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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desk]25년전 삼성도 알던 위기, 아직도 모르는 정부

김장환 산업2부 차장공개 2019-07-24 08:30:53

이 기사는 2019년 07월 23일 07:4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일본산 핵심 소재 수출 규제를 두고 온 산업계가 시끄럽다. 일본이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에칭가스·레지스트·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우리나라 수출을 규제하겠다고 선언하자 이에 따른 여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과거 수십년 동안 성장 노력 끝에 일본을 제치고 반도체·IT 분야를 선도하는 세계시장 1등 기업 국가로 올라선 한국이다. 그런데 생소한 소재 품목들로 인해 관련 사업분야가 '셧다운'될 위기마저 거론되고 있으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타격이 불가피해보이는 삼성전자는 이미 25년 전, 엄밀히 말하면 이보다 더 이전부터 이 같은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다.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은 1994년 삼성전자 사업부장을 맡던 당시 핵심 간부들과 벌였던 전략회의에 대한 회고를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언급했다. 인텔이 메모리 사업에 뛰어들 경우 그리고 일본이 장비 등 반도체 제조 핵심 품목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는 가상 시나리오를 두고 벌였던 회의다. 25년 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무너뜨릴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 중 하나로 지금의 상황이 논의됐던 셈이다.

삼성전자는 이후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왜 이 같은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했을까. 여러 가지 사유를 의외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대체재를 찾기 위해 투자를 하는 것보다 일본산 소재를 구입해 활용하는 게 비용 측면에서 훨씬 유리했다"고 말한다. 일본이 수출 규제 대상에 올린 IT 기초소재 3개 품목은 독자 개발에 성공한다고 해도 엄청난 매출을 일으킬 수 있는 사업 분야가 아니다. 대규모 투자비를 동원해 일본 기업들의 '특허'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이보다 더 큰 걸림돌은 정부의 규제였다. 과도한 환경 규제는 유독 물질로 볼 수 있는 IT 핵심 소재 개발 진행을 더디게 했다. 오랜 기간 재계를 겨냥해온 '부의 이전' 규제도 문제였다. 만약 25년 전 논의를 계기로 삼성전자가 소재 개발에 성공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난 몇 년 동안 정부의 기조를 보면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란 지적을 내놓거나 '일감 몰아주기'로 이를 규정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최근 공개석상에서 나눈 대화가 이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 장관은 지난 18일 제44회 대한상의 제주포럼 자리에 참석해 "불화수소(에칭가스)를 만들 수 있는 중소기업에게 대기업이 일감을 주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최 회장은 "만들 수야 있겠지만 품질이 문제"라고 답했다. 일본산 에칭가스는 순도가 99.999%, 수십년간 기술을 발전시켜 만든 독보적 소재란 걸 현 정부 간판급 장관조차 잘 모르는 듯하다. '대기업의 횡포' 정도로 이번 사태를 바라봤다니 놀라울 정도다.

일본의 3대 수출 규제 품목의 기술을 한국 기업이 따라잡으려면 적어도 향후 3년의 기간이 걸릴 것이란 업계 예측도 있다. 이마저도 정부와 민간기업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움직였을 때나 가능해 보이는 일정이다. 삼성전자 같은 국내 대표 기업이 직접 나서 소재 개발에 앞장서준다면 그 시기를 보다 단축시키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삼성전자의 국내 소재 기업 인수합병(M&A) 등 각종 해법 모색이 필요해 보인다. 대기업을 향한 정부의 과도한 규제를 풀어주는 방향성 없이는 시도조차 해볼 수 없는 일이다. "소재 개발 중소기업에게 세제혜택을 주겠다"는 정부의 최근 해결책 제시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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