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전체기사

[CRO 워치] 글로벌 금융사, CEO 맞먹는 CRO 위상...국내는?③지주·은행 내 서열 낮고, 책임·권한 부족…이사회 내 리스크위원회 참여도 제한

고설봉 기자공개 2020-06-04 13:57:05

[편집자주]

1762년 설립된 영국의 베어링은행이 문을 닫은 이유는 단 한 건의 주문실수 때문이었다. 파산 직전까지도 베어링은행의 리스크관리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이익을 쫓아 리스크를 테이킹하려는 영업조직과 사전에 위기를 감지하려는 리스크관리 조직 간의 끊임없는 긴장 속에서 금융회사와 기업은 성장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 도입되고, 금융위기를 거치며 정비된 리스크관리 조직은 지금 어떻게 작동하고 있을까. 더벨은 리스크관리 정점에 있는 최고위험관리책임자(CRO)의 역할과 리스크 대응 전략, 구체적인 사례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기사는 2020년 05월 29일 16:2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국내에 도입된 전문적 리스크 관리 개념은 2008년 금융위기 때 전 금융사로 퍼져나갔다. 20여년이 지난 2020년 현재 국내 주요 금융그룹 및 은행들은 모두 리스크관리책임자(CRO)를 정점으로 리스크 관리 전담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 금융사 내에서 CRO의 권한과 역할은 초기에 비해 크게 확대되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사 내에서 CRO의 위상이 대표이사(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높아진 것과는 격차가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거치며, 해외선 CEO·CFO 만큼 커진 CRO 위상

해외에서는 CRO가 이사회 구성원에 포함되거나, CRO를 중심으로 금융사 내 조직체계가 재정비된 사례가 등장한다. CEO 중심의 경영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인식이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이사회와 경영진의 리스크관리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금융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최고 경영진의 독단적 행동이 리스크관리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으로 지적됐다.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메릴린치다. 최고 경영자가 부채담보부증권(CDO)의 위험을 경고한 임원을 해고함으로써 2007년 4분기 역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최고 경영자의 과도한 리스크 부담을 적절히 견제할 수 있도록 리스크 관리 체계가 설계될 필요성이 대두됐다. 적절한 리스크 관리 체계를 설립하기 위해 CRO의 권한 및 역할을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성도 나왔다.

실제 글로벌 대형 은행들을 중심으로 상시적 리스크 관리를 더 강화하고, 리스크 관리의 정점에 있는 CRO의 권한과 위상을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금융위기 이후 해외에서는 CRO의 권한과 책임을 더 확대하는 쪽으로 변화가 일어났다.

CRO가 리스크위원회에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한다는 내규가 각 은행들에 만들어졌다. 이사회 내 리스크위원회의 의장을 CRO가 맡는 경우도 생기기 시작했다. 미국을 넘어 유럽, 일본 등에서도 이런 변화가 시작됐다.

1857년 스페인에서 설립, 유럽의 대표 은행인 산탄데르은행(Banco Santander)은 CRO가 그룹의 부회장으로 이사회 리스크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강력한 리스크 관리 주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일본을 대표하는 미쓰비시 UFJ 금융 그룹(Mitsubishi UFJ Financial Group)의 경우 CRO가 이사회 구성원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CRO의 보고체계도 달라졌다. CRO의 보고체계는 국가별, 은행별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이사회나 CEO에 보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JP모건체이스(JP Morgan Chase & Co.), 산탄데르은행 (Banco Santander SA), 스탠다드차타드(Standard Chartered), 스코틀랜드왕립은행(Royal Bank of Scotland)를 중심으로 CRO가 이사회에 직접 보고하는 체계가 정착됐다.


◇국내선 등기임원 CEO·CFO가 독식…사업부문 중 하나, 권한 제한적

국내 금융사들은 아직 CRO의 역할과 권한을 CEO·CFO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격상시키지는 않았다. 여전히 CEO가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지배구조 정점에 서 있다. CFO는 CEO와 보조를 맞추는 동시에 함께 등기임원(사내이사)에 선임되며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실제 공시를 통해 임원 현황을 공개하고 있는 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 및 은행의 경우 회장(CEO)과 은행장(CEO),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등기임원(사내이사)을 도맡고 있다.

