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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팹리스, 미래를 묻다]오픈엣지 "'한국의 ARM' 탄생, 비메모리 생태계에 큰 힘"①이성현 대표가 말하는 한국형 반도체 IP기업이 중요한 이유

김혜란 기자공개 2022-08-30 13:23:02

[편집자주]

2000년대 초반, 한국 자본시장에 팹리스 투자 붐이 일었다. 200여 곳의 유망주들이 스타팹리스를 꿈꿨다. 그러나 해외 진출에 실패하며 줄줄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한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팹리스 불모지'로 남았다. 20년이 흐른 지금, 다시 팹리스에 돈이 몰리고 있다. 과거엔 승부처가 모바일 칩에 몰려 있었다면 지금은 서버 등에 들어가는 인공지능(AI) 반도체 개발 경쟁이 전 세계적으로 치열하다. '제2의 엔비디아', '제2의 퀄컴'을 꿈꾸며 도전에 나선 국내 팹리스들을 차례로 만나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8월 26일 16:1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는 반도체 생산 밸류체인에서 앞쪽에 자리 잡고 있다. 팹리스가 설계한 반도체 칩은 파운드리(위탁생산)와 후공정(패키징과 검사·OSAT) 등 외주 기업의 손을 거쳐 제작된다.

그런데 팹리스보다 밸류체인의 더 앞에 서 있는 반도체 기업이 있다. 바로 반도체 설계자산(IP) 전문업체다. 전 세계에서 반도체 IP 기업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중앙처리장치(CPU) IP 강자 영국의 암(ARM)이다.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삼성전자도, 미국 퀄컴도 ARM의 아키텍처(설계) 라이선스를 구매해 자체 규격에 맞게 튜닝해 쓴다.

지금까지 국내에는 ARM의 위상을 넘볼만한 기업이 없었다. 그러나 '한국의 ARM'을 표방하며 야심 찬 항해를 시작한 토종 IP 기업이 있다. 오픈엣지테크놀로지(이하 오픈엣지)다. 2017년 출발한 스타트업이지만 벌써 국내외 고객사 30곳을 확보했다. 지금까지 국내 대기업과 재무적 투자자(FI)들로부터 약 450억원을 투자받았고 하반기 코스닥 상장도 앞뒀다.

국내 비메모리 업계에 새 역사를 만들고 있는 오픈엣지의 이성현 대표(사진)을 만났다. 이 대표는 "반도체 밸류체인 중 어느 하나가 무너지면 전체 생태계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없다"라며 "국내 팹리스 생태계는 크고 있으나 IP 업계가 토종 팹리스를 제대로 서포트하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이것이 오픈엣지를 창업한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어 국내 팹리스들이 좋은 칩을 만들도록 돕고 싶다"며 "또 국내·외에서 번 돈으로 국내 시스템 반도체 인재를 양성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일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왜 IP에 집중했나

이 대표는 오픈엣지가 국내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 생태계 강화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하고 있다. 그는 "국내 인공지능(AI) 전문 팹리스에는 몇 년간 민간 투자가 많이 이뤄졌고 정부에서도 많이 지원하고 있다"며 "파운드리나 디자인하우스(팹리스의 설계도면을 제조용 도면으로 재디자인하는 기업), 후공정 분야에 대해서도 국가 차원의 육성 의지가 있었으나 IP 분야만큼은 국내 반도체 밸류체인에서 가장 취약한 고리인데도 관심이 덜했다"고 말했다.

칩 설계도를 들여다보면 그래픽처리장치(GPU)나 CPU, 신경망처리장치(NPU)를 비롯해 반도체의 핵심 기능을 담당하는 '블록'(기능 블록)들이 들어가 있다. 이런 기능 블록은 한 칩에 많게는 70여종이 넘게 쓰이는데, 이를 팹리스가 다 설계하는 건 불가능하고 경제적이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팹리스는 IP기업으로부터 필요한 기능 블록을 사다가 조립해 전체 칩 설계를 완성한다. 국내 AI 반도체 기업을 예로 들면, 회사가 직접 개발하는 NPU IP는 '인하우스 IP'라고 한다. 그러나 인하우스IP 개발이 어려운 데다 국내에 ARM과 같은 IP업체가 없다 보니 국내 팹리스들이 칩을 설계할 땐 필요한 IP를 해외에서 사 와야 했다.

IP업체들은 IP를 공급한 뒤 받는 라이선스와 IP가 적용된 반도체가 판매될 때마다 로열티도 챙긴다. 이 대표는 "국내 팹리스가 열심히 반도체 칩을 만들어서 버는 돈의 상당 부분이 미국과 유럽, 이스라엘의 IP 업체에 나간다"며 "반면 IP 회사들은 로열티가 들어오는 시점에는 이미 몇 년 전 IP 개발을 마쳤으니 가만히 앉아서도 돈을 번다"고 설명했다.

