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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주도' 조선·항공 빅딜, 공정위의 선택은? ⑧재계 3위에 넘긴 하이닉스, 결합 심사 피해가...빅딜,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박상희 기자공개 2021-11-04 10:27:37

[편집자주]

M&A(인수합병)는 ‘돈의 논리’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풍부한 자금력을 보유해도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무위로 돌아간다. 독과점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기업결합 심사는 공정위의 존재 이유와 맞닿아 있다. 동시에 국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심사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경제와 산업 경쟁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다. 더벨은 아시아나항공과 대우조선해양 M&A를 중심으로 '기업결합 심사'라는 고차 방정식을 다면적으로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2021년 11월 02일 08:2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약 10여년 전 하이닉스 반도체가 시장에 매물로 나왔을 때 삼성그룹에 하이닉스 반도체 인수를 제안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삼성그룹에 대한 특혜라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을 것이다. 무엇보다 삼성전자가 하이닉스를 인수할 경우 독과점 제한에 걸리게 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일까.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 하이닉스 반도체 매각을 추진했을 때 삼성그룹에 공식적으로 인수를 제안하지는 않았다. 1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산업은행은 국내 조선사 ‘빅3’ 가운데 1위인 현대중공업에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제안했고, 유이한 대형항공사(FSC) 가운데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도록 구조를 짰다. 이른바 '대마불사(大馬不死)' 전략으로 위기의 파고를 넘겠단 심산이다. 산업은행에 기업결합 심사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

◇아시아 외환위기 반도체 빅딜과 20년 후 조선·항공업 빅딜, 결말은

우리나라 경제사에서 ‘빅딜(Big Deal)’이란 단어는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라는 위기 상황에서 등장했다. 반도체와 자동차는 두 개 그룹에, 석유화학은 한 개 그룹에 몰아주겠다는 정부 차원의 정책이자 전략이었다. 이후 빅딜은 재벌 간 대규모 사업 교환을 일컫는 말로 자리 잡았다. 당시 빅딜로 LG그룹은 피눈물을 흘리며 LG반도체를 매각해야 했다.

결과론적으로 당시 정부가 시장의 반발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몰아 부친 인위적인 ‘빅딜’은 실패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시장에 정치가 개입할 경우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종종 회자된다. LG반도체를 인수한 현대반도체는 인수대금을 마련하느라 허리가 휘청거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반도체 불황이 겹치면서 하이닉스 반도체는 10조원의 부채를 떠안고 채권단 관리 체제로 들어간다.

이후 하이닉스 반도체가 ‘제대로 된’ 주인을 찾은 것은 2011년이 되어서였다. SK그룹의 하이닉스 반도체 인수는 최태원 회장의 경영 인생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으로 손꼽을 만하다. 통신과 정유 두 축으로 움직이던 SK그룹은 반도체 사업 관련 경험이 없었다. 자칫 무모한 도전이 될 수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당시 하이닉스 반도체가 재계 3위인 SK그룹에 매각된다는 점에서 ‘부의 집중’이나 ‘재벌 특혜’ 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인수대금 2조원 이외에도 반도체가 자본집약적 산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추가적으로 수 조원의 자금을 투입해야만 하이닉스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다. ‘정유와 통신‘이라는 내수 필수재 사업 구조를 통해 안정적인 현금 창출이 가능한 SK그룹이 적격이라는 지지의 목소리가 훨씬 컸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에게도 SK하이닉스 사례는 아시아 외환위기 사태 이후 공적 자금을 대거 투입한 기업의 성공적인 매각 사례로 손꼽힐만하다. 산업은행은 제2의 SK하이닉스 성공 사례를 쓰고 싶었던 걸까.

채권단 관리 체제에 있던 대우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에 인수 의사를 타진했고, 우리나라에 두 개 뿐인 대형 항공사(FSC)는 인수합병(M&A)을 통해 하나의 회사가 되도록 구조를 짰다. 결과적으로 우월한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위치를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의사결정을 내린 것이다. 해당 거래로 현대중공업그룹과 한진그룹의 자산 및 매출 규모가 커지면서 부의 집중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대우조선해양과 아시아나항공, 그리고 하이닉스 반도체 사례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지 않았던 SK그룹은 기업결합 심사 문턱을 어떻게 넘을 것인지 걱정할 염려가 없었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과 아시아나항공은 경우가 다르다. M&A로 인해 독과점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 자명하고, 경쟁 제한성이 발생하는 구조다.