등기임원은 이사회에서 참여해 의사결정권을 가진다. 반면 미등기임원은 이사회에 참여할 수 없고 의사결정권도 없다. 4대 금융지주 모두 실질 지배권을 가진 대주주 없이 이사회를 통해 주요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인사권이 행사되는 만큼 등기임원의 힘은 막강하다. 이런 등기임원의 권력이 모두 CEO·CFO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더불어 4대 금융지주 및 은행 모두 이사회 내 리스크관리위원회를 별도 설치하고 있다. 하지만 CRO가 리스크관리위원회에 참여할 수 없는 구조조적 한계가 명확하다. 오히려 비전문가로 볼 수 있는 사외이사나 CEO·CFO 등이 리스크관리위원회에 소속되는 사례가 포착된다.

각 금융지주 및 은행별 직급과 직위, 연차 등을 종합한 서열에서도 CRO는 높은 지위에 있지 않다. CRO들은 보통 금융지주 및 계열사 내 핵심임원에 오르지 못했다. 4대 금융지주와 은행 모두 회장·행장·부사장(부행장) 등 핵심인원들은 경영·전략·재무부문이나 영업조직 등에서 배출되는 경향이 짙었다. CRO가 주요 보직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회사 내에서 지위는 비교적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신한금융지주는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과 진옥동 신한은행장이 내부 임원 중에서는 유일하게 등기임원에 선임돼 있다. 이외 등기임원은 모두 사외이사들로 구성돼 있다. CRO는 방동권 상무가 맡고 있는데, 그는 신한금융 임원 중 가장 서열이 낮다.

신한은행은 김임근 부행장보가 CRO를 맡고 있다. 그의 은행 내 서열은 진 행장에서부터 6번째다. 진 행장과 신한지주 CFO인 노용훈 부사장이 등기임원에 선입돼 있다. 은행 내 4명의 부행장들은 각각 디지털개인부문, 디지털그룹, GMS그룹, GIB그룹 등을 맡고 있다.

KB금융지주도 상황이 비슷하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과 허인 국민은행장만 등기임원에 선임돼 있다. CRO인 서남종 부사장은 미등기임원이다. 지주사 내에서 서 부사장은 5번째 서열이다.

국민은행 CRO인 최철수 전무는 회사 서열 15번째에 올라 있다. 국민은행은 1명의 행장과 5명의 부행장을 두고 있다. 부행장들은 영업그룹, 경영기획그룹, 개인고객그룹, WM그룹, 디지털금융그룹, IT그룹 등 영업 및 미래금융 관련 사업부문을 맡고 있다.


하나금융지주는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만이 유일하게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나머지 임원들은 모두 미등기임원이다. CRO는 황효상 부사장이 맡고 있는데, 그 위로 6명의 고위 임원이 있다.

하나은행 CRO도 황 부사장(부행장)이 겸직한다. 하나은행은 4대 은행 중 가장 CRO의 격이 높다. 하지만 역시 황 부행장은 미등기임원으로 사내 부행장 중에서 서열이 가장 낮다. 지성규 은행장과 이승열 부행장(CFO)이 나란히 등기임원에 선임돼 있다.

우리금융지주는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이원덕 부사장이 등기임원에 선임돼 있다. 이 부사장은 전략부문을 총괄한다. CRO는 정석영 전무가 맡고 있는데, 그 역시 지주 내 서열은 10번째로 낮다.

우리은행은 권광석 은행장이 내부임원 중 유일한 등기임원으로 선임돼 있다. 이어 개인그룹, 여신지원그룹, 자산관리그룹, 기관그룹, 외환그룹, 경영기획그룹, 업무지원그룹, 기업그룹, 홍보브랜드그룹, 정보보호그룹, IT그룹, 부동산금융그룹, 준법감시인 등의 집행부행장 및 집행부행장보 13명의 임원이 영업 등 조직을 이끌고 있다. CRO를 맡은 전상욱 리스크관리그룹장은 상무로 내부 서열은 16번째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내 주요 은행들에서 CRO의 지위와 권한은 글로벌 은행들과는 차이가 크다”며 “리스크관리는 영업조직과 정면에서 맞서는 곳인데 아직까지는 영업조직의 힘이 더 우세하고, 내부에서도 리스크관리조직은 특수한 보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남아있다”라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더벨 서비스 문의

02-724-4102

유료 서비스 안내
주)더벨 주소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로 41 영풍빌딩 5층, 6층대표/발행인성화용 편집인이진우 등록번호서울아00483
등록년월일2007.12.27 / 제호 : 더벨(thebell) 발행년월일2007.12.30청소년보호관리책임자김용관
문의TEL : 02-724-4100 / FAX : 02-724-4109서비스 문의 및 PC 초기화TEL : 02-724-4102기술 및 장애문의TEL : 02-724-4159

더벨의 모든 기사(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copyright ⓒ thebell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