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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60년 히스토리]비상 꿈꾸는 HDC현대산업개발⑪주택편중 구조, 영역확장 시도 꾸준…아시아나 놓친 후 실탄 활용 주목

고진영 기자공개 2021-10-19 07:44:56

[편집자주]

건설업계에선 해마다 시공능력을 줄세우는 성적표가 매겨진다. 항목별 점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업계의 '파워 시프트(Power Shift)'를 짐작해볼 수 있는 연례 이벤트와 다름없다. 특히 대형사들에게는 상징성 싸움이자 자존심 문제로도 의미가 있다. 도입 60년, 시공능력평가를 통해 시장의 판도 변천사를 되짚어봤다.

이 기사는 2021년 10월 14일 10:3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현대가(家)에서 뻗어져나온 줄기다. 뿌리는 아파트에 두고 있다. 현대건설 주택사업부가 독립해서 세운 ‘한국도시개발’이 그 모태이니 플랜트에 강한 현대건설과는 출발점부터 달랐던 셈이다.

편중된 사업구조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다. 부동산경기가 훈풍일 때는 덕을 봤지만 대외변수에 쉽게 흔들렸다. 성장이 한계에 부딪히자 경쟁사들에게 추월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시평 5위 주변을 오르내렸던 20년 전과 달리 지금은 10대 건설사 최하위권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간 끊임없이 사업 확장을 꾀해온 것도 이런 약점과 무관치 않다. 2년 전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라는 엄청난 모험을 감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딜을 철회하면서 ‘대도약’의 꿈도 일단은 미뤄졌다.

◇'포니 정' 부자, 자동차에서 건설로…현대그룹과 작별

현대산업개발은 1976년 현대건설에서 떨어져나온 한국도시개발, 1977년 정인영 회장이 설립한 한라건설이 1980년대 중반 합쳐지면서 탄생했다. 1985년 기준 시공능력 평가순위는 21위로 30위권 안쪽, 90년대에는 10위권에 진입했다. 그러다 1999년 첫 번째 변혁기를 맞는다. 그룹의 핵심계열사인 현대자동차 소유권을 두고 경영권 다툼이 벌어졌던 탓이다.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넷째 동생인 정세영 회장은 아들 정몽규 회장에게 현대차를 물려주길 원했다. 정세영 회장은 현대차 초대 사장으로 국내 최초의 승용차 ‘포니’를 개발해 ‘포니 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인물이다. 정몽규 회장도 1988년 학업을 마치곤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아버지의 길을 따랐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의 적자인 정몽구 회장 역시 현대차를 양보하려들지 않았기 때문에 갈등이 불가피했다.
정세영 HDC그룹 명예회장

조카에게 현대차를 내준 정세영 회장이 옮겨온 곳이 현대산업개발이다. 그는 1999년 4월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에 올랐으며 아들 정몽규 회장이 회사 운영의 키를 잡았다. 같은 해 8월엔 현대그룹과의 계열 분리로 완전히 이별했는데, 과정이 씁쓸했던 만큼 회사에 대한 정 회장 부자의 애착도 대단했다.

낯선 산업과 마주친 정몽규 회장은 자동차업계에서 쓰이던 방식을 건설업에 도입했다. 품질관리를 위한 '라인스톱제'가 대표적이다. 자동차 제조라인에서 불량이 생기면 모든 생산 공정을 멈추는 형태인데 건설공사에 이를 적용한 것은 처음이었다.

독자적 길을 걸으면 경영이 삐걱거릴 것이란 시장의 우려 역시 빗나갔다. 주택과 플랜트, 토목 분야에서 굵직한 프로젝트를 수행한 덕분에 시평 순위는 1998년 7위에서 1999년 6위, 2000~2001년 5위로 우상향을 그렸다.

그러다 홀로서기 2년째, 2000년에는 과거 한몸이었던 현대건설과 자존심 싸움이 있었다. 서울 금천구 한양아파트의 재건축 시공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는데 무려 99.7%의 조합원이 현대건설에 표를 던졌다. 현대산업개발로서는 참담하고 억울한 결과였다.

사실 현대아파트 브랜드를 키운 데는 현대산업개발의 공이 더 컸기 때문이다. 1962년부터 2000년 즈음까지 건설된 현대아파트 60만 가구 가운데 절반인 30만 가구는 현대산업개발이 지었다. 국내 최초의 단지형 공동주택인 압구정 현대아파트 역시 80% 이상은 현대산업개발의 몫이었다.

