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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법정책이 낳은 A급 채권의 방랑

황철 기자공개 2016-04-05 08:22:26

이 기사는 2016년 04월 01일 08:46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회사채 시장의 몸통에 해당하는 A급 채권이 떠돌이 신세가 됐다. 근거 미약의 회사채 시장 위기론이 A급 채권을 자꾸만 주류의 틀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발행·유통시장 활성화를 빙자한 편법 정책도 이를 부추기고 있다.

금융당국이 주도하고 있는 '회사채 시장 활성화 태스크포스(TF)'는 하이일드펀드 편입 대상을 BBB급에서 A급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금융투자협회를 중심으로 '시장안정 P-CBO'에 A급 미매각 채권을 넣겠다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갔다.

이번 방안은 '하이일드펀드 편입 대상에 비과세 혜택을 줘 고사상태였던 BBB급 시장을 어느 정도 살려냈다'는 섣부른 자부심에 고무된 인상이 강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펀드의 취지, 정책의 당위성을 모두 잃은 실기에 가까운 근시안적 부양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이일드펀드는 말 그대로 고위험 고수익을 노리는 투기적 성향이 강한 상품이다. BBB급 편입까지는 이해할 여지가 있다. BBB급 채권의 경우 투자적격등급이지만 리테일을 제외하면 사실상 수요기반이 형성돼 있지 않다. 국내에서는 투기등급과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고 있어 하이일드펀드 편입의 정당성을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A급 채권은 오랜 기간 우량 대기업의 발행물로 인식돼 왔다. 최근 회사채 시장 양극화와 신용등급 변동성 확대로 수요기반이 상대적으로 약해지긴 했다. 하지만 국내 산업과 회사채 시장을 지탱하는 견실한 기업 물량이 주를 이루고 있다.

A급 대기업은 오랜 기간 회사채 시장의 버팀목이자 한국 경제의 주축으로 인식돼 왔다. 신용등급 매트릭스 상에서도 A급 기업의 수는 전체 회사채 발행사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회사채 시장 위기론은 구체적인 조사나 논리적 검증이 되지 않은 가설일 뿐이다. 이를 앞세운 단기 부양책은 근거 없는 공포와 각종 부작용을 양산하기 쉽다. A급 채권에 대한 지나친 정책적 지원은 발행사와 시장의 자생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더구나 리테일시장 활성화를 위해 만들어진 하이일드펀드 자체의 취지와도 전혀 동떨어진 결과를 낳는다. 혹자는 '하이일드'라는 이름에 경도돼 정책을 유연성 없이 일방적으로 비판한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름을 잘못 쓰면 본질이 흐려지는 경우가 많다. 눈앞에 올바른 방편을 두고 자꾸만 편법에 손을 대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정명(正名)'의 중요성을 상기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은 국내 회사채 시장의 활동성이 떨어지는 가장 큰 요인으로 취약한 수요기반을 들고 있다. 몇몇 대형 기관투자가와 자산운용사가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구조에서는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리테일 시장의 개척이다. 하이일드펀드는 이를 위한 중요한 방편 중 하나다. 하이일드펀드의 본래 취지를 놓치면 결국 회사채 시장 활성화라는 대의에서도 멀어지게 된다.

이번 A급 채권의 하이일드펀드 편입 방침은 금융당국의 조급증, 증권업계의 단기성과 지상주의, 사탕발림에 길들여진 발행사의 근시안적 행보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문제의 중심에는 금융당국의 과도한 개입, 즉 '관치'가 자리잡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편법은 편법을 낳고 이를 습관화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형 공모채 펀드 조성과 자산운용의 관행을 펀드 중심으로 맞추는 노력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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