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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를 움직이는 사람들]최태원이 선택한 유정준, 위기 때마다 해결사⑦글로벌사업 최고 협상가, SK E&S 키워 지주사 성장 기여…그룹 에너지·화학 사업 관리

김성진 기자공개 2019-11-01 13:35:53

[편집자주]

재계 서열 3위에 이름을 올리는 SK그룹은 빠르게 몸집을 키우며 선두권 경쟁 대그룹을 압도하는 성장을 이루고 있다. 섬유사업에서 시작해 석유화학·텔레콤·반도체 등 전혀 다른 영역에 과감하게 도전한 결과다. 상위권 대그룹 가운데 가장 많은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SK그룹은 수펙스추구협의회 등 독특한 의사결정기구를 마련하며 효율적이고도 투명한 경영환경 조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더벨은 SK그룹을 움직이고 있는 조직과 인물들을 조명해 봤다.

이 기사는 2019년 10월 28일 11:3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그룹 내 글로벌 협상전문가(Negotiator)'.

유정준 SK E&S 대표이사 사장(사진)은 그룹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해결사 역할을 하면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한 인물이다. 2003년 SK그룹의 최대 위기로 꼽히는 '소버린 사태'를 깔끔하게 처리하며 핵심인사로 올라섰다. 이후 최태원 SK그룹 회장 공백 시 해외 경험을 살려 글로벌 인맥을 직접 관리했고,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이 부재한 현재 SK E&S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유 사장은 그룹 내에서 대표적 글로벌 전문가이자 에너지 전문가로 손꼽힌다. 인도네시아(페르타미나), 중국(시노펙), 쿠웨이트(KOC) 등 주요 국영기업과 사업 협력은 물론 미국의 셰일에너지 선두 주자인 콘티넨탈리소시스,스페인 석유기업 렙솔, 일본 JX 니폰 오일&에너지와 글로벌 파트너십 등을 주도했다.

◇에너지·화학계열사 총괄…주특기 '재무·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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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사장은 SK그룹 수펙스추구협의회의 에너지·화학성장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SK그룹에서 계열사 대표이사와 수펙스추구협의회 위원장을 동시에 맡고 있는 세 명 중 한 명이다. 2015년부터 3년간 글로벌성장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다가 2018년 1월에 에너지·화학성장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존 에너지·화학성장위원장은 SK그룹 에너지 계열사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SK이노베이션의 김준 사장이 맡고 있었다.

유 사장이 에너지·화학성장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SK그룹 전체 에너지·화학 사업 방향성을 설정하는 조타수 역할을 부여받았다고 볼 수 있다. SK그룹을 구성하는 두 개의 큰 사업줄기가 ICT(정보통신)와 에너지·화학인 점을 감안하면 그룹 주요사업 한 축을 이끌게 된 셈이다.

유 사장은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진두지휘하며 자연스럽게 에너지·화학 분야에서 성장했다. 2004년 SK㈜R&I(자원개발 및 해외사업) 부문장을 맡은 게 계기가 됐다. 당시 SK는 그룹 차원에서 해외 자원개발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었고, 해외경험이 풍부한 유 사장이 적임자로 꼽혔다. 2008년에는 SK㈜에서 SK에너지로 자리를 옮기는 동시에 R&C(해외 및 화학사업) 사장 자리에 오르며 에너지·화학분야에서 확실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아울러 SK에너지의 1호 분사 기업인 윤활유 전문회사 SK루브리컨츠의 초대 사장을 맡아 성장기반을 닦기도 했다.

특히 유 사장이 벌인 해외 자원개발 사업은 실제 대규모 이익으로 돌아왔다. 지난 2011년 매각을 통해 20억달러(2조3400억원) 이상의 이익을 실현한 브라질 광구 인수를 주도한 인물도 유 사장이었다. 최근 SK이노베이션이 매각한 페루 가스전 인수도 유 사장이 직접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 사장은 SK E&S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이후 SK E&S를 국내기반 도시가스 회사에서 글로벌 회사로 성장시켰다. 무엇보다 LNG 밸류체인을 완성하는 데 주력했다. 그간 중동과 동남아에 편중돼 있던 우리나라의 LNG 수입처를 미주·호주 등으로 다변화 시켰으며, GS에너지와 보령LNG터미널에 투자해 LNG저장시설도 확보했다. 또 유 사장 부임 이후 SK E&S는 파주, 위례, 하남지역에서 잇따라 발전소를 새롭게 가동하며 총 3.7GW 규모의 발전소를 보유하게 됐다. 이는 친환경 천연가스발전 설비규모 기준으로 민간 최대규모다.

유 사장은 SK그룹에서 에너지·화학 전문가로 성장했지만 기본적으로 재무와 회계 분야에서 강점을 갖췄다. 이는 유 사장의 과거 이력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유 사장은 1962년 서울 출신으로 경기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일리노이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회계학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1987년부터 1991년까지 딜로이트앤터치 뉴욕사무소에서 선임회계사를 지냈고, 1991년부터 1995년까지는 맥킨지에서 컨설턴트로서 업무를 수행했다. 유 사장은 맥킨지에서 근무하며 최 회장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인연을 계기로 최 회장이 유 사장을 LG에서 SK로 직접 영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유 사장이 이끄는 SK E&S는 SK그룹 에너지 사업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비상장사라는 특징이 있다. SK㈜가 9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어 SK E&S의 실적이 SK㈜에 고스란히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SK E&S는 매년 70%를 상회하는 높은 배당을 실시하고 있다.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신설 및 해외 자원개발 투자 부담 탓에 잉여현금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가운데서도 SK㈜에 대한 고배당을 유지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사실상 SK㈜의 자금줄 역할을 한다고 보고 있다.

