사장이 물러나고 반도체와 디바이스솔로션(DS) 부문에서 잔뼈가 굵은 황득규 사장이 선임됐다. DS부문 기획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인 2013년 삼성의 유일한 해외 메모리 반도체 생산기지 중국 시안공장 건설에 기여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황 사장 체제 3년간 삼성전자의 중국사업 기류는 변했다. 주요 세트 관련 사업은 청산 또는 축소됐다.
지난해 중국 텐진삼성통신연구원(SRC-Tianjin)이 청산됐다. 앞서 2018년 톈진 스마트폰 공장의 가동 중단에 따른 후속조치다. 2015년부터 생산량을 줄이면서 정리작업에 들어갔던 곳이다. 중국 내 마지막 스마트폰 생산기지인 후이저우 소재공장 가동도 작년 10월 중단됐다.
생활 가전도 비슷한 형국이다. 삼성전자의 유일한 TV 생산지였던 텐진 TV 공장이 지난해 11월에 가동을 중단했다. 현재 남은 삼성전자의 중국 생산기지는 쑤저우 가전공장과 반도체 후공정 공장, 시안 반도체 공장 등이다.
스마트폰과 TV 등은 현지업체들의 빠른 성장과 경쟁심화로 삼성의 시장점유율이 급락하면서 위기감이 컸다. 중국에서 직접 생산하는 게 경영상 이득은커녕 손해에 이르자 생산라인을 아예 철수해버렸다.
이것만 보면 삼성의 탈중국 행보가 가시화 된 듯하다. 하지만 이면에는 다음 움직임이 있었다. 중국 현지언론에 따르면 삼성은 2019년까지 중국에 400억달러(약 45조원)를 투자했는데 그 중 300억달러(약 34조원)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에 유입됐다.
2017년 시안 반도체 2공장에 3년간 70억달러(약 8조원)를 쏟겠다고 발표한 후 2019년 80억달러(약 9조원) 추가 투자에 나섰다. 낸드플래시 메모리 분야 강화를 위해서다. 전반적으로 세트(가전·휴대폰) 사업은 중국에서 빠지는 대신 반도체, 차량용 배터리 등 첨단사업 비중은 더 커지는 추세다.
장원기 전 중국삼성 사장이 주로 LCD분야에서 근무했던 것과 달리 황 사장이 DS부문에서 경력을 쌓아온 점에 비춰보면 삼성의 중국사업 방향은 완제품에서 부품사업으로 변환되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중국시장은 여전히 중요한 시장이긴 하나 세트(완제품) 생산기지로서의 매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반도체의 경우 운송에 큰 비용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거대시장에 같이 있는 게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대립구도가 심화되면서 삼성의 입장은 애매해졌다. 글로벌 기업이 첨예한 국제정치 사이에 끼면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을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롯데 등 여러 회사가 곤욕을 치른 것이 몇 년 되지 않은 일이다. 삼성도 중국 내 반도체 투자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삼성의 위상 변화가 다시 한번 나타날 가능성도 점쳐진다.
삼성전자 전 고위관계자는 "중국삼성은 삼성의 중국사업 컨트롤타워 조직으로 예전부터 삼성전자 출신들이 요직을 맡았다"며 "주요 반도체 구매자들이 중국에 있는 만큼 전략도 매출 확대 같은 사업 부분적 전략보다 5~10년 계획 등 더 원천적인 걸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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