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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 토종 패션기업]독립문, '브랜드·사옥' 74년 역사 매물로④창업주 일가 이견 M&A 결렬, 네파 매각 후 효자브랜드 실종

김선호 기자공개 2021-06-01 11:11:00

[편집자주]

하얀 메리야스와 빨간 내복은 한국 근현대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 상품들이다. 국내 패션산업의 근간이자 토종업체들이 지금까지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옛 명성을 잃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전을 거듭하고 있다. 산업화의 역군으로 역사의 굴곡을 지나온 국내 패션업체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들춰본다.

이 기사는 2021년 05월 28일 10:1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947년 대성섬유공업사로 시작한 패션업체 독립문은 올해로 74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독립운동가이자 창업주 김항복 회장이 메리야스에서부터 시작해 PAT 자체 브랜드를 출시하며 외형을 확장해나갔다. 그러나 부진한 성적표를 거두며 매물로 거론되고 있는 중이다.

독립문은 2012년 네파 브랜드를 매각한데 이어 2019년 사옥까지 매각했다. 네파 브랜드 매각 이후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효자 브랜드를 키워내지 못하면서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었고 결국 서울 휘경동 사옥까지 매각해 자금을 확보했다.

사실상 시장에서 독립문이 매물로 거론된 것은 2018년부터다. 인수·합병(M&A)이 진행돼 MOU(양해각서)까지 체결했지만 결국 결렬됐고 자체 생존 전략을 수립해야만 했다. 2019년 100년 장수기업이 되겠다고 선언했지만 또 다시 매물로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독립운동 가문의 승부수 '메리야스→패션'

독립문 CI
‘독립문 메리야스’는 한국전쟁 후 피폐해진 국내 경제에 나름대로의 활기를 불어넣었다. 창업주 김 회장은 오랜 식민 생활로 옷이 없고 배고픈 국민들을 보고 누구나 추위 걱정 없이 따뜻하게 겨울을 나게 하겠다는 다짐으로 회사를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이 설립한 대성섬유공업사는 독립문이라는 상표를 사용했다. 김 회장이 서대문형무소 생활 중 독립문에 깊은 인상을 받고 상표 이름을 동일하게 지었다. 이후 1961년 평안섬유공업, 2010년 평안엘앤씨, 2018년에 이르러 메리야스 상표는 현 사명이 됐다.

1971년 출시한 PAT 브랜드는 제2의 도약을 이끌어냈다. 내의업체를 넘어 패션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가기 시작한 시기다. 1975년 기업공개 후 국내 패션기업 최초로 전문대리점 체제를 도입했지만 1980년 오일쇼크 충격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오너 2세 김세훈 회장은 수익 중심 경영으로 독립문을 회생시켰다. PAT를 대표하는 코뿔소 심벌로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하는 가운데 캐주얼, 스포츠, 골프, 아동복, 유아복 등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며 1985년 전국 유명 백화점에 입점하는 등 옛 명성을 되찾았다.

2000년 사업지휘봉을 넘겨 받은 오너 3세 김형섭 전 대표는 2005년 이탈리아 본사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NEPA)를 인수해 2010년 연매출 1300억원에서 2012년 4000억원까지 성장시키고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에 매각했다. 이때만 해도 독립문은 승승장구였다.

◇'오너→전문경영인 대표체제'…불발된 매각

네파 매각 이후 부진한 실적이 이어졌다. 당시 김 전 대표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동생 김형숙과 그의 남편 조재훈 전 공동대표에게 경영을 맡겼다. 이들은 PAT 브랜드를 리뉴얼해 매출을 다시 끌어올리기는 했지만 2017년부터 다시 내리막길을 걸었다.

현재 독립문이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는 PAT, 엘르 골프, 엘르 스포츠, 데미안 등이다. 엘르 골프와 스포츠는 각각 2008년과 2015년에 인수한 브랜드다. 데미안은 여성복 브랜드로 2016년 독립문 품에 안겼다. PAT 이외에는 모두 외부에서 인수한 브랜드다.

보유 브랜드가 노후화된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2019년 오너일가가 경영 전면에서 내려오고 홍인숙 대표를 대표직에 앉혔다. 이로써 독립문에 전문경영인 체제가 도입됐다. 홍 대표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조직 개편을 단행하며 온라인 사업 확장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지난해 코로나19 타격을 받으며 독립문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16.7% 감소한 1134억원을 기록했다. 오히려 영업적자는 75억원으로 21.2% 증가했다. 이는 더는 자체 회생이 힘들다는 판단 하에 매각을 진행하게 된 배경으로 작용했다.

아웃도어 브랜드 머렐(MARREL)을 운영하는 엠케이코리아가 매물로 나온 독립문의 원매자로 나섰다. 독립문의 기업가치는 약 600억원으로 책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엠케이코리아로서는 독립문이 보유한 브랜드와의 머렐이 충분히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업계에 따르면 독립문 측이 최종 협상 과정에서 매각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달하면서 최근 M&A가 불발됐다. 독립문 주주 간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으면서 결국 매각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독립문의 최대주주는 캐나다 투자회사 코브 인베스트먼트(Corv. Investments)다. 코브 인베스트먼트는 오너 4세 김스캇의석이 지분 100%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최대주주의 관계사이자 싱가포르 투자회사 팰 파트너스가 26.1%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최대주주의 친인척으로는 김형숙 3.1%, 김존민석 1.1%, 김스캇의석 1.7%, 조조수아민호 1.7% 지분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보면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김스캇의석 씨는 독립문 매각에 긍정적이었지만 나머지 오너일가가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립문은 M&A 시장에서 여전히 매물로 거론되고 있다. 향후 주주 간의 의견 합일만 이룬다면 충분히 재매각을 진행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새 주인을 맞이할 시 독립문으로서는 독립운동가로부터 이어져온 김 씨 오너일가의 명맥은 사라지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의류시장은 진입장벽이 낮아 점차 경쟁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 중”이라며 “때문에 노후화된 국내 토종 브랜드의 설 자리가 점차 좁아지고 있는 중으로 전폭적인 변화와 혁신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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