SK E&S의 그룹 내 역할과 유 사장의 금융 및 에너지·화학 전문가로서의 장기는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 SK E&S는 국·내외 유망한 에너지 사업에 투자하고 이를 매각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실현하고 있다. 유 사장의 금융 전문가로서의 가치판단과 오랜 기간 에너지·화학 사업에서 쌓아온 경력이 시너지를 발휘해 꾸준히 대량의 현금을 만들어내고 있다. 유 사장은 언론에 나서는 걸 꺼리지만 소극적이거나 소심한 성격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대화를 능숙하게 이끌어 나가고 결단력과 카리스마를 갖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러한 유 사장의 성격과 현재 역할도 잘 어울린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른 한편으론 유 사장이 최재원 수석부회장의 역할을 대신한다고도 볼 수 있다. 유 사장이 SK E&S 사장 자리에 오른 것은 2013년이다. 오랜 기간 SK E&S의 대표이사를 맡아왔던 최 수석부회장과 함께 공동 대표이사 체제를 이뤘다. 그러나 당시는 최 회장과 최 수석부회장이 횡령 혐의로 한창 검찰의 수사를 받던 때였고, 결국 최 수석부회장은 실형을 선고 받고 SK E&S 대표이사 자리에서 사임했다. 유 사장이 SK E&S로 자리를 옮긴 것은 사실상 최 수석부회장의 공석을 대비한 인사였던 셈이다.

◇소버린 사태 해결 주역...글로벌 에너지전문가로 성장

유 사장이 SK그룹 내에서 금융전문가로서 인정받은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일명 소버린 사태라고 불리는 미국 헤지펀드 소버린자산운용의 경영권 공격을 매끄럽게 방어하며 단 번에 핵심인사로 떠올랐다. 당시 유 사장은 LG건설에서 근무하다 SK㈜로 옮긴지 5년밖에 안 됐던 터라 최 회장의 유 사장 영입이 '신의 한 수'였다는 얘기도 나왔다고 한다.

2003년 소버린 사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 사장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 했는지 알 수 있다. 당시 최 회장을 비롯한 SK 경영진은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의 분식회계 사건과 관련해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었다. 소버린은 SK㈜의 주가가 떨어진 틈을 타 자회사 크레스트 증권을 활용해 지분을 야금야금 매입했고 결국 최대주주 지위에 까지 올랐다. 소버린은 SK㈜의 사외이사 추천과 정관 수정을 요구하며 직접적인 경영참여를 시도했다.

이때 유 사장은 사실상 SK그룹 경영진 공백 상황에서 전면에 나서 사태 진화를 진두지휘했다. 전략기획팀·재정팀·인력팀·홍보팀 등 18개팀을 지휘하는 경영지원부문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소버린에 대한 SK㈜의 대응전략을 마련했다. 동시에 유 사장은 소버린의 경영권 참여 요구에 대해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며 직접 SK그룹의 공식입장을 밝혔다. 당시 유 사장은 경영방어 전략을 수립하는 한편 SK그룹과 소버린 간 대화창구 역할도 함께 수행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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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유 사장은 사태를 마무리하며 SK그룹이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데도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최 회장의 강력한 의지를 고스란히 담은 개선안을 내놨다. 당시 손길승 SK그룹 회장, 김창근 SK㈜ 사장, 황두열 SK㈜ 부회장을 한 번에 사퇴시키기로 결정하는 동시에 사외이사 비중을 70%로 확대키로 하는 초강수였다. 이사회 개편 이후 SK㈜에 남은 사내이사는 최태원 회장과 유정준 당시 전무가 전부였다. 이 개선안을 계기로 SK그룹은 2007년 지주사 체제를 이루게 된다.

소버린과 대화 창구를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하며 협상 능력을 보인 유 사장은 이후 국제무대로 자리를 옮겼다. SK그룹은 유 사장에게 신성장동력 확보라는 중책을 맡겼다. 분식회계와 경영권 분쟁 등 한 차례 홍역을 앓은 SK그룹으로서는 분위기 쇄신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후 유 사장은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총괄하며 글로벌 사업가로서의 입지를 꾸준히 다졌고, 2011년에는 글로벌 성장(G&G) 추진단장을 맡기도 했다.

유 사장은 현재도 세계무대에서 입지가 탄탄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9월말 방한해 성윤모 산업부 장관을 면담한 파티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총재는 국내서 열린 한 포럼의 연사로 참석하며 대담자로 유 사장을 직접 지목했다. 유 사장은 글로벌 사업가로 활동하며 비롤 총재와 인연을 맺은 뒤10년 넘게 친분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유 사장이 SK그룹 초창기 소버린 사태로 치고나가며 엄청난 주목을 받았던 것과 달리 SK E&S로 옮기며 주목도가 떨어졌다는 얘기도 나온다"며 "그러나 실제 유 사장이 맡고 있는 역할을 생각하면 여전히 그룹 내 핵심 인사 중 핵심 인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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