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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딜' 성사의 조건…높아진 결합심사 장벽을 넘어라 [반도체 M&A 전략을 묻다]①줄줄이 무산되는 딜…제한된 실사와 위약금 부담

김혜란 기자공개 2022-11-04 09:55:41

[편집자주]

반도체 기업 간 인수·합병(M&A)은 다른 섹터에서 이뤄지는 딜에 비해 난이도가 높다. 장벽 높은 반독점심사, 조 단위에 이르는 위약금. 이런 특성 탓에 원매자가 인수 의지가 있어도 함부로 뛰어들기가 어렵다. 그러나 M&A가 취약한 국내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는 데 매우 유리한 전략임은 분명하다. 'K-반도체' 역시 해외 기업 인수를 통해 생태계를 넓혀왔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전쟁'이 심화되며 M&A 환경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선택할 전략과 성공 가능성을 가늠해 본다.

이 기사는 2022년 11월 02일 08:0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반도체 섹터에서 이뤄지는 인수·합병(M&A)은 투자은행(IB) 업계에서 까다로운 딜로 꼽힌다. 다른 산업에서 이뤄지는 딜보다 변수가 많아 난이도가 높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넘지 못하면 매도자체 산업이 '국가 안보자산'으로 관리되는 만큼 반도체 섹터에 속한 기업의 매물화는 그 자체로 시장을 뒤흔들만한 임팩트를 준다. 그러나 실제 딜 성사까지는 많은 쟁점과 난관이 있다. 크로스보더 딜(국경 간 거래)의 경우 경쟁당국의 반독점심사가 변수인데, 원매자가 이 관문을 넘지 못하면 조 단위 위약금을 줘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글로벌 '반도체 전쟁' 격화로 반독점 심사기구가 경쟁국 기업의 M&A 거래에 제동을 거는 사례가 늘어나는 등 반도체 M&A 환경은 더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딜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한국이 '반도체 초강국'으로 나아가는 데 다른 기업의 축적된 자산과 노하우를 인수할 수 있는 M&A는 놓칠 수 없는 기회다. 글로벌 반도체 M&A 시장에서 매도자와 인수자가 거래에 나서는 동기와 변수, 특징 등 쟁점을 살펴본다.

◇5년간 주요 거래 들여다보니

어떤 M&A는 반도체 시장에 지각 변동을 가져올 정도로 파괴력을 가진다. 두 기업이 합병했을 때 시장점유율이 크게 뛰는 경우가 그렇다. 지난 5년간 반도체 섹터에서 이뤄진 주요 M&A 딜 중 아날로그 반도체 기업 아날로그디바이스(ADI)의 맥심인터그레이티드(Maxim Integrated Products) 인수가 대표적인 사례다.

아날로그 반도체 시장에서 ADI는 2위, 맥심인터그레이티드는 7위다. 두 기업이 합병한다고 해서 1위 텍사스인스트루먼트(Texas Instruments)를 제치진 못하나 격차를 10%포인트에서(발표일 당시 기준) 약 6%포인트까지 줄일 수 있게 됐다. 2등이 몸집을 불려 1등 기업을 맹추격할 전기를 마련한 셈이다.

미국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설계 전문 AMD가 약 40조원을 들여 올해 자일링스(Xilinx) 인수에 성공했을 때도 AMD가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인텔과 겨뤄볼 만한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자일링스는 데이터센터용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 강자로 꼽힌다.
자료:BDA파트너스(Mergermarket, BDA Analysis) *노란색은 한국 기업이 매수자이거나 매도자인 거래 *전수조사 결과는 아니며 주요 거래만 추림
기업이 M&A에 나서는 또 다른 이유는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거나 신사업 진출 기회를 노리기 위해서다. 지난 5월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컨트롤러 업체 대만 실리콘모션 테크놀로지(Silicon Motion Technology)를 미국 광대역 통신용 칩 제조업체 맥스리니어(MaxLinear)가 약 5조원에 인수한 게 한 사례다. 맥스리니어는 이번 딜 성사로 사업 영역을 확대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 적극적으로 반도체 M&A 전략을 구사하는 기업은 단연 SK그룹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인텔 낸드 사업부(약 10조3000억원) 인수에 이어 올해 8인치(200㎜) 파운드리(위탁생산) 키파운드리 인수까지 마무리했다. 또 SK홀딩스는 실리콘 카바이드(SiC) 전력반도체 설계·제조사 예스파워테크닉스(약 1200억원)를 사들이며 그룹 내 반도체 계열사를 계속 늘리고 있다.

두산그룹은 반도체 테스트업체 테스나 인수(약 4600억원)를 통해 반도체 섹터로 새롭게 진출했다. 이 외에 LX세미콘이 매그나칩 반도체 인수를 검토 중이며 삼성전자도 "대형 M&A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여전히 물밑에선 주요 대기업들이 M&A를 통해 반도체 산업에 진출하려고 하거나 기존 플레이어더라도 경쟁력 강화나 사업 영역 확대 등의 목적으로 M&A에 도전하려는 수요가 뚜렷한 셈이다.

