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04(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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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재벌시스템]핀칸티에리 '민영화'가 대우조선 M&A에 던진 의미'세계 1위 크루즈' 경쟁력 강화 위한 불가피한 선택…한국조선해양과 통합, 글로벌 트렌드

구태우 기자공개 2020-06-01 08:03:39

[편집자주]

세계 최대 농업·식품회사인 카길은 비상장이고 가족지배 기업이지만 현재 가족이 경영하지 않는다. 세계적 플랫폼 기업 구글도 창업자들이 1선에서 모두 퇴진, 인도 출신 순다르 피차이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소유·경영의 분리 사례다. 자본시장의 역사가 짧은 한국 기업은 태생적으로 소유·경영의 융합모델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고도 성장과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너경영 3·4세 시대에 접어들며 변화를 요구받는다. 국내 대표 기업 삼성이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 지배구조 뿐 아니라 이사회·내부통제·조직구성에 까지 영향을 줄 사안이다. '포스트 이재용 선언'은 곧 '포스트 재벌시스템'이다. 이재용 선언 이후의 재벌시스템, 나아가 4차산업혁명 이후의 재벌시스템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5월 29일 07:31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상상해보자. 미국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가 일론 머스크가 아니고 전문경영인이었다면 어땠을까. 미국 페이스북의 최대주주가 채권단 또는 국책은행이었다면 어떤 형태의 소셜네트워크(SNS)가 되었을까.

테슬라에 대규모 투자와 혁신은 없었을 것이고 '모델' 시리즈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 않았을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테슬라는 전기차의 '대명사'에 가깝다. 페이스북의 소유주가 국책은행이었다면 페이스북은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 사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왼쪽 테슬라 창업주 일론 머스크, 오른쪽 페이스북 창업주 마크 주커버그

이렇듯 일론 머스크와 마크 주커버그가 없는 테슬라와 페이스북은 상상하기 어렵다. 국내외에서 기업의 오너가 기업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된 사례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 등이 한 예다.

미국의 CNN은 테슬라를 가리켜 "이 세상 주식이 아니다(Tesla's stock is out of the world)"라고 말했다. 테슬라의 주가는 일론 머스크의 한마디에 요동치고 판매실적에 따라 급격하게 변동한다. 만약 전문경영인이 운영했다면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테슬라의 '기적'을 볼 수 있었을까.

이렇듯 기업의 이상적인 지배구조는 회사가 처한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기업의 지배구조가 적합하게 운용되고 있지 않다면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재무부 소유 '핀칸티에리', 부실 커져 '민영화'

조선업은 2010년부터 신조 발주량이 꾸준히 감소하면서 세계적으로 생존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대형 조선소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은 '흑자와 적자'의 경계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중소 조선업계는 중형선의 경쟁력이 악화되면서 일감이 말랐다. 중형 조선소는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가운데 하루 하루 힘겹게 버티고 있다.

2000년대 초중반 국내 조선업계는 대호황이었다. 한국은 중국의 폭발적인 경제 성장의 최대 수혜자였다. 중국에 들어갈 물자와 재화는 한국 조선소가 건조한 배에 실려 운반됐다. 중국 경제의 성화가 꺼지면서 '연착륙'에 들어갔고 한국 조선소의 수주 물량도 동반 감소했다.

그럼에도 국내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은 사실상 전무했다. 조선소가 자체적으로 부실을 덜어내는 정도의 소극적 구조조정이 전부였다. 국책은행은 조선소의 유동성이 악화될 때마다 자금을 지원했다. 국내 조선업의 지난 10년은 '유동성 악화→자구안 수립→국책은행 자금 지원' 등이 꾸준히 반복됐다.

하지만 해외 조선업계의 대응은 달랐다. 일본은 대형 조선소인 이마바리조선이 적극적으로 중형 조선소들을 흡수합병했다. 민간기업이 조선업 구조조정의 선봉에 섰다.