안정적인 IP 기업들의 경우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이 로열티 수익이다. 탄탄한 수익 구조를 가진 해외 IP 기업들은 번 돈 중 일부를 자국 반도체 설계 인력을 양성하는 데 쓴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이렇게 양성된 인재들이 다시 국내 업체와 경쟁하게 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 '안타까운' 구조를 끊어내기 위해 제대로 된 토종 IP 업체를 만들어 국내 팹리스와 상생하는 게 이 대표의 꿈이다.

물론 국내에 IP 전문기업으로 칩스앤미디어도 있다. 다만 칩스앤미디어가 비디오코덱에 집중한다면 오픈엣지는 에지 반도체 시장을 타깃으로 한다. 에지 반도체는 데이터를 중앙서버로 보내지 않고 자율주행차를 비롯해 소비자가 사용하는 소형 기기(에지 디바이스)에서 바로 데이터 연산을 처리한다. 사명에 '엣지(에지)'를 넣은 이유다.

◇최대 경쟁력은 'NPU-메모리 시스템 통합 솔루션'

오픈엣지가 설립 5년 만에 국내외 30여개 기업을 고객사로 확보할 수 있었던 건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춘 덕이다. 오픈엣지는 NPU IP(브랜드명 인라이트(ENLIGHT))뿐만 아니라 메모리 시스템 IP(오르빗(ORBIT))까지 아우르는 'AI 플랫폼 IP기업'을 표방한다. NPU IP란 사람의 두뇌 구조를 모방한 반도체 NPU를 디자인하기 위한 설계 자산을 말한다.

이 대표는 "한 칩 안에 들어가는 수십 가지 기능블록 중 핵심은 NPU와 메모리 시스템"이라며 "해외에서도 NPU IP를 만드는 회사는 있지만, 메모리 시스템 IP까지 함께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픈엣지의 사업영역

메모리 시스템이란 무엇일까. NPU가 칩 밖에 있는 메모리 장치에 접근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IP의 조합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칩 밖에 있는 메모리에 직접 접근해 데이터를 전달하는 일을 하는 고속 인터페이스(매개체) IP인 'PHY'(물리계층), 중요도에 따라 데이터의 메모리 접근 순서를 제어하는 '메모리 컨트롤러'(제어기), 칩 내에서 고속도로 같은 역할을 하는 '온칩 인터커넥트' IP를 모두 포함한다. 오픈엣지는 이들 제품을 개별 혹은 세트로 공급한다.

NPU 기능을 구현할 때 메모리 시스템이 왜 중요할까. 전자기기의 AI 구동 원리는 이렇다. 모든 데이터는 칩 외부 별도의 메모리 디바이스(D램)에 저장돼 있다. 신경망의 데이터양이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AI 반도체 안에 모든 데이터를 저장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외부 메모리 칩(D램)에 일시 저장된 데이터가 NPU에 전달되고, NPU는 데이터를 하나씩 읽으며 곱하고 더하는 등의 연산 작업을 수없이 반복한다.

메모리에 접근하는 이 모든 과정이 굉장히 빨리 처리되지 않으면 AI 연산이 고성능으로 구현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NPU 연산 성능과 에너지 효율성은 NPU만 아니라 메모리 시스템이 얼마나 뒷받침해주느냐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진다.

오픈엣지는 NPU IP와 여기에 맞춘 최적의 메모리 시스템 IP를 세트로 공급한다. 오픈엣지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 둘을 합쳐 플랫폼 IP 형태로 판매하는 사업모델을 갖고 있다.

◇확장성은 무궁무진

오픈엣지의 고객사는 NPU 전문 팹리스를 넘어 미국 마이크론과 노바칩스 등 메모리 반도체 업체, 글로벌 정보통신(IT) 기업을 아우른다. 잠재적 고객사는 더 많다. 최근엔 팹리스가 세트(완성품) 업체의 반도체 설계도를 만들어줬다면 이젠 세트사가 직접 반도체를 설계하는 게 트렌드가 됐다. 글로벌 빅테크인 구글과 메타, 아마존도 자체 칩을 만든다.

이 대표는 "칩을 만드는 회사는 전부 오픈엣지의 고객이 될 수 있다"며 "이미 글로벌 기업들과 협업 중이며 그동안 레퍼런스를 많이 쌓았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서울대 컴퓨터공학 학·석·박사 출신으로,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와 삼성종합기술원을 거쳤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 반도체의 메모리 시스템 설계를 담당하며 2010년대 엑시노스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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