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0년 02월 18일 07:5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름난 맛집의 특징 중 하나는 메뉴가 단순하다는 점이다. 단일메뉴나 과하지 않은 몇가지로 오랜 세월을 돌파해 왔다. 점포확장이나 메뉴 다변화의 유혹에 빠질 법 하지만 꿋꿋하게 한 자리를 지키는 집도 많다. 단순함에 꾸준함의 미덕이 더해지면 곰삭은 업력은 대체하기 힘든 '상징'으로 승화한다.이런 집(기업)의 비결을 정의할 때 호출되는 개념이 있다. '암묵지(暗默知)'다. 암묵지는 말 그대로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이다. 알고는 있지만 말로 표현하기 힘들고, 몸에 익었지만 계량화하거나 수치화하기 어려운 지식이다. 한 우물만 파다보니 어느덧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은 암묵지를 체화했다는 말과 같다. 집중력과 꾸준함이 전제조건이다.
삼영순화는 일반인들에게 낯선 이름이지만, 반도체 업계에서 대체불가한 상징이다. 이 맛집의 메뉴는 한 가지다. 과산화수소다. 1989년 설립한 이래 30년 넘게 반도체 식각 및 세척용 초고순도과산화수소만 만들었다. 물에 산소를 하나 더한(H2O2) 이 단순한 메뉴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정에 빠지면 안 되는 소재다. 최근에는 웨이퍼레벨(적층)이 고도화되면서 가치는 더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기획 부문 출신의 한 VC 심사역은 삼영순화를 두고 '미스터리한 기업'이라고 표현했다. 30년 이상 한 가지 물질만 생산, 납품하면서 부침없이 이익을 내는 기업을 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이 단순한 메뉴가 글로벌 톱티어의 입맛을 장악한 이유 역시 모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초고순도 정제 기술의 레시피가 결정적이겠지만 삼영순화의 단순함과 꾸준함은 최근 소재 기업들이 본받아야 할 미덕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농익은 세월이 만든 암묵지가 작용했다는 말로 들렸다.
사실 삼영순화의 기술은 일본 미쓰비시가스화학에서 유래됐다. 장인정신(craftsmanship)을 유독 강조하는 일본은 '기업 암묵지'의 원산지다. 미쓰비시는 이미 1933년 과산화수소 농축기술을 개발했다. 50년 넘게 담금질한 기술은 1989년 반도체 태동기 한국으로 넘어와 삼영순화에 이식됐다. 영우화학에서 한솔화학(현 한솔케미칼)으로 한 차례 파트너가 바뀌었지만 51대 49의 합작구조는 32년 째 지속되고 있다. 메뉴 역시 마찬가지다.
최고 수준의 품질, 안정된 지배구조, 파트너 사들의 신뢰관계. 비상장사지만 매해 최대 매출액을 갱신하고 13%대의 영업이익(2018년 매출 1453억원, 영업익 200억원)을 올리는 삼영순화의 드러난 비결이다. 그 이면에 깊게 스며있는 암묵지는 무엇일까. 설명은 힘들어도 추측은 가능하다. 그것은 태도(attitude)다. 삼영순화와 합작파트너인 미쓰비시, 한솔케미칼의 일관된 태도에서 기업의 조건을 읽는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best clicks
최신뉴스 in 전체기사
-
- [그것이 '알(리)'고 싶다]알리, 334억 유상증자 '1.5조 투자 시동거나'
- "글로벌 기술력 어필"…모델솔루션 'CMF 오픈하우스'
- LG전자, 러·우 전쟁 장기화에 모스크바연구소 철수
- [엔비디아 밸류체인 파트너]'8년 만에 적자' 브이엠, 해외진출 없이 반등 어렵다
- [한경협 파이낸셜 리포트]'부동산 거부 단체' 시세 1.3조 여의도 전경련회관
- [thebell interview]김경수 팹리스협회장 "한국판 엔비디아가 필요하다"
- LS에코에너지, 1분기 날았다 '모기업과 시너지 본격'
- [모두투어를 움직이는 사람들]'전략가' 조재광 상품본부장, 여행에 '취미' 더했다
- [폰드그룹을 움직이는 사람들]'조율사' 임종민 대표, 균형 잡힌 운영으로 새 판 짠다
- [IB 풍향계]바이오 IPO 보릿고개…업프론트 1400억도 'BBB'
조영갑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 시노펙스, 옌퐁사업장 IATF16949 인증 획득
- [Red & Blue]'삼성·애플·TSMC' 다 잡은 이오테크닉스, 그 끝은
- [코스닥 MZ 리더가 온다]'사전증여' 제일엠앤에스, 안정적 승계 '주춧돌'
- 고광일 고영테크놀러지 대표, 과학기술혁신장 수훈
- [코스닥 MZ 리더가 온다]"사전증여 어려운 현실, 가업상속공제 부담 여전"
- [코스닥 MZ 리더가 온다]김다산 위세아이텍 대표, 경영수업 일찌감치 완료
- [코스닥 MZ 리더가 온다]이영진 제일엠앤에스 대표, 위기의 가업 구했다
- [Company Watch]테크윙, 마이크론 투자 재개 덕 '반등 성공'
- 제이스코홀딩스 "필리핀 다나가트 광산 니켈 채굴 임박"
- 시노펙스, 대형 스마트 FPCB 모듈 공장 준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