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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와 지자체의 짬짜미 [thebell desk]

김용관 산업1부장 겸 부국장공개 2021-11-04 07:32:02

이 기사는 2021년 11월 03일 07:5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여년전, 퇴근 후 종로 피맛골에서 먹던 고등어구이와 김치찌개가 아직도 혀끝에서 생생하다. 연탄불에 노르스름하게 구워낸 짭짜름한 고등어 껍질은 그 어떤 것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고소했다. 거기다 매콤한 김치찌개로 입가심하면 소주 한병, 밥 한공기가 뚝딱이었다. 피맛골에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흐름한 식당들 천국이었다. 하루의 고단함을 만원 한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피맛골로 불리던 종로의 허름한 뒷골목은 2010년을 기점으로 상전벽해를 이뤘다. 대대적인 도심 성형 수술을 통해 노포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를 D타워, 그랑서울, 센트로폴리스 같은 고층 빌딩이 들어선다. 성형 수술로 얼굴을 다 뜯어고치듯 서울은 그렇게 옛 모습을 잃어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새로 들어선 빌딩 1층에 도시유적전시관이 있다는 것이다. 도심 재개발 과정에서 조선 시대 유물이 많이 발굴된 탓이다. 처리 방식을 놓고 서울시와 사업시행사가 머리를 맞댄 끝에 해법을 찾았는데, 그게 바로 도시유적전시관이다. 현대식 빌딩 안으로 들어온 박물관은 언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역사·문화 공간이 됐다.

여전히 "파면 나온다"고 할 만큼 매장 문화재가 많은 우리나라. 지난 한 해 문화재를 발굴하겠다고 신청해서 허가가 난 경우만 2500건이 넘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문화재 보존이냐, 지역 개발이냐를 놓고 첨예한 갈등이 벌어지는건 부지기수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인근에 25층까지 지은 아파트가 철거 위기에 놓여있다. 이 아파트는 '왕릉뷰'로 유명하다. 인천 검단신도시 내 3개 건설사(대방건설, 금성백조, 대광건영)가 지은 아파트에서는 조선왕릉 중 하나인 ‘김포 장릉’(사적 202호)을 그대로 조망할 수 있다. 장릉은 조선 16대 국왕인 인조의 아버지 원종(1580~1619)과 부인 인헌왕후(1578~1626)의 무덤이다.

문화재청이 이 아파트가 심의를 거치지 않았다며 공사중지 명령을 내리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건설사 측은 절차대로 공사를 진행했다고 하지만 이 아파트를 철거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까지 올라오는 등 첨예한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문화재위원회도 쉽사리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 높이를 그대로 유지한 채 다른 대안이 제시되면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고 위반 건축물 철거 명령이 내려지면 3500여 가구 입주 예정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규모 소송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건설사의 무한한 개발 욕망과 인허가권을 가진 지자체의 묵인이 만들어낸 인재(人災)라는게 건설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당사자들은 몰랐다며 책임을 떠넘기지만 그간의 경험상 받아들이기 힘든 해명이다. 건설사 고위 관계자는 "수없이 많은 개발 사업을 해온 건설사와 지자체가 장릉 이슈를 몰랐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건설사와 지자체의 짬짜미와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장릉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을 인지한 상황에서 사업계획서를 밀어부친 건설사의 책임인지, 그걸 알면서도 인허가를 내준 지자체의 책임인지 법적으로 판결이 나겠지만 애꿎은 입주 예정자만 피해를 입게 생겼다.

성형 중독에 빠진 아파트 개발 사업의 단면을 보여주는것 같아 안타깝다. 공급량 부족을 이유로 땅만 있으면 주변 사정 고려하지 않고 아파트를 지어대는 형국이다. 장릉이라는 얼굴 전체의 조화는 생각하지 않고 25층짜리 코만 오똑하게 세운 기형적인 성형 수술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번 사태를 야기한 건설사와 지자체가 보존과 개발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심각하게 고민해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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