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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져가는 아시아나가 HDC를 살렸다 [thebell desk]

이승우 자본시장부 부장공개 2022-02-14 12:55:49

이 기사는 2022년 02월 10일 07:46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정몽규 회장은 그래도 운이 좀 있는 것 같네요."

광주에서만 두번이나 대형 사고를 낸 건설사 오너에게 무슨 말인지 싶겠지만, 그럼에도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는 HDC 그룹을 두고 신용평가사가 한 말이다. 그 와중에 HDC현대산업개발은 안양시 관양동 현대아파트 재건축 시공권까지 따냈다.

건물 붕괴 사고가 발생하면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건 인명구조다. 그리고 분양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될지, 그리고 도급 회사들의 상황 등을 파악하는 순서일 것 같다.

기업 재무상태를 살피는 신용평가사들은 이와 접근법이 조금 다르다. 위기가 발생할 경우 가장 먼저 쳐다보는 건 기업의 '유동성'이다. 큰 위기가 오면 얼마만큼의 현금자산과 부채를 가지고 있는지 살피는 게 본능이다.

넉넉한 자본과 자산이 있더라도 당장 현금이 없으면 위기시 무용지물이다. 자금 마련을 위해 자산을 파는 사이 유동성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던 사례는 부지기수로 봐 왔다. 만기가 아직 남은 채권자들도 앞다퉈 자금을 회수하고 나선다. 물론 조기 상환 옵션도 걸려 있기 마련이다.

2021년말 기준 HDC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약 1조9000억원. 이중 예금 및 1개월 이내 단기채권에 묻어둔 돈이 1조7000억원이다. 기타 금융자산 740억원 등을 포함하면 즉시 가용한 유동성이 2조원에 육박한다.

그래서인지 HDC 채권자들은 느긋했다. 지난달 28일과 이달 1일 각각 만기도래한 2300억원, 1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동화증권 투자자들도 모두 만기를 연장해줬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이후 처음 만기가 돌아오는 유동화증권이어서 차환 여부에 모두가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었으나 기우였다.

2조원이라는 유동성이 채권자들을 안심시켰고 결국 HDC 그룹을 지탱해줬다. 이 유동성이 당장 없었다면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크레딧 시장 관계자들은 이야기한다.

"건설사들이 조 단위 유동성을 보유하는 일은 드뭅니다. 건물 붕괴 사고로 자본시장에서도 충격이 있었을텐데 이 유동성이 버팀목이 됐다고 봅니다"

운명의 장난일까. 마침 이 돈은 아시아나 인수 딜이 불발되면서 놀리고 있던 돈이다. 앞서 HDC 컨소시엄은 2019년 말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 구주 30.77%를 3228억원에 인수하고 2조1772억원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계약금으로 2500억원까지 쐈지만 결국 딜은 무산됐다.

이 딜을 위해 HDC는 유상증자 3200억원, 공모사채 3000억원, 사모사채 1700억원, 공사대금 유동화 3700억원, 은행대출 5700억원 등 1조7000억원에 달하는 실탄을 전방위적으로 마련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돈이 회사를 살렸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딜이 진행됐다면 이 돈은 이미 써서 없을 것입니다. 또 이 딜 자체가 없었다면 HDC는 부지 확보와 투자 등 자체 건설 사업을 위해 자금을 소진해 유동성을 크게 보유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쓰러져가는 아시아나가 HDC를 한번 살렸다. 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 절묘한 타이밍이다. 천운으로 구사일생했으니 사고의 수습 그리고 향후 벌일 사업에서 엄격함으로 민심을 다시 회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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