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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생태계의 스펙 지상주의

김은 기자공개 2019-08-29 08:21:27

이 기사는 2019년 08월 28일 08:2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정부 예비유니콘 기업으로 선정된 메쉬코리아의 유정범 대표이사가 학력을 위조한 것으로 드러나 업계에 큰 파문이 일었다. 결국 유 대표는 늦은 나이로 졸업해 창업 초기 무엇하나 내세울 것 없다는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학력과 경력을 부풀렸다며 사업성과로 평생 갚아나가겠다는 '때늦은 사과'를 했다.

벤처캐피탈을 비롯한 대부분의 투자사는 스타트업을 볼 때 가장 우선적으로 '사람'을 본다고 입을 모은다.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 그리고 시장 반응은 변할 수 있는 요소들이지만, 창업자의 철학과 구성원들의 인품은 불변의 요소라는 얘기다. 하지만 사람을 본다 뒤에는 벤처업계의 드러나지 않은 '학벌위주 풍토'가 깊게 자리잡고 있다. 인적 네트워크로 이뤄지고 있는 벤처 생태계 특성상 학연이나 지연 등에서 자유롭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이너써클이 존재하는 셈이다. 실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카이스트 등 국내 명문대를 넘어 해외 유수 대학출신 창업자가 업계에 넘친다. 그러다 보니 지방대나 고졸 출신의 경우 스스로 위축되는 경우가 많고 투자유치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게 현실이다.

초기 스타트업들이 투자유치를 받기 위한 IR 과정에서 빼놓지 않는 표현이 있다. 구글 엔지니어 출신, 스탠퍼드 박사 출신, 맥킨지 출신 등 창업자를 비롯해 팀원들의 '~출신'이라는 설명을 빼놓지 않는다. 업력이 짧은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당장 매출이나 매력적인 제품 등 성과가 없어 내세울 자료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에 회사 신뢰도의 '부재'를 명문대 학위, 과거 경력 등 표면적인 스펙으로 대체하려는 경우가 즐비하다.

투자자들도 초기기업이다보니 정보가 부재한 상황에서 가치평가를 내려야하기에 창업자의 스펙을 '대안지표'로 삼는 경우가 다반사다. 직접 채용이 아니기에 학위까지 요구하는 경우는 드물며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레퍼런스 체크가 일반적이다. 첫 투자 후에는 대부분 업계 추천 기반으로 후속 투자가 이뤄져 앞선 투자자들을 믿고 넘기는 경우가 많아 이런 폐단이 발생했다.

제2의 학력위조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벤처업계는 '진정한 스펙'의 의미에 대해 되돌아봐야 한다. 출신 조건에 투자하는 얼룩진 현실이 아닌 창업자의 기업 미션, 실패한 창업경험, 혁신 기술을 스펙으로 자신있게 내세울 수 있는 건강한 벤처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창업자에게 신뢰와 신용은 가장 기본 덕목이다. 순간의 그릇된 선택으로 함께 걷는 수많은 직원의 꿈을 저버리는 일이, 스타트업에 거는 사회의 기대를 무너뜨리는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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