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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아이스크림 잔혹사 [thebell note]

정미형 기자공개 2020-02-27 07:16:51

이 기사는 2020년 02월 26일 07:5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올해 글로벌 아이스크림 시장은 뜨거운 격전지로 부상했다. 지난해 글로벌 식품제조업체 네슬레가 미국 아이스크림 사업부를 매각하면서 비롯됐다. 매각 대금은 약 4조7000억원. 사업을 넘겨받은 합작벤처사 프로네리는 글로벌 1위인 유니레버와 한판 붙겠다는 각오다. ‘하겐다즈’를 앞세운 프로네리와 ‘벤엔제리스’를 앞세운 유니레버의 정면승부가 예고된 셈이다.

국내에서도 아이스크림 사업체에 대한 매각 검토가 이뤄지고 있지만 온도 차는 사뭇 다르다. 해태제과는 최근 자회사 해태아이스크림의 매각을 염두에 둔 사전 준비에 나서고 있다. 올해 초 아이스크림 사업부를 분사시켜 100% 자회사인 해태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사업 정상화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꼭 매각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매각까지도 검토할 만큼 다양한 방안을 열어두겠다는 방침이다.

국내 식품업체에 아이스크림 사업은 왜 미운오리새끼가 되었을까. 2000년대 초반부터 등장한 이른바 ‘반값 아이스크림’의 타격이 컸다. 특히 2010년 정부가 오픈프라이스 제도를 도입하며 가격은 고무줄처럼 변했다. 최종판매자인 슈퍼나 마트에서 아이스크림 가격을 큰 폭으로 할인해 판매하며 미끼상품처럼 활용했다. 소매상들은 가격을 경쟁적으로 줄이며 반값 경쟁을 이어갔다.

결과는 잔혹했다. 반값 아이스크림이 시장에 정착하며 기형적인 가격 체제가 일반화됐다. 공들여 만든 아이스크림도 납품가 인하 압박에 제값을 받지 못하니 수익성은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출산 기조가 이어지며 아이스크림 주 소비층이 갈수록 줄었다. 아이스크림 전문점, 디저트 카페, 커피숍 등 디저트 시장도 다양해지며 2015년 2조원을 넘나들던 아이스크림 시장은 지난해 1조5000억원 규모로 쪼그라들었다.

국내 아이스크림 업체 빅4는 팔릴수록 적자가 쌓이는 구조가 이어지며 힘을 잃었다. 2018년 초 가격 정찰제가 도입되며 각각 심폐소생에 나섰다. 그러나 제조사의 가격 표시를 꺼리는 소매상들 때문에 시장 정상화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소매상 입장에선 대형마트나 편의점에 비해 경쟁력 있는 대표 상품이 아이스크림이라 쉽게 포기할 수 없고 업체 입장에선 자칫하면 점유율에서 밀릴 수 있어 정찰제 도입이 쉽지 않다”고 꼬집었다.

결과적으로 해태제과의 아이스크림 사업부 정상화는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왜곡된 시장 구조를 바로 잡지 않는 이상 매력적인 매물로 통하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 때문에 출혈경쟁이 지속된다면 시장은 계속 녹아내릴 수밖에 없다. 건전한 시장 구조 확보에 아이스크림 시장 전체가 매달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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