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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성으로 쌓은 '이글루' 이득춘 이글루시큐리티 대표

박준식 기자/ 이재영 기자공개 2010-08-04 16:46:17

이 기사는 2010년 08월 04일 16:4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 달을 준비해 뛰어들었던 입찰이었다. 1993년, 한 대기업에 그룹웨어를 납품하는 프로젝트였다. 회사에선 '그거 하지 마라'고 했다. 포기하지 않은 사람은 서른 한살 이득춘 뿐이었다.

미친 짓이라 수군대던 이들이 팀장 혼자서 사흘 밤 새는 걸 보더니 하나 둘 동참해 제안서를 완성했다. 이득춘이 입찰장에 나오면 결과는 뻔하다며 경쟁을 포기하는 회사도 있던 때다. 그런데 그 날 완패했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상경하면서 고민했다. 1차선 왼쪽 너머로 핸들을 돌려 버릴까. 그만큼 자존심이 상했다. 집사람 얼굴이 아른거려 간신히 참아냈다.

집에 돌아와 위로하는 아내에게 약속했다. "당신 남편은 마흔 전까지 반드시 성공할거야. 잠시 소홀하겠지만 조금만 참아주면 꼭 사모님 소리 듣게 해줄게." 젊은 이득춘은 승부욕과 근성이 지나칠 정도였다. 그건 스스로에게는 무모하고 타인에게는 일방적일 때도 있었다.

1963년 인천에서 태어난 이득춘은 인하대 전자계산공학과(82학번)를 나왔다. 1남 3녀의 맏이. 책임감과 근성은 길러졌다. 졸업 후 컴퓨터솔루션 업체인 ㈜누리에서 근거리통신망(LAN) 활용법을 익혔다. 인터넷도 없던 1987년부터 LAN 관련 기술을 사실상 혼자 배웠다.

거래처였던 삼보컴퓨터의 부장이 이득춘의 됨됨이를 눈 여겨 보고는 1990년 이직을 권유했다. 큰 물에서 놀아보자 생각하고 회사를 옮겼다. 그런데 막상 삼보에서도 LAN 전문가는 그 만한 인물이 없었다.

이직 한지 2년이 안 돼 삼보전략정보시스템(TGSYS)이라는 내부 통신망 프로젝트 설치팀장을 맡았다. 1년 반 동안 30억원을 들여 삼보 계열 사무실들을 내부망으로 연결하는 대규모 작업이었다. 사실은 이득춘이 담당 임원과 사장을 설득해 벌인 일이었다. 사회생활 4년차에 팀장을 맡은 건 그의 무모함 덕분이다.

경험도 경험이지만 이 프로젝트는 인맥을 넓힐 기회가 됐다. 1300여명의 직원을 일일이 인터뷰하고 각 개인의 LAN을 설치하면서 핵심 직원 100여명을 사귀었다.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MS) 본사에서 일하는 김승곤 전무 등이 그 때 낯을 익힌 사람들이다.

이득춘은 창의적인 일을 벌이면 힘은 들지만 일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단 걸 일찍 깨우쳤다. 지나고 나면 관련 지식이나 노하우가 모두 내 것이 되는 게 신기했다.

삼보에서 그 후엔 그룹웨어를 만들어 팔았다. 관련 입찰에 그가 팀장을 맡으면 거의 백전백승이었다. 당시 삼보의 도스(Dos) 기반 그룹웨어 시장 점유율은 90%에 달했다. 사회생활 연차는 어려도 무시할 수 없는 업계의 소문난 독종이 됐다.

그런 그가 보안 사업에 입문한 건 1995년의 일이다. 창의적인 사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쯤 삼보 출신 직원들이 세운 싸이버텍홀딩스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네트워크 관련 업무에는 자신이 있어 다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직접 방화벽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보안솔루션 개발을 시작했다.

1년을 배워 원리를 깨닫고, 2년을 개발해 고유의 제품을 내놓았다. 업계를 주름잡을 때쯤 고객사 담당자와 얘기를 나누다 번뜩이는 영감을 얻었다. 제품은 좋은데 관리가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수십 수백 개의 보안 프로그램을 쓰는 대기업과 금융사에선 제품 퀄리티보단 활용도나 호환성을 중히 여긴단 뜻이었다.

