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오너가 분쟁]힘없는 지주 문책인사, 힘받는 박재현 한미약품 독립경영법률상 '별개법인' 인사명령 불복해도 무관, 주총 및 이사회 필요 "독립경영 강행"
정새임 기자공개 2024-08-29 16:06:37
이 기사는 2024년 08월 29일 11:1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미약품 사장에서 전무로 강등된 박재현 대표. 전문경영인 독립경영을 꾀하고자 지주사에서 인사권을 분리시키는 작업을 진행하다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로부터 문책성 인사를 받았다.표면적으로 대표이사 직위가 강등되고 업무범위가 제조로 한정돼 박 대표의 손발이 묶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미사이언스가 한미약품 최대주주라 해도 엄연히 분리된 별개 법인이다. 한미사이언스가 주주총회나 이사회를 통해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닌 단순 인사명령을 내릴 법적 권한은 없다.
박 대표 역시 한미사이언스의 인사조치에 불복했다. 지주사에 위임했던 인사업무를 독립시키는 작업을 강행한다는 뜻을 밝혔다.
◇인사권 강제력 없는 별개 법인, 강등·업무제한 경고성 조치 불과
박 대표는 28일 한미약품 경영관리본부 내 인사팀과 법무팀을 신설하고 담당 임원을 선임하는 인사발령을 냈다. 이에 반발한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는 박 대표 직급을 사장에서 전무로 강등시키고 관장업무를 대폭 줄였다.
본래 박 대표는 인사팀이 포함된 경영관리본부와 커뮤니케이션팀, 국내사업본부, 신제품개발본부, 제조본부를 총괄한다. 임 대표는 박 대표 업무범위를 제조로만 한정시켰다.
한미사이언스는 한미약품 지분 41.42%를 지닌 최대주주다. 일반적으론 지주사 오너의 지시에 따르는 수순이겠지만 한미약품그룹은 상황이 다르다.
오너 가족이 임종윤·종훈 형제와 송영숙·임주현 둘로 쪼개져 갈등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더욱이 개인 최대주주 신동국 회장이 모녀 편에 섰다.
임 대표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 박 대표다. 박 대표는 송영숙-임주현-신동국 3자연합 측이 내세운 전문경영인으로 분류된다.
형제가 한미사이언스, 모녀가 한미약품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사이언스의 인사명령을 한미약품이 따를 이유는 없다. 최대주주라 해도 별개 법인인 한미사이언스가 한미약품의 인사권이 법적으로 보장받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한미약품이 그간 한미사이언스에 위임했던 인사권을 가져가겠다고 할 때 이를 막을 방법도 없다.
한미사이언스가 한미약품 인사에 관여할 방법은 주주총회를 통해 이사회를 장악한 뒤 이사회에서 대표이사를 교체하는 방안이 있다. 하이브가 자회사 어도어 민희진 대표와의 갈등이 불거지자 어도어 이사회를 열어 대표이사에서 해임시킨 사례를 들 수 있다.
반면 한미사이언스는 이사회 소집 없이 한미약품에 대한 인사명령만 내렸다. 임 대표가 한미약품 이사회를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내린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경영에서 물러난 송 회장을 제외하면 한미약품에서 직급이 가장 높은 이들은 임종윤·종훈 사장과 박 대표 3인이다. 박 대표를 강등시키고 2인 사장 체제로 형제 경영을 구축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는 법적 강제성이 없는 경고성 조치에 불과하다. 직급 강등은 차치하더라도 박 대표 외 한미약품 대표성을 지닌 인물이 없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박 대표가 모든 사업부를 총괄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재현 대표 한미사이언스 인사명령 불복, 독자경영 체제 구축 공표
한미사이언스의 인사명령을 박 대표의 한미약품은 받아들이지 않을 방침이다. 한미사이언스는 박 대표가 내린 인사팀 신설 등 인사명령도 무효화 하겠다고도 했다. 이것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한미사이언스의 문책성 인사가 내려진 다음날인 29일 한미약품은 보도자료를 통해 "독립경영을 본격화 하겠다"고 밝혔다. 지주사에 인사 업무를 위임해 왔지만 이를 독립시킨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미약품은 "이는 3자연합이 주장해 온 '한국형 선진 전문경영인 체제' 구축의 첫 시작"이라며 "한미약품 내 인사조직 신설을 시작으로 독자경영을 위해 필요한 여러 부서들을 순차적으로 신설하겠다"고 했다. 임 대표가 내린 인사명령에 불복하고 3자연합이 주장하는 독자경영 체제를 마련해 나간다는 얘기다.
이어 "그동안 한미약품이 그룹 핵심 사업회사로서 지주사와 손발을 맞춰왔지만 전문경영인 중심의 독자경영을 이루겠다"며 한미사이언스와 분명한 선을 그었다.
◇독자경영 막을 대안 '이사회 변경', 쉽지않은 특별결의 요건 충족
임 대표가 한미약품의 독자경영을 막고자 한다면 한미약품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이사회 구성을 바꿔야 한다. 현 이사회는 3자 연합 7인 대 형제 측 3인 구조다. 기타비상무이사로 올랐던 신 회장이 마음을 돌리면서 6대 4에서 7대 3 구도가 됐다.
이사회 구성을 바꾸는 일 역시 쉽지 않은 절차다. 한미사이언스에서 과반 지분을 차지한 3자연합이 이사회 구성을 쉽게 바꿀 수 없는 현상이 한미약품에서 반대로 똑같이 적용되고 있어서다.
한미약품 정관상 이사 수는 10명으로 제한된다. 이사 총수를 늘리는 정관변경을 통과시키려면 출석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66.7%) 찬성이라는 특별결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형제가 한미사이언스를 통해 41.42%를 유리하게 행사하더라도 안건을 통과시키기 쉽지 않다. 오너가 중 5% 이상 지분을 가진 개인도 없다.
반면 신 회장은 한미약품 지분 7.72%를 갖고있고 개인 회사인 한양정밀도 1.42%를 갖고 있다. 3자연합에 우호적인 행보를 보였던 국민연금도 9.43%를 보유 중이다. 국민연금은 최근 한미약품 투자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해 보다 적극적인 주주활동 기회를 열어놨다.
박 대표는 보도자료를 통해 "독자경영을 시작으로, 신약개발 중심의 한미 고유 철학과 비전을 보존하고 확산시키는데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편 한미사이언스는 한미약품의 독자경영이 선진 한미로의 길과 무관한 특정 대주주들이 회사를 장악하기 위한 시도로 규정했다.
한미사이언스 관계자는 "박 대표는 한미약품 신설 법무팀에 퇴임했던 라데팡스 측 인물을 다시 불러들였다"며 "이는 선진 한미를 위한 길이 아니라 회사를 특정 세력이 장악하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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