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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미래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2-12-01 09:00:00

이 기사는 2022년 12월 01일 09: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우크라이나 수렁에 빠진 러시아가 헤어날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 게임이 끝난 것을 러시아도 잘 알텐데 적당히 체면을 세우고 물러 나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국제법을 위반한 침략전쟁이고 침략군의 만행이 전세계에 알려져 비난받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우크라이나이기 때문이다. 지정학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는 시기가 문제였지 피할 수 없었다고 본다.

구소련이 붕괴되고 해체되는 과정에서도 온전히 유지된 국가기구는 구 KGB다. 이 정보기관은 소련의 최고 엘리트 조직이었고 가장 효율적이었다. 대체로 청렴했는데 정보기관 특유의 냉정한 현실주의와 투철한 국가관 때문이다. 이 조직은 소련의 해체과정에서도 그 역량을 유지했고 오늘날 러시아 국가조직의 초석이 되었다. 현대의 러시아는 올리가르히, 러시아 마피아, 구 KGB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세계 역사에서 비밀정보기관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인물이 둘 있는데 하나는 가공인물 제임스 본드이고 다른 하나는 실존 인물 블라디미르 푸틴이다. 푸틴은 엄격하고 나라에 대한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다. 권력으로 축재를 했지만 부차적이다. 소련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서방은 러시아를 멸시했고 푸틴은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 진심 옛 소련의 파워를 회복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 푸틴 이전 러시아에서는 냉장고 하나를 살 때도 몇 단계 연줄을 거쳐야 했다. 지금은 백화점에 가면 된다. 물론, 대체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국한된 이야기지만.

러시아가 처한 상황은 지도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시간대가 11개나 될 정도로 큰 땅이지만 쓸모가 없다. 러시아의 강은 거의 다 북쪽으로 흐른다. 즉, 겨울에 하류부터 얼어붙기 시작해서 범람이 일어나고 땅까지 얼어붙게 한다. 사실상 내해와 마찬가지인 발트해와 흑해가 무역 통로지만 여러 나라가 첩첩이 가로막고 있다. 특히 오스만의 후예인 터키가 지중해 쪽 목줄을 쥐고 있다.

모스크바는 유럽 방향 아무런 산맥이 없다. 뻥 뚫린 평지다.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쉽게 본 이유다. 발트해 3국과 벨라루스가 완충지 역할을 해 주었다. 만만했던 폴란드도 있다. 그런데 남쪽으로는 우크라이나 밖에 없다.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젠 쪽은 험준한 산지가 있고 ‘스탄’ 국가 방면은 전략적 중요성이 떨어진다. 과거 중국과 국경에서 분쟁을 벌인 적은 있는데 중국은 미국과의 수교로 러시아를 견제했다. 유럽만큼 중요치는 않은 동아시아에 이르면 일본이 버티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영국이 크름반도까지 가서 전쟁을 했던 이유다. 좀 과장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포기하든지 나라를 접든지 양자택일해야 할 수준이다.

우크라이나는 ‘가장자리에 위치한’이라는 뜻이다. 우크라이나 역사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주제가 러시아와의 정체성 구별이라고 한다. 국민들도 동부의 러시아계, 서부의 우크라이나계, 그리고 중간층으로 나누어진다. 언어도 같다. 종교도 카톨릭과 동방정교로 나누어져 있다. 지금은 전쟁으로 단합되었지만 전에는 정치가 복잡했던 나라다.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으로 러시아를 보호해 줄 수도 있고 지중해의 관문이 될 수도 있다. 푸틴은 미국이 중동에 묶여있는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런데 미국이 중동에서 빠져나갈 기미를 보이자 초조해졌던 것 같다. 군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성급하게 행동에 옮겼다. 그러나 러시아로서는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유럽이 아직 러시아 에너지에 묶여있다는 점이 가장 큰 요인이다. 독일은 그동안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 독일은 러시아에서 오는 동유럽 파이프라인의 지정학적 가치를 없애버리는 발트해 파이프라인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가 오늘날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과소평가한 것 같기도 하다. 거기에 세계사에 남을 반열의 인물이 된 젤렌스키 대통령이 나타났다. 고령화와 인구감소, 알코올 중독, 그리고 제조업 부재와 첨단기술 인력의 유출로 쇠락 일로를 걷던 러시아는 이번 서방의 경제제재를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향후 폴란드급 국가로 도약할 수도 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로 움직여 온 유럽의 올겨울 기온이 세계사를 가름 지을 것이라는 말이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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