◇불확실성 높은 반독점심사

반면 지난 5년간 주요 반도체 섹터 내 M&A 중에선 인수자와 거래계약이 성사됐으나 반독점심사 관문을 넘지 못해 최종 무산되는 경우도 많았다.

미국 엔비디아의 영국 ARM 인수(약 45조원)가 대표적 사례다. 영국과 미국 규제당국의 제동으로 올해 초 최종 불발됐다. 대만 웨이퍼 기업 글로벌웨이퍼스(Gloabalwafers)의 경쟁사 독일 실트로닉(Siltronic AG) 인수(약 5조원), 중국 사모투자펀드(PEF) 와이즈로드캐피탈(Wise Road Capital LTD)의 매그나칩반도체(MagnaChip Semiconductor) 인수(약 1조5000억원) 시도 역시 경쟁당국의 반독점 규제에 걸려 무산됐다.

지난해 메모리 업체 웨스턴디지털의 동종업계 기업 키옥시아 인수, 퀄컴의 NXP 인수가 무산된 것도 모두 미·중 갈등 중국 정부의 승인심사를 넘지 못해서다.

M&A 전문가들은 반도체는 미·중갈등에 따른 충격파를 가장 크게 받는 산업이라 거래 장벽이 기존보다 훨씬 높아졌다고 지적한다. 원매자가 각국의 반독점심사 통과 가능성을 사전에 철저하게 따져본 뒤 딜에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가 주요국의 전략 자산이 되면서 중국 등이 이유 없이 승인을 안 내주려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며 "삼성전자도 (딜에 참여하더라도 승인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등의) 정보가 많을 테니 M&A 추진에 신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료:BDA파트너스
*전수조사결과는 아니며 주요 딜만 추림

◇'셀러스 마켓'…제한된 실사, 엄청난 위약금 부담

높아진 반독점심사 문턱은 다른 문제도 야기한다. 주요국 정부의 결함심사 허가에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시정조치를 부과하는 식의 '조건부승인'이 이뤄진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문제는 경쟁당국 중 어느 한 국가에서라도 승인을 거부해 어마어마한 위약금을 내는 경우다.

반독점심사는 인수자와 매도자가 계약을 체결한 뒤 진행된다. 통상적으로 계약서에 반독점심사를 마치고 언제까지 클로징(잔금 납입)을 할지 협의를 통해 시점을 명시한다. 또 인수 측의 잘못으로 딜이 깨질 경우 인수자가 3~5% 정도의 위약금을 물도록 하는 조항을 넣는다.

반도체 딜이 다른 딜과 다른 특징 중 하나가 위약금 조항이다. 통상적인 거래에선 반독점심사를 넘지 못해 거래가 무산될 경우 위약금을 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원매자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도체 M&A에선 위약금을 내도록 명시하는 경우가 더 많다.

ARM 인수에 실패한 엔비디아가 최대주주인 소프트뱅크에 물어준 위약금은 약 1조5000억원에 달한다. 퀄컴이 NXP를 추진했다가 중국의 승인 지연 탓에 인수를 포기하면서 지불한 위약금은 2조원에 달한다.

SK하이닉스 경기 이천 M16 공장 전경.

글로벌 IB BDA파트너스의 이현 서울사무소 대표는 "협상을 할 때 매도자가 원매자에 반독점심사 승인이 가능할지 묻고 위약금을 걸도록 하는 게 반도체 딜에선 통상적"이라며 "자신 없으면 딜에 뛰어들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시장은 매도자가 주도권을 쥐는 '셀러스 마켓(Seller's market)'이다 보니 그렇다"며 "반도체 기업 매물은 적은데 원매자들은 많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라고 덧붙였다.

반도체 산업은 기밀 유지가 중요해 실사에 제약도 많을 수밖에 없다. 모든 딜은 원매자가 실사 등의 과정을 거쳐 밸류에이션을 책정하고 매도자와의 눈높이와 간격을 좁히는 과정을 거친다. 최근 해외 반도체 기업 실사를 진행했던 한 IB업계 임원은 "(매도자가) 본질적이거나 디테일한 부분은 잘 보여주지 않고 의사결정하라는 식으로 나온다"며 "공장을 다 보여주지 않고 경영진 프리젠테이션(매니지먼트 PT) 등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아 실사에 많은 제약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밸류에이션은 재무 실사를 통해 시가총액, 현금흐름, 에비타(EBITDA), 매출 등을 통해 책정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기술과 비즈니스 실사(컨설팅 실사)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매물 기업이 보유한 기술이 중국에 몇 년 앞서 있고, 따라잡히는 데 얼마나 걸릴지 등을 따져보는 것이다. '반도체 빅딜'에 뛰어드는 원매자라면 매물 기업뿐 아니라 전체 산업과 기술에 대한 촘촘한 분석 역량을 갖추는 건 기본이고,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조 단위 위약금도 감당 가능할 정도의 바탕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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