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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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 아산 정주영 레거시]현대양행 파란의 역사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19-11-22 10:00:00

이 기사는 2019년 11월 22일 10:00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아산과 함께 현대건설을 일으켰고 현대건설 사장을 지낸 아산의 첫째 동생 후일 한라그룹 정인영(1920~2006) 회장은 1976년 현대의 사우디 주베일 항만 공사 참여에 신중론을 폈고 아산의 뜻에 강하게 반대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77년에 형을 떠나 1962년에 자신이 창립했던 현대양행(Hyundai International)으로 간다. 재계 순위 20위권의 한라그룹을 일구었다.

현대양행은 미국 포드와 제휴한 자동차 부품제조사였는데 국내 최초로 건설중장비를 생산했던 중공업 회사이기도 하다. 전두환의 신군부에 의해 1980년에 대우로 넘어가서 한국중공업이 되었다가 국유화를 거쳐 2000년 12월에 두산그룹이 인수해 두산중공업이 되었다.

정인영 회장이 현대건설의 주베일 항만 공사에 반대하기는 했지만 반드시 현대의 중동 진출 자체에 반대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현대양행은 1970년대에 이미 해수 담수화 사업에 진출했고 현재 두산중공업은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담수화 플랜트 사업 글로벌 1위 기업이다. 정인영 시절인 1978년에 사우디의 파라잔 해수 담수화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며 지금까지 중동에만 26개의 해수 담수화 플랜트를 건설했다.

clip20191121105630 1979년 12월 12일의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산업재정비 차원에서 기업 통폐합 작업을 추진했는데 현대그룹과 대우그룹에게 서로 중복되는 사업 교환을 통한 통폐합을 요구했다. 그 결과로 현대는 대우자동차를 대우는 현대양행(창원공장)을 인수하기로 되었던 것이다.

창원공장은 발전설비 부문을 가지고 있었다. 현대양행은 정부의 14개 발전설비 일원화 조치에 따라 사명도 한국중공업으로 변경하고(1980년 9월 13일 주총은 10분 만에 끝났다) 김우중 회장은 창원에 내려가 약 1년을 살다시피 하면서 정성을 쏟았다. 150억 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김우중은 원래 전두환과 가까운 사이였다. 그 때문에 하나회 후원자였던 윤필용 전 수도경비사령관의 1973년 설화 사건 때 육군보안사령부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 1980년 5월에 설치된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는 김우중에게 우호적이었다. 김우중은 신군부의 비호하에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문(대우전자),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를 인수해 사업을 키워나갔다.

김우중은 기술은 다른 데서 사오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R&D 투자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고 공격적인 은행 차입을 통한 M&A에 치중했던 기업인이다. 기술 개발을 최우선 순위에 두었던 아산과 정반대의 기업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산은 김우중을 한 수 아래로 본 것 같다. 그런 사람에게 정권의 압력으로 보물 같은 현대양행을 내주게 된 것이 뼈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대우자동차의 합작 파트너였던 미국의 GM이 현대로의 파트너 변경에 동의하지 않았고 소유 지배구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현대의 대우자동차 인수는 불발되었다. GM은 한국의 독자적인 자동차산업 발달을 원치 않았는데 대우자동차를 자기들의 하청공장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현대양행의 양도를 계속 압박해서 현대는 현대양행을 대우에게 사실상 무상으로 넘기게 되었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국보위에서 대우와도 일체의 소통 없이 사업교환을 백지화해 버렸다. 당시 한국중공업은 일시적인 자금난을 겪고 있었다. 정부는 이를 부실경영으로 몰았다. 그리고는 한국전력과 산업은행이 한국중공업에 출자하면서 한국중공업을 한전의 자회사로 만들어 국유화해버린 것이다. 대우 측도 매우 황당해 했다. 이런 식으로 신군부의 기업 통폐합 작업은 무위로 끝났다(대기업간 발전설비 경쟁과 조정, 국가기록원, 2007). 그때는 신군부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다. 결과적으로 현대는 현대양행을 국가에 헌납한 꼴이 되었다.

한편, 그 시기에 옥고를 치르기도 한 정인영 회장은 자신이 세운 현대양행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않고 1980년에 안양공장을 만도기계로 바꾸어 글로벌 자동차 부품회사로 성장시킨다. 재기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재계 12위까지 올랐던 한라그룹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1997년 IMF 사태 때 과도한 부채로 만도기계는 만도(자동차 부품)와 만도공조로 분리되었고 인천조선은 현대중공업이 인수해 지금의 현대삼호중공업이 되었다.

현대자동차가 2005년에 만도를 인수하려다가 중단한 적이 있고 정인영은 2006년에 타계했으나 한라그룹은 한라건설과 한라레미콘의 순항으로 기력을 회복, 범현대가의 도움으로 2008년에 만도를 되찾아왔다. 만도는 현대모비스, 현대위아와 함께 자동차 부품업계 글로벌 50위 안에 든다. 아산이 1977년에 설립했던 현대정공의 후신 현대모비스는 글로벌 7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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