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01월 16일 07시00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호부호형(呼父呼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형을 형이라 부른다는 의미로 소설 홍길동전을 대표하는 문구다. KB금융을 보고있자니 자연스럽게 호부호형이 떠올랐다.지난해 말 KB국민은행장이 교체되면서 이재근 전 행장의 거취에 많은 관심이 집중됐다. 1966년생으로 지금 은행장에 올라도 많은 나이가 아닌 그가 은행장을 마지막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지, 지주로 이동해 중책을 맡을지를 놓고 다양한 전망이 나왔다.
양종희 회장의 선택은 부문장이었다. 이 전 행장은 지주로 이동해 글로벌사업부문장을 맡았다. 이 전 행장과 함께 이창권 전 KB국민카드 대표이사 역시 지주에서 부문장을 맡았다. 업계는 사실상의 부회장으로 보고 있다.
누가 봐도 부회장인데 아무도 부회장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외부 경쟁자 물색을 차단한다는 금융당국의 시선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실제 부회장제가 외부 인사에게 진입장벽이 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KB금융에서도 일찌감치 3인의 부회장이 차기 회장 후보로 꼽혀 외부 인사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다만 여기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KB금융의 부회장직은 차기 회장을 준비하라고 만든 자리가 아니다. 필요해서 만든 자리다. 말 그대로 회장을 보좌하며, 회장이 하기엔 애매하고 사장이 하기엔 어려운 일들을 한다.
KB금융의 유일한 약점으로 지목되는 해외사업을 이재근 전 행장이 책임지는 데서 알 수 있듯 부와 명예를 누리는 자리라기보다는 무겁고도 부담스러운 자리에 가깝다. 이창권 전 대표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금융권의 생존이 걸려있다는 디지털과 IT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과거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회장 선임 과정에서 부회장들이 유력 후보로 떠오르는 건 그들이 부회장까지 오를 만큼 유능했기 때문이지 부회장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유능한 외부 후보를 애써 막을 필요는 없지만 내부 인재가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굳이 내부 체계를 부자연스럽게 손보면서까지 외부 후보를 배려해 줘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실제 우리금융의 임종룡 회장을 제외하면 최근 몇 년 사이 공개된 외부 후보들은 긴장감을 주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대부분의 경우 외부 후보는 내부 후보보다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현업에서 물러난 올드보이들이 주로 외부 후보로 선임되는 탓이다. 이를 떠나서도 한 조직에 30년 가까이 몸담은 인물이 업무 이해도가 높고 애사심도 큰 건 당연하다.
홍길동전 말미에 가면 홍길동의 아버지가 마치 큰 선심을 쓰듯이 호부호형을 허락하기는 한다. 그러나 호부호형이 허락된다고 해도 홍길동의 신분은 크게 바뀔 게 없다. KB금융 역시 다르지 않다. 부문장이나 부회장이나 본질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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