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6월 18일 07:4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신약개발에 재무제표를 논하지 말라." 바이오 시장을 출입하는 기자로 첫 발을 내딛었을 때 들었던 조언 중 가장 충격적인 게 바로 '돈' 얘기였다. 끊임없이 시장 조달로 연명하지만 언제 돈을 벌 지는 묻지 말라는 것. 숭고한 과학을 논하는 업계를 장사치의 시각으로 보지 말라는 충고였다.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그러나 절반이 맞는 말이라도 K-바이오도 결국 '기업'이고 엄연히 '주주'들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재무제표든 돈이든 논하지 말라고 스스로 나서서 말할 자격은 없다.
최근 상장당국 등의 기조도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면서 소위 '돈 버는 바이오'를 강점으로 내세우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래서 언제 돈 벌래?'라는 물음에 이제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한다는 건 나름의 옥석이 가려지고 있다는 시그널로 읽힌다.
이제는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 '이사회'를 논해보고자 하는데 또 여지없이 이런 답이 나온다. "K-바이오에 이사회를 논하지 말라." 사실 이 역시 바이오업계 생리를 들여다보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바이오텍 창업주 및 대표이사는 기술보유자다. 바이오텍의 존재의미가 기술이라는 관점에서 기술을 보유한 이가 R&D, 더 나아가 경영을 총괄하는 게 뭐가 이상할까. 오히려 잘 모르는 이가 총대를 잡고 있는게 더 이상해보일 수 있다.
더욱이 상장당국 역시 창업주의 지분율과 참여도를 상당히 주의깊게 본다. 한 개인 역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바이오텍의 한계 그리고 현실을 그저 인정하고 책임을 물리는 형태다.
재계는 글로벌 흐름에 발맞춰 이사회 경영에 힘을 싣고 있고 있는데 K-바이오 이사회는 그저 상장을 위한 요식행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니. 무조건 글로벌 아니면 살길이 없다는 바이오텍의 생존전략을 감안해도 참 이상한 일이다.
대부분의 바이오텍 이사회는 대표이사가 단 1인 의사결정을 하거나 그 외 이사가 있더라도 투자업계 인물들일 뿐이다. CFO나 CSO, CTO가 포함된 이사회도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운영된다. 기술을 보유한 창업주를 막아설 명분도 권한도 없다. 바이오텍 이사회에 그 누구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던 게 창업주의 권력에 힘을 더 실어줬다.
하지만 최근 K-바이오의 이사회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사회의 역할은 투자 및 자금집행, 전략 등 중대한 의사결정이다. 돈줄이 마른 바이오 혹한기 창업주 및 대표이사의 독단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기술이 핵심이고 그 중심엔 창업주와 대표이사가 있지만 그 전략의 과정이 옳고 그른지를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힘있는 누군가의 독단을 견제할 장치가 이사회다. K-바이오도 창업주 즉 기술자 단 1인에 쏠린 독단적 의사결정이 아닌 집단지성의 묘수가 필요한 순간이 됐다는 건 그만큼 효율적인 집행과 경영이 필요하다는 얘기일 수 있다.
뚝심있는 R&D냐 합리적 의사결정이냐, 신약개발만큼이나 선뜻 답을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바이오텍도 결국 기업이라는 틀 안에서 궁극적으로 합리성에 수렴하는 과정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역시 답은 생각보다 쉽게 내릴 수 있다. 이제는 바이오텍의 이사회, 그러니까 어떻게 의사결정하고 있는지를 들여다 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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