이탈리아는 세계 1위의 크루즈 건조 조선소인 핀칸티에리(Fincantieri)를 민영화했다. 핀칸티에리는 1959년 설립돼 2014년까지 55년 동안 소유주가 정부였다. 당시 이탈리아 정부는 재무구조 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핀칸티에리와 항공운송회사 에나브(Enav) 등의 민영화를 추진했다.

핀칸티에리의 민영화가 결정된 건 경쟁력 때문이었다. 핀칸티에리는 2014년 매출 43억 유로(6조원)를 올렸다. 고부가가치 선종 위주로 수주하면서 매출은 전년(38조 유로)보다 5억8800만 유로(8050억원) 늘었는데 순이익은 오히려 3000만 유로(410억원) 감소했다. 영업이익률은 1.2%에 그쳤다.

같은 기간 유동부채는 1000만유로(136억원) 증가한 8000만유로(1093억원)를, 비유동부채는 3700만유로(505억원) 늘어난 6억유로(8199억원)를 기록했다. 재무현금흐름은 꾸준히 플러스(+)가 이어졌는데 이는 한해 동안 차입한 규모가 상환한 금액보다 컸다는 의미다. 2014년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전년 7.0%보다 3.0%포인트 하락한 4.0%를 기록했다.

이를 종합하면 핀칸티에리는 수익성과 재무구조가 동시에 부실해졌다. 핀칸티에리의 경영 환경이 악화된 건 시황 때문은 아니었다. 핀칸티에리는 전 세계 크루즈 선종의 점유율이 40%에 달할 정도로 높은 경쟁력을 보유한 회사다.

당시 중국 경제의 부진으로 상선 시장은 극심한 불황에 시달렸다. 반면 크루즈선의 발주량은 두 배 이상 늘어나면서 초호황을 맞이했다. 2015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발표한 '크루즈산업 중장기 발전전략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크루즈 관광객은 2005년 1330만명에서, 2020년 2670만명으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북미 지역과 중국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 크루즈 여행 수요가 늘었고 노후 선종 교체 수요까지 맞물리면서 크루즈선 시장은 이례적인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핀칸티에리의 경영은 악화됐다.

2000년대 초중반 국내 '빅3' 조선소가 초호황을 누렸을 당시 곳간에 현금이 넘쳐났다. 그런데 이탈리아의 핀칸티에리는 곳간은 비고, 빚만 쌓여갔다. 결국 이탈리아 정부는 50여년간 공기업이었던 핀칸티에리의 민영화를 결정했다.

현재 최대주주는 이탈리아의 카사데포시티(CDP) 은행이다. CDP은행은 핀칸티에리의 지분 71.3%를 보유하고 있다. 과거 부동산 공기업 'Fintecna'를 통해 핀칸티에리를 지배했다. 사실상 이탈리아의 재무부가 핀칸티에리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민영화 이전 핀칸티에리의 회장은 빈센조 페트론(Vincenzo Petrone)이었다. 이탈리아 외무부 출신으로 과거 일본과 브라질 대사를 역임했다. 조선업종에 대한 전문성은 전무했지만 세계 1위 크루즈 조선소의 회장을 맡았다. 현 회장 역시 외무부 출신인 잠피에로 마솔로(Giampiero Massolo)다. 경영은 쥬세페 보노(Giuseppe Bono) 대표이사가 맡고 있다. 그는 1993년부터 핀칸티에리에 입사해 재무 부서 등 주요 부서를 두루 거쳤다.

핀칸티에리는 지난해 매출 45억유로, 순이익은 1억5000만유로를 냈다. 매출 규모는 2014년과 비교해 소폭 상승했는데 순이익은 3배 이상 증가했다. 지배구조 개편 때문일까. 핀칸티에리의 사업성은 이전보다 개선됐다는 평이다.

