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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과 기축통화 [WM라운지]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공개 2019-06-12 10:39:15

이 기사는 2019년 06월 10일 09:0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미·중 무역전쟁은 장기화와 기술전쟁(tech wars)이라는 두 방향으로 진행 중이다. 미국은 중국 하드웨어 업체인 ZTE를 블랙리스트에 올린 지 1년 만인 올해 5월 화웨이를 거래제한 기업에 올렸다. 전세계가 복잡한 공급체인으로 연결돼 있어 이번 사건이 어떻게 영향을 줄지 불확실하다. 미국 뿐 아니라 아시아의 부품 공급 기업도 화웨이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 전략이 중국의 장기 성장을 늦추고, 미국에 대한 도전을 꺾을 것이라고 보는 듯 하다.

화웨이 제재가 발표된 지 열흘 후 시진핑은 미·중 무역협상 대표 류허와 함께 장시성(江西省)의 희토류 생산지를 방문했다. 그리고 무역전쟁에 희토류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장시성이 어떤 곳인가. 마오쩌둥이 옌안(延安) 대장정을 시작한 곳이다. 대장정은 국민당 장제스에게 쫓겨 1년 동안 9600km에 이르는 거리를 도보로 이동하고 홍군(紅軍) 생존율이 3.5%에 불과할 정도의 고난의 행군이었다. 시진핑은 여기에서 대장정의 정신을 언급하며 중국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장기전도 참고 견딜 수 있음을 알렸다.

하지만 무역전쟁을 보는 데 있어 고려해야 할 게 있다. 기축통화국으로서 미국이 가진 위치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달러를 찍어내 물건과 바꿀 수 있다. 100달러 지폐 500장을 찍으면 자동차와 바꿀 수 있는 셈이다. 이를 일컬어 세뇨리지(주조차익)라고 부르는데, 돈을 만들고 유통시키는 비용과 교환가격과의 차이를 말한다. 달러를 유통시키기 위해서는 신뢰를 확보해야 하고, 이를 위해 군사, 경제, 정치 등 여러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비용을 정확히 계산하기는 힘들지만 주조차익이 큰 것만은 확실하다. 기축통화를 독점해야 과다 발행이나 발행의 주도권 확보가 가능하기에 독점적 지위를 만드는 데 많은 비용을 들여도 된다. 기축통화국의 위치가 무역전쟁에 시사하는 바를 알아 보자.

우선 기축통화국은 고립주의로 갈 수가 없다. 브렉시트(Brexit)를 통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겠다는 영국과는 다르다. 영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어서 파운드를 자국 내에서 쓴다. 반면 미국이 고립을 택하면 달러의 유통범위가 축소되고 세뇨리지도 줄어든다.

미국의 고립주의는 1823년에 제임스먼로(J. Monroe) 미국 대통령이 표방한 정책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간섭하지 않고 유럽에서 발발하는 전쟁에 중립을 지키겠다는 노선이었다. 1917년 1차 세계대전 전까지 유지되다 전쟁에 개입하고 이후 불간섭주의와 개입주의를 반복한다. 트럼프도 신(新)고립주의 노선을 택한다고 우려한다.

금본위 제도일 때와 금 태환이 되지 않는 달러 기축통화일 때와는 다르다. 금본위제나 금태환에서는 세계에 미국의 힘을 각인시켜 봐야 세뇨리지 이득이 크지 않다. 불환지폐인 달러가 기축통화일 때는 달러 사용처가 세계가 되어야 이득이 커진다. 트럼프는 지구촌 분쟁에 개입해 군사비용을 지출하는 것을 아까워하지만 이러한 개입이 있었기에 달러화의 기축통화 위치가 만들어진 것이다.

1971년 8월은 닉슨 행정부가 달러의 금태환을 정지한 날이다. 달러의 무제한 발행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 시점 이후 미국은 고립주의 노선을 걷기 어렵게 되었다고 봐야 한다. 최근 셰일가스로 에너지 자립도를 갖추면서 다시 고립주의로 갈 수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달러가 세계경제와 너무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되돌리기 어렵다. 트럼프는 고립주의를 택하는 게 아니라 최대한 미국의 손익계산서를 좋게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물론 회계기준은 자신이 만든 것이다.

기축통화의 세뇨리지 차익을 높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따라야 한다. 세계 경제가 성장하고, 무역 거래가 많아져야 한다. 화폐는 유통속도가 크게 변하지 않는 한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수요가 많아진다. 중국이 3조 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고를 가지게 된 것도 중국경제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역거래규모가 커질수록 달러화에 대한 수요도 많아진다. 거래 목적의 보유뿐 아니라 예비적 목적으로도 보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성장이나 무역거래가 멈추거나 감소해 달러를 갖지 않고 물건으로 바꾸려는 수요가 많아지면 미국 경제는 세뇨리지에서 마이너스 모멘텀을 갖게 된다.

미국은 기축통화에 대한 도전을 심각하게 받아 들인다. 1971년 금태환을 중지한 미국은 원유 거래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우방국이 대금을 달러로 받게 했다. 안정적인 달러 수요처를 마련한 셈이다. 이 때문에 70년대 석유파동 때 유로달러 시장이 형성됐다. 차베스는 2008년 원유가격이 한창 오를 즈음 자신감에 넘쳐 원유대금을 달러로 결제하지 않을 방안을 내 놓기도 했고, 외환보유고도 달러에서 유로로 바꿀 준비가 됐다고 했다. 그 이후 베네수엘라의 운명을 생각해보자. 중국은 2016년에 위안화를 특별인출권(SDR)에 편입시키고 위안화 결제비중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지금 중국은 미국과 무역전쟁, 기술전쟁을 겪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은 빨리 끝나지 않겠지만 파국으로 가지도 않을 것이다. 세계경제와 무역시장을 비유하자면 미국이 벌여 놓은 도박판이다. 이 판이 커지고 계속 돼야 장소 제공자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룰(rule)이 마음에 안 든다고 판을 깨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룰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자가 있어 거친 협상이 진행되고 있을 따름이다.

그날 그날의 양국 발언에 신경쓰기 보다는 무역전쟁을 겪고 난 후의 모습을 생각해봐야 한다. 결국은 미국과 중국이 세계경제를 이끌며 성장을 지속할 것이다. 국영기업의 비효율성이 문제되고 있는 중국은 무역전쟁을 계기로 이 부분이 효율화될 것인지, 내수 중심으로 경제 단계가 옮겨갈 것인지 등을 생각해봐야 한다. 무역전쟁의 포화가 자욱한 지금, 이런 관점으로 세계 자본시장에 접근해야 한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미래에셋자산운용 채권운용 CIO
미래에셋캐피탈 대표이사
미래에셋자산운용 경영관리부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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