시공능력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성을 실감한 현대산업개발은 2001년 3월 주택 브랜드 아이파크(I'PARK)를 론칭해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외관과 조망 등 디자인을 주요 포인트로 삼았으며 2003년에는 아이파크를 주거용·상업용 건축물 브랜드로 통합하기도 했다. 삼성동 아이파크와 부산 해운대 아이파크 등은 지금도 지역을 대표하는 아파트로 평가받는다.

◇뒤쳐진 성장 속도, '부스터' 절실

그러나 4~6위를 안정적으로 맴돌던 시평 순위는 2007년 즈음부터 영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만년 7위로 뒤쳐져 있던 포스코건설이 그 해 현대산업개발을 제치고 6위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0년에는 롯데건설에 밀려 8위, 2013년에는 SK에코플랜트에게 자리를 뺏겨 9위까지 내려앉았다.

현대산업개발이 부동산경기 불황으로 주택사업을 축소한 게 원인이었다. 10대 건설사 대부분이 해외로 눈을 돌린 반면 현대산업개발은 해외 시공실적이 사실상 전무해 침체된 시장을 극복할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2013년에는 대규모 부실털기로 창립 이후 첫 적자를 기록하면서 이듬해 시평이 13위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2000년대에 들어선 이후 10위권에 랭크되지 못한 것은 처음이었다. 정 회장은 무보수 경영을 선언하는 등 비상체제 운영에 나섰다. 또 분양시장이 재차 호조세를 보이면서 2014년 흑자 전환에 성공, 2015년에는 다시 10위로 복귀할 수 있었다.

다만 10대 건설사 지위를 되찾긴 했어도 상위권의 벽을 뚫기는 요원했다. 10위에서 2017년 잠시 8위로 오르기도 했으나 2019년부터 올해까지는 3년째 9위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한때 라이벌이었던 포스코건설과는 좁히기 힘들 정도로 격차가 벌어졌다.


◇아시아나항공 베팅과 철회, 여전한 갈증

그동안 단순한 건설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격적인 기업 확장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미 2005년 호텔업 진출을 시작으로 리조트와 면세사업까지 뛰어들면서 계열사만 20여곳에 달한다.

2018년 지주회사인 HDC와 사업회사 HDC현대산업개발로 조직을 나누고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이후에는 이런 움직임이 더 활발해졌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를 인수했고, 2019년 역시 한솔개발(한솔오크밸리) 인수, 한화에너지와 통영천연가스발전사업 공동추진 등을 진행했다.

2019년 말의 경우 아시아나항공 M&A에 뛰어드는 뜻밖의 승부수로 시장에 놀라움을 안겼다. 2조5000억원에 이르는 통큰 베팅이었다. 그동안 여러 인수합병을 했지만 대부분 가격이 떨어진 알짜 매물이 타깃이었다는 점에 비춰볼 때 대단한 결심이었다.

현대산업개발이 우선협상대상자 최종 확정을 밝힌 2019년 11월 12일에는 정몽규 회장이 직접 기자간담회를 주도하기도 했다. 좀체 공식석상에 나오지 않았는데 오랜만의 등장이었다. 그만큼 자신감과 의지가 굳건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무조건 인수해야 한다는 특명까지 하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시기가 얄궂었다. 갑작스레 코로나19가 등장하면서 항공업 사정이 급격히 나빠진 탓이다. 저점인 것은 분명하니 제자리만 찾는다면 업사이드를 기대할 수 있었지만 반등 시기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정 회장은 자꾸 결단을 미뤘고 매도자 측은 결국 협상 종결을 공식화했다.

딜이 무산되면서 현대산업개발은 시장에 만연해 있던 '승자의 저주' 우려를 털어냈다. 하지만 해묵은 건설 편중 이슈를 해결하고 자산총액 22조원의 대형그룹으로 발돋움할 기회 역시 사라졌다. 미련이 없었을 리 만무하다.

업계 관계자는 "정몽규 회장은 HDC그룹을 자산 10조원대 대그룹으로 키워냈음에도 종합부동산·인프라그룹, 그 이상의 도약에 대한 갈증이 있다"며 "지금 보유한 현금만 2조원이기 때문에 사업 확장에 대한 욕심도 실탄도 여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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