당시 조이네트에서 일하던 대학동기 이용균에게 아이디어를 내비쳤다. 보안 소프트웨어 개발보단 개별 제품들을 통합 관제할 서비스가 돈(사업)이 되지 않겠냐고 물었다. 이용균이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둘은 당장의 구상을 훗날로 미뤘다. 열리지도 않은 시장을 개인이 개척하는 건 무리라는 걸 알았다.

1999년 세계적 보안 전문회사 체크포인트 초청으로 이스라엘에 갔을 때다. 함께 초정된 회사 중 네트릭스라는 미국 기업이 통합 관제 서비스 사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회사 대표와 얘기하면서 시장이 열릴 것이란 확신을 가지게 됐다. 실제 1년 후 네트릭스는 사업 계획만으로 1억달러에 매각됐다.

싸이버텍 김상배 대표를 설득해 관제 사업(EMS)을 시작하기로 했다. 99년 말이다. 신생법인의 대표와 싸이버텍 업무를 겸직하기로 약속하고서야 허락을 얻어냈다. 이득춘과 이용균이 의기투합하자 어울림정보기술과 신원텔레콤 등 보안업계 회사들이 주주로 나섰다.

30억원을 모아 서른 명의 재원을 끌어들여 사업을 시작했다. 이글루시큐리티의 시작이다.

예상과 달리 3년 간은 정말로 고전했다. 분위기는 무르익었지만 기업들이 선뜻 발주를 내지 않았다. 너무 앞서 갔나라는 생각이 이득춘을 괴롭혔다. 30억원짜리 회사의 누적적자가 한 때 27억원에 달해 폐업 위기를 맞기도 했다.

비슷한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한 라이벌들은 대규모 관제 센터를 짓고 고객을 끌어들였다. 쇼잉 비즈니스로 펀딩을 더 해보자는 발상이었다. 이득춘은 연구소를 맡은 이용균에게 신경 쓰지 말고 기술개발만 하자며 시류를 외면했다. 몇몇 직원들이 그의 고집을 못 이겨 떠났다. 묵묵히 때를 기다렸다.

한강에 뛰어들어야 하나 고민할 때쯤 기회가 찾아왔다. 2003년 1월25일을 잊지 못한다. 슬래머(Slammer) 웜 바이러스가 한국에서 인터넷 대란을 일으킨 날이다. 정부와 기업이 그제서야 보안의 중요성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시장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이듬해 정보통신부에서 ESM 발주가 나왔다. 사실상 경쟁자는 없었다. 관제 센터를 짓느라 자금을 소진한 라이벌들은 이글루에 게임이 안됐다. 신한은행과 LG그룹이 잇따라 발주를 내 매출이 늘기 시작했다. 그 해 순이익 2억원을 냈다.

회사는 그 후 6년간 연평균 25%가 넘는 성장을 했다. 2009년 매출액은 229억원, 영업이익은 39억원이다.

보안 사업은 물리, 정보, 산업 등 3대 시장에서 시작돼 시장이 점점 통합되고 있다. 물리적 보안으로 시작한 에스원(S1)이 정보 관제 사업을 시작하고, 정보 보안으로 시작한 이글루가 산업 보안 시장을 노리는 것이다. 이른바 융복합 보안의 세계다.

이글루 제품 '스파이더'의 EMS 시장 점유율은 80%가 넘는다. 안주할 법도 한데 이득춘은 융복합 시장을 기대해 보면 이제 출발선에 섰을 뿐이라고 말한다. 최근 코스닥 상장을 준비하면서 그는 자극을 얻었다. 일반 투자자를 납득시킬 제품 아이템을 내놓아야 자본시장에서도 인정받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시장을 글로벌 기준으로 넓히는 것도 급선무다. 국내 1등인 이글루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1% 수준. 11년 역사에 3년 전부터 준비한 융복합솔루션인 '라이거'가 성장 동력이다. 이미 상용화에 들어가 경기도 광교 신도시에 융복합 보안관제센터 사업자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이글루란 사명은 에스키모들의 집 이름에서 따왔다. 북극의 이글루는 눈바람이 세차게 불수록 더 단단해진다. 내부 보안이 생명인 이 사업의 이미지로는 그만이다. 이득춘은 지금보다 100배 큰 이글루를 지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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