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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기술 넘어 신뢰의 기업으로" 박선순 다원시스 대표

박준식 기자/ 이재영 기자공개 2010-11-05 15:30:43

이 기사는 2010년 11월 05일 15:30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 공들여 개발한 제품이 시운전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다 잡은 줄 알았던 계약도 놓쳐 버렸다. 창업한지 7년째인 2003년. 박선순은 사업이 혼자 하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대학 졸업 후 기업에서 일했지만 성미에 맞지 않았다. 꿈을 펼치기에 주어진 공간이 너무 좁다 여겼다. 뭐든 잘할 수 있단 자신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헌데 결과는 참담했다. 회사는 걷잡을 수 없이 휘청거렸다. 연 매출 37억 원에 15억 원이 적자였다. 혼자 괴로워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술은 답을 내놓지 못했다.

img4.gif2004년 첫 날, 직원들 앞에 박선순이 섰다. 한참이나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90도로 몸을 낮췄다. 직원들이 당황했다. 머리를 조아린 사장은 지난 과오를 용서하라고 빌었다. 더 열심히 더 부지런히 일하겠다고 말했다. 고개를 숙이고 실패를 인정했다. 정면 돌파였다. 그렇게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다.

박선순은 1961년 서울 영등포구에서 태어났다. 이름처럼 성격이 선하고 머리 회전이 빨랐다. 공고를 졸업하고 공장에 다녔다. 그러다 성공하겠단 일념으로 야학을 나갔다. 1979년 한양대 공대에 들어갔다.

늦게 배운 덕분일까. 학업 의지가 컸다. 과학기술원(현 카이스트)에 진학해 전력전자를 전공했다. 조규현 교수가 가르쳤다. 6년 만에 박사가 됐다.

졸업 후 코오롱엔지니어링과 청계기전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문득 월급쟁이 하려 박사까지 했나 싶었다. 박차고 나와 1996년 다원시스를 세웠다.

과학기술원 후배 유호열 등 4명이 창업멤버다. 안산 창업보육센터에 사무실을 얻어 전력전자 용역개발을 시작했다. 작업장이 없어 주차장에 비닐천막을 치고 시제품을 만들었다. 가진 건 없었지만 젊음과 패기를 믿었다.

실적이 의욕을 따라가지 못했다. 원자력연구소에서 용역을 받아 기술을 익혔지만 매출이 늘지 않았다. 동업자가 선후배 사이라 사업 모양도 나지 않았다. 회사가 아니라 기술 동호회라는 조롱도 받았다.

박선순은 엔지니어였다. 어려운 와중에도 국책 연구소의 핵융합 관련 용역을 도맡았다. 의뢰비가 얼마 안 돼 적자가 났다. 동업자들은 관두자 했지만 박선순이 손을 놓지 못했다. 그렇게 2003년 말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적자가 그렇게 쌓였다.

직원들과 화해한 2004년 봄, 거짓말처럼 기회가 찾아왔다. 현대하이스코가 계약을 하자고 찾아왔다. 새로 설치할 자동차 강판 생산 라인에 전자유도 가열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전자유도 가열은 철판 표면에 전류를 흘려 열을 내는 기술이다. 다원시스가 처음 국산화했지만 시공 실적은 없었다.

하이스코가 일을 맡긴 건 지금 보면 천운이다. 하이스코는 대규모 물량을 수주한 상태였다. 생산라인 확충이 급하던 때라 실적이 없던 다원시스에 일을 맡겼다. 상황을 간파한 박선순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기술엔 확신이 있었다. 공사 기간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큰소리쳤다.

마음가짐이 달라서였을까. 해외 업체가 1년은 걸릴 일을 4개월 만에 끝냈다. 비용도 40% 이상 저렴했다. 업계에 입소문이 퍼졌다. 곧바로 유니온스틸이 20억 원짜리 주문을 냈다. 그 해 매출이 80억 원으로 딱 두 배 늘었다.

회사가 틀을 잡던 2008년 여름, 박선순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한국형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장치, 케이스타가 시운전에 성공한 것이다. 지름 9m의 케이스타는 8000평 규모 전원공급 설비를 필요로 했다. 이 방대한 설비의 개발을 박선순이 맡아 성공시켰다.

케이스타가 성공하자 한국은 지난해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건설단 일원이 됐다. 박선순의 전원공급 장치는 국제 실험로의 기술표준으로 채택됐다. 적자가 나던 와중에도 손에서 놓지 않던 그 기술이다.

전원공급설비 비용 3000억 원 중 다원시스가 가져가는 몫은 1000억 원이다. 일본 도시바·미국의 어드밴스엔지니어링을 제치고 기술 및 품질 부문 시방서(공사와 관련된 제반 규정) 작성도 맡았다. 앞으로 수십 년 간 국제 핵융합 발전 전원장치의 표준이 된다는 설명이다.

핵융합 매출만으로도 앞으로 5년은 먹고 살 수 있지만 굳이 상장을 한 이유는 뭘까. 신뢰받는 기술을 넘어 신뢰받는 기업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 박사 등 동고동락한 직원들이나 어려울 때 도와준 재무적 투자자(FI)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전력전자는 전기를 사용처의 특성에 맞게 변환시켜 공급하는 기술이다. 몇 개의 기술표준을 조립해 서로 다른 장치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블록쌓기에 비유되기도 한다.

박선순은 벌써 다음 블록을 쌓기 시작했다. 이번엔 차세대 전동차용전장품(EMU)이다. 블록은 바닥부터 차분히 공들여 쌓아야 무너지지 않는다. 그는 다시 한 번 겸손히 몸을 숙일 생각이다. 이 엔지니어 사장의 꿈은 언젠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세계 최고 제품을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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