◇반기업 정서 강한 현 정권, 조선·항공업 구조조정은 대기업 힘싣기?

우리나라에 공정거래법이 도입된 것은 1980년이다. 그 이전까지는 독과점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없었다. 재벌로 일컬어지는 대기업집단은 종종 정부의 특혜를 등에 업고 성장했다고 비판받는데, 그런 지원이 가능했던 것은 공정거래법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던 사회 구조적인 요인이 있었다는 분석이다.

대기업집단에 속한 계열사 대부분은 각자가 영위하는 사업이 속한 시장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대규모 자본을 활용해 독과점적 지위를 더욱 강화하려는 행보를 보인다.

상품시장에서는 판매자로서 독과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고, 원료, 부품, 자본, 노동 등과 같은 생산요소 시장에서는 구매자로서 독과점적 지위를 확보한다. 이를 활용해 상품시장에서는 높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고, 노동시장과 자본시장에서는 저임금이나 저리로 노동과 자본을 공급받는다. 원료나 부품시장에서는 가격 압박을 가할 수 있다. 독과점적 지위가 갖는 힘이다. 대기업이 M&A를 통해 세를 키울수록 역으로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 승인의 문턱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에 대한 인지 감수성은 산업은행보다 기업들이 더 높다는 것이다. 공정거래법 전문가는 “보통 해당 산업군 플레이어 가운데 3~5위 사업자 간 기업 결합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결합심사 승인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톱티어(top-tier) 간 M&A는 이례적인 경우에만 이뤄진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의 제안이 아니었다면 현대중공업이 먼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겠다고 나섰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결합 심사 리스크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2011년 하이닉스 반도체 거래는 3차 공개매각에 의해 이뤄졌다. 추후 STX가 인수의사를 자진 철회하긴 했지만 SK그룹과 STX가 인수전에 참여하면서 경쟁 입찰 구도가 마련됐다. 대우조선해양과 아시아나항공은 달랐다. 산업은행이 현대중공업과 대한항공에 의사를 타진했고, 기업들이 수락하면서 거래가 성사됐다.

물론 감안해야 할 상황적 요소는 있었다. 조선업은 장기 불황으로 인해 구조조정이 불가피했고, 생존을 위해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품어야 한다는 논리가 동원됐다. 항공업 역시 불가항력적인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발발하면서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간의 기업결합 건은 2019년 7월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간의 기업결합 건은 2021년 1월에 각각 신고서가 제출됐다. 이후 시간이 많이 흘렀다. 조선업은 오랜 만에 ‘수주 잔치’를 하고 있고, 전세계적인 탄소중립 흐름과 맞물려 LNG선 건조가 호황을 맞고 있다. 여객 대신 화물 수송으로 버티던 항공업도 백신 보급에 힘입어 여행 수요가 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산업은행 vs 공정위, 대마불사 동상이몽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산업은행도 비판의 화살을 피해가지 못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산업은행이 판을 짰고, 현대중공업과 대한항공은 체스 판 위의 검은 말과 흰 말에 불과하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심사 관련 기업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현재 심사가 마무리 되지 않은 상황이라 할 수 있는 말에 제약이 있다"면서 "각국 기업결합 심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과 대한항공이 각각 대우조선해양과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인수 대상 회사에 투입한 자금은 없다”면서 “현대중공업의 경우 EU가 요구하는 것처럼 LNG선 사업을 매각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결정이기 때문에 기업결합 심사에서 미승인 나서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포기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 정권은 친기업보다는 반기업 성향이 강하다. 흔히 ‘재벌’이라고 일컬어지는 대기업집단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경계한다. 정권 초기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10대 그룹 지배구조 개선, 총수 일가 일감 몰아주기 조사에 공을 들인 게 대표적이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행보는 공정위와 결을 달리했다. 국내 1·2위 사업자 간 기업 결합을 과감히 추진한 것이 대표적이다. 산업은행의 결정은 경쟁 제한성을 감수하더라도 기존 대기업집단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구조다.

재계 관계자는 "현 정권은 재벌이나 기업에 상당히 비판적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산업은행 주도로 시작된 조선사와 항공업 빅딜은 기존 1위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거래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면서 "공정위가 산업은행이 주도하는 빅딜에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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