◇'공기업 대우조선해양', '오너십' 체제로 편입한 이유는

지난해 1월 약 20여년 동안 사실상 정부 소유였던 대우조선해양의 '민영화' 전환 계획이 발표됐다. 산업은행은 55.7%의 보유 지분을 주식스왑 형태로 한국조선해양(옛 현대중공업)에 넘기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한국조선해양이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가 되고 산업은행은 소수 지분만 보유한다. 과거 대우조선해양은 한화그룹과 포스코그룹, GS그룹 등 대그룹들이 눈독을 들였던 회사다. 결국 대우조선해양의 소유권은 현대중공업그룹에 넘어갔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후 현대중공업그룹 지배구조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특혜', '헐값 매각'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핀칸티에리와 이마바리조선의 사례로 보면 이는 일종의 '트렌드'에 가깝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대우조선해양은 약 20여년 동안 정부 소유로 있으면서 유동성 지원으로 여러차례 위기를 넘겼다. 이 과정에서 약 10조에 이르는 자금이 지원됐다. 경영진은 수조원대 '분식회계'를 저질러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도 일었다. 해양플랜트 부문의 부실로 수조원의 손실을 입었는데 공사진행률 등을 허위로 조작해 가공의 매출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은 과거의 '오명'을 씻어내고 실적과 재무구조 모두 개선됐다.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8조3175억원, 2680억원을 기록했다. 3.2%의 영업이익률을 냈다. 부채비율도 200% 아래로 내려갔다. 2014년 부채비율은 무려 700%를 넘었다.

그럼에도 대우조선해양을 선뜻 사겠다고 나설 원매자는 없었다. 조선업 시황은 악화됐고 경쟁은 심화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의 인수를 자처하고 나섰다. 인수금액이 낮아지면서 과거보다 부담이 크게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조선해양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모험'에 가깝다. 신조 발주가 줄어들 경우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은 수주 물량을 'n분의 1'을 해야한다. 조선업계에서는 '일장일단'이 있다는 평이다.

먼저 글로벌 수주 환경이 나빠질 경우 대우조선해양의 생존까지 현대중공업이 책임져야 하는게 부담이다. 장점으로는 수주 환경이 개선된다는 점이 있다. 과거 대우조선해양은 '저가 수주'로 인해 경쟁 조선소의 눈총을 받았다.

수주산업의 경우 수주 물량이 줄면 매출 하락과 고정비 부담 등 '이중고'에 허덕인다. 대우조선해양은 손해를 감수하고 저가수주를 감행했다는게 경쟁사들의 주장이다.

이번 인수 절차가 마무리되면 대우조선해양은 산업은행의 지배에서 벗어난다. 이전에는 정부 산하에 있으면서 '오너십'이 사실상 없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정기선 부사장으로 승계를 앞두고 있어 '오너기업'으로 분류된다. 그룹 편입 후 수주 전략과 경영 전략에 맞춰 대우조선해양의 경영환경이 대대적으로 개편될 전망이다.

왼쪽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잔, 오른쪽 정기선 부사장
사업적 측면에서는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얻는 이득은 크지 않다. 하지만 '오너십'의 측면에서 얘기가 달라진다. 멀지 않은 시기 현대중공업그룹이 30여년 간 유지했던 '소유와 경영의 분리' 체제는 종언된다. 최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 부사장이 그룹 경영권을 쥔다. 현재는 전문경영인인 권오갑 회장이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정 부사장이 조선업을 총괄할 시기에는 수주 경쟁이 현재보다 치열해질 전망이다. 국내 조선소는 고부가가치 선종인 LNG선까지 중국 조선소와 수주 경쟁을 벌일 것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이 정보통신기술(ICT)이 결합된 '스마트 조선' 분야와 애프터서비스 등 솔루션 분야에 힘을 쏟는 이유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글로벌 '빅3'를 '빅2'로 통합하면서 경쟁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이를 통해 정 부사장이 앞으로 직면할 어려움을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한국조선해양의 수주 경쟁은 보다 완화될 것"이라며 "이는 정기선 부사장이 경영권을 쥐었을 때 적잖은 이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이마바리조선은 지난해 2위 조선소인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이마바리조선은 100년째 가족기업으로 운영 중인데, M&A를 통한 이득은 결과적으로 가족인 히가키 가문 일가에 돌아온다. 한국조선해양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일본의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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