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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 아산 정주영 레거시]아산의 시베리아 꿈이 일군 한·러동반성장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0-04-20 08:19:21

이 기사는 2020년 04월 20일 08:1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제정치와 외교 무대에서 아산의 국가적 공헌으로 88올림픽 유치 외에도 한소관계 개선을 들 수 있다. 아산은 1988년 2월에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던 이른바 북방외교(45개국과 신규 수교)의 핵심 부분을 전심전력 지원했다.

원래 정부가 해외의 험한 길을 개척해 주고 기업들이 그 기반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당시 기록을 보면 아산을 필두로 한 기업인들이 오히려 앞장을 섰다. 북방외교에서 아산이 수행한 역할은 당시 주역의 회고록에도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박철언,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2, 2005).

한국과 구소련이 수교한 것은 노태우 대통령 때인 1990년 9월의 일이다. 그전 1990년 6월에 노태우 대통령과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을 통해 수교의 원칙에 합의했었다. 아산은 그 전해인 1989년 1월에 소련상공회의소 회장 초청으로 소련에 가서 한소 경제교류와 시베리아 개발을 논의했었다. 그때 한소경제협력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아산이 물론 한국 측 위원장이 되었다.

아산은 한소수교 직후인 1990년 10월에도 소련을 방문해서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만났다. 여기서 아산은 고르바초프에게 시베리아 개발에 한국 기업이 주축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만남에서 고르바초프는 소련과 남한이 함께 밥을 지어서 북한과 나누어 먹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한다(이 땅에 태어나서, 345). 그 한 달쯤 후에 노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해서 한소 관계는 명실공히 정상화되었다. 2020년 9월 30일은 한러수교 30주년이다. 아산의 개척에 힘입어 이제 한국과 러시아는 2014년부터는 비자 없이 왕래하는 우호관계다.

아산은 자신이 한소 국교정상화를 앞당기는 데 힘을 보탰었다고 생각했고 소련의 영향력과 도움으로 남북관계를 진전시켜야 한다고 보았다(349). 실제로 아산의 한소관계 활동과 남북교류 활동은 시기적으로 병행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아산은 1989년 1월 첫 모스크바 방문과 연계해서 첫번째로 북한을 방문했다.

아산은 첫 번째 회고록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소련 첫 방문, 고르바초프와의 만남, 1991년 블라디보스톡과 모스크바 방문 때의 이야기를 학생이 일기를 쓰듯이 각각 상세히 기록해 놓고 있다. 한 구절이다(243):

“3월 12일(화요일) 흐림. 새벽 4시 기상.. 6시에서 7시까지 호텔 주변을 속보로 산책하고 오전 11시엔 벨리치코 연방정부 제1부수상을 예방, 연해주의 수력발전소 건설과 알루미늄 제철소 문제를 협의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제1부수상은 소련의 석유생산을 부활시키기 위한 5억 달러의 원유생산 기자재 차관 문제를 간곡히 부탁했다. 사할린 지방의 원유 가스 생산문제의 상호협력을 진지하게 검토했다.. 오후 3시, 메드베데프 대통령위원회 위원을 예방, 소련 연방의 정치, 경제, 사회 등에 걸친 문제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아산은 자원의 보고인 시베리아 개발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 교두보 역할을 해 줄 블라디보스톡에 5성급 호텔인 현대호텔(현 롯데호텔)도 지었다. 여기서 매년 동방경제포럼이 열린다.

아산은 처음 시베리아 개발을 구상하던 당시에 이미 야쿠츠크에 매장되어 있는 천연가스를 북한을 통과하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들여오는 안을 생각했다. 이 구상은 먼 훗날까지 살아남아 아산사회복지재단 정몽준 이사장이 2010년 10월에 2022월드컵 유치를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총리와 만났을 때 남북 가스관 사업 협의로 이어졌다. 정 이사장과 푸틴은 액화천연가스의 선박 운송을 통한 한국으로의 수출 방안과 북한을 경유하는 가스관을 건설해 수송하는 두 가지 방안에 대해 서로 의견을 교환했다고 전해진다.

현대와 러시아는 동반성장 중이다. 현대중공업과 러시아 국영해운사 소브콤플로트(Sovcomflot)는 1989년에 첫 선박건조계약을 체결했는데 2019년 9월 현재 총 100여 척의 선박이 성공적으로 인도되었다. 1995년에 설립된 소브콤플로트는 석유와 천연가스 운송 특화회사로 러시아 최대 해운사다. 현대중공업은 또 세계 최초의 LNG추진 LLVC인 ‘가가린 프로스펙트’호를 비롯해 모두 6척을 건조해 인도를 완료했다.

러시아 정부가 대형 국책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극동 조선소 현대화사업에는 현대삼호중공업이 협력한다. 로즈네프트와 가즈프롬에 선박을 공급하는 유서깊은 즈베즈다(Zvezda)조선소(1945년 설립)와 2015년부터 기술협력 관계다. 2018년 2월에 LNG추진 11만4천 톤급 원유운반선 3척의 분할 건조와 기술협력계약이 체결되었다. 필자는 삼호중공업에서 이 배들을 직접 보았는데 대형 유조선들이 블록으로 나누어져 블라디보스톡까지 예인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2019년 7월에는 LNG추진 원유운반선 4척에 대한 건조협력계약이 추가로 체결되었다.

2010년 9월에는 현대자동차 러시아공장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에 준공되었다. 푸틴이 쏠라리스를 직접 시운전 했고 정몽구 회장이 옆자리에 동승했다. 쏠라리스는 이른바 극지 맞춤형 전략 모델이다. 긴 겨울, 눈이 많이 오는 환경과 러시아인의 운전습관까지 연구했다. 현재 현대차 러시아공장에서는 약 2300명이 글로벌의 4%인 연 20만대를 생산한다. 현지 협력업체를 포함한 총 고용창출은 거의 7천 명이다.

2017년에 독일 함부르크에서 한·러 정상은 극동개발 협력과 함께 북핵 불용과 비핵화 협상 재개에 합의한 바 있다. 양국간 경제교류와 사업협력도 활발하다. 아산이 역설했던 것처럼 러시아와의 경협과 사업협력에 지속적으로 더 공을 들여야 한다. 아산의 시베리아 꿈은 언젠가는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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