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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자본이 '모험'에 충실하려면

길진홍 벤처중기부 부장공개 2018-02-07 07:55:05

이 기사는 2018년 02월 05일 08:1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모험과 자본' 기업가와 투자자로 대변되는 두 톱니바퀴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근대 자본주의의 토대가 됐다. '리스크'와 '리턴'으로 요약된 규약 속에 굴뚝혁명을 거치며 화려한 자본주의 꽃을 피운다. 현대 들어서는 엔젤투자와 펀드 등으로 진화를 거듭한 가운데 전세계 직원 약 10만명을 거느린 인텔과 같은 글로벌 기업을 탄생시켰다. 모험을 두려하지 않은 도전이 만들어낸 자본의 산물이다.

창업 생태계의 꽃인 벤처캐피탈은 국내에 상륙한지 20년 남짓한 시간이 지났다. 벤처펀드와 벤처투자 규모가 각각 4조4430억원, 2조3803억원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혁신성장 기조와 맞물려 올해는 벤처업계 외형성장이 더욱 가파를 것으로 전망된다. '벤처투자촉진법' 등을 통해 창투사 진입 문턱을 낮추고 대규모 자금을 공급할 예정이다. 소득주도 성장의 동력을 창업 생태계 활성화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속살을 들춰보면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정부의 잇단 지원에도 많은 벤처캐피탈이 정작 투자할 곳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 지난해 다수 출자자들이 모험자본 시장에 뛰어들면서 투자처가 고갈됐다. 상황은 중소 벤처캐피탈로 갈수록 심각하다.

정부 출자금에 기반한 민간 매칭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펀드레이징에 대부분 에너지를 투입하면서 우량 투자처 발굴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 하루에 다수 제안서가 쏟아지지만 이를 검토할 겨를이 없다. 지금도 정부 출자 펀드로 선정된 창투사의 고급인력들이 민간 자금 유치를 위해 동분 서주하고 있다.

주요 자금 공급원인 국민연금 우정사업본부 등 연기금의 출자 콘테스트는 '그림의 떡'이다. 소수의 상위권 대형 벤처캐피탈의 독차지가 된 지 오래다. 가봐야 들러리만 설 뿐이라며 발 길을 끊은 업체들이 적지 않다.

민간 자금 유치에 지친 일부는 상장으로 눈을 돌렸다. IPO를 통해 확보한 공모자금을 운용 중인 펀드 재원으로 충당하기 위한 것이다. 운이 좋은 몇몇은 자금을 모아 살아남았다. 전환사채(CB) 발행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IPO와 CB 발행으로 펀드 재원을 충당하기는 한계가 있다. 외부 자금 유치를 기반한 모험자본의 속성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창투사 설립 자본금 인하 등 진입 장벽 철폐는 당장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설립 규제 완화로 잘나가는 심사역들이 독립해 창업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당장 인력이 유출된 기존 벤처캐피탈은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홀로서기에 나선 우수 인재들은 또 척박한 환경에서 고군분투 해야 한다. 이 같은 악순환은 결국 업계 전반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정부의 벤처기업 활성화 정책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운영자산 규모 별로 앵커출자 비율을 차등화하거나 중소 지원책을 병행하는 등 세분화하고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벤처업계가 더욱 모험에 충실할 수 있도록 환경 조성도 필요하다. 현실을 외면한 혁신성장은 창조경제처럼 실체가 없는 신기루로 끝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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