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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에이티의 '사두용미' 전략 [thebell desk]

조영갑 벤처중기2부 차장공개 2024-08-13 10:00:40

이 기사는 2024년 08월 07일 08:4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어설프게 용의 머리를 좇느니 차라리 처음부터 뱀의 머리가 되는 게 유리한 생존 전략일 수 있어요. 우리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청정 에너지 부문에서 뱀의 머리가 될 겁니다."

최근 디스플레이, 반도체 청정물류 이송 시스템 제조사 '엘에이티' 박강일 대표와 안성범 부사장과 식사를 하며 나눴던 이야기다. 수원에 본사가 자리잡은 엘에이티는 규모가 크지 않은 스몰캡이지만, OLED와 반도체 구매파트 분야에서는 이름이 꽤 알려진 장비 제조사다. 코넥스에 상장돼 있으면서 엔드유저와 협력하고 있는 1차 벤더에 장비를 공급하는 2차 벤더다.

증착 장비의 일종인 스퍼터를 비롯해 인라인 디스플레이 자동이송 시스템 등 제조와 물류 공정 상에 소요되는 주요 장비를 제조, 납품한다. 대형 원장의 증착 설비는 아니지만, 서브 역할을 하는 R&D(연구개발)용 증착 설비 등에서 특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증착은 OLED 패널 제조에서 핵심 공정이다. 이런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이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상반기 코스닥 이전 상장을 노리고 있다.

대화를 나누다가 "상장을 하자면 엔드유저에 직납을 하는 1차 벤더사 등록을 노리는 게 기업가치 제고에 더 좋은 거 아니냐"는 질문을 했다. 소부장 특례상장 자격을 갖춘 터라 기술성 평가 점수를 획득하고, 1차 벤더의 지위 확보하면 '2000억 IPO 밸류'로서 손색이 없어 보여 던진 질문이다. 증권신고서에 '주 고객사=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식의 문구가 파괴력이 있지 않겠느냐는 요지였다.

박 대표와 안 부사장의 의견은 좀 의외였다. 탑독(top dog)의 동네가 아니라 언더독(under dog) 시장만 잘 다져도 탄탄한 행로를 걸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용의 머리를 노리다가 뱀의 꼬리로 끝나기 십상이니 처음부터 뱀의 머리, 용 꼬리로 굵게 가자는 전략이다. 코스닥 1차 벤더에 대한 단순한 열패감이나 안정 희구심리와는 달랐다.

핵심은 판로다. 통상 엔드유저에 직납하는 1차 벤더의 경우 공정 상의 기밀로 인해 공동개발(JDP·Joint Development Project)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허를 공유하는 등의 방식으로 영업권이 제한된다. 타사에 납품하는 건 애당초 불가하다. 퀄을 통과하더라도 엔드유저의 듀얼, 트리플 벤더 전략 탓에 늘 경쟁에 노출돼 있다. 일부 결함이 생기는 경우 라인을 전량 뺏기고, 퇴출된다. 많은 벤더가 이런 식으로 명멸했다.

2차 벤더는 좀 다르다. 종속구조가 아니라 다양한 벤더사에 납품할 수 있다. 물론 기술력이 전제돼야 한다. 엘에이티의 경우 글로벌 1위 S사의 주요 물류공정 벤더사와 끈끈한 협력구조를 다지는 동시에 8.6G 시장에서 S사를 견제하는 중국 B사의 벤더사와도 협력하는 등 '사통팔달' 판로를 구축했다. 여기에 글로벌 태양광 패널 제조사 H사, 수소연료전지 M사 등과도 공급 협의를 구체화하고 있다. 요소 기술을 토대로 벤더사 공급망을 펼치는 모양새다.

엘에이티는 올해 400억원 전후의 매출액을 넘보고 있다. 지난해 말 100억원 언저리에 머물렀던 상황을 고려하면 '퀀텀점프'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전방 업황의 침체가 겹쳐 엔드유저, 1차 벤더 나눌 것 없이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올해는 명실상부한 2차 벤더의 '뱀의 머리'로 스탠스를 굳히고 있다. 지켜볼 것은 꼬리다. 굵고 긴 용의 꼬리가 될지, 가늘고 짧은 뱀의 꼬리로 끝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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