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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독일 경제사에 남은 1959년 BMW 주총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0-07-10 14:00:36

이 기사는 2020년 07월 10일 14: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19년 매출액 기준으로 독일 5대 기업은 폭스바겐, 다임러, 알리안츠, BMW, 지멘스 순이다. 그런데 약 60년 전에 BMW는 다임러-벤츠에 흡수합병 당할 뻔했다. 독일의 경제사가들은 1959년 12월 9일 뮌헨에서 개최되었던 BMW의 주주총회가 독일 경제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보는데 이 주총에서 BMW의 소수주주, 종업원, 대리점들이 BMW가 소멸되는 것을 성공적으로 저지했기 때문이다.

주총이 열렸던 즈음 BMW는 소비자 취향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경영실패의 결과로 도산을 몇 주 앞두고 있었고 유일한 출구로 다임러-벤츠에 흡수합병되는 안이 제시되어 주총이 소집되었다. 회사는 추진력도 없고 전문성도 떨어지는 법률가 출신 전문경영인 CEO가 이끌고 있었다. 회사의 최대주주는 도이치은행이었는데 도이치은행 중역 한 사람이 이사회 의장이었다. 도이치은행은 동시에 경쟁사 다임러-벤츠의 최대주주였고 BMW 이사회 의장이 다임러-벤츠 이사도 겸하고 있었다. 즉, 최대주주의 입장에서 두 회사는 계열사였다. BMW의 위기 타개책으로 자연스럽게 두 회사의 합병안이 나온 것이다.

여기서 BMW 창업자 귄터 크반트의 장남인 대주주 헤르베르트 크반트의 입장이 곤란해졌다. 물려받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회사를 포기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BMW가 가업이라는 점 외에도 크반트는 BMW의 스포츠카 DNA를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주총 당일 조용히 주총장에 도착해서 뒷자리에 앉아 합병안이 가결되는 것을 지켜볼 참이었다.

주총 의장은 BMW가 7천만 마르크 가치의 신주를 다임러-벤츠에 발행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합병안을 제안했다. 당시 다임러-벤츠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고객들이 신차 인수 대기기간이 너무 길다고 불평하는 상황이었다. BMW의 우수한 설비와 6천 명의 인력이 다임러-벤츠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계산되었다.

여기서 이변이 일어났다. 주총장을 가득 메웠던 소액주주들과 우리사주조합원들이 회사의 합병안에 격렬하게 반대하면서 경영진을 성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 소액주주는 법전과 신문기사를 장시간 인용하면서 합병안에 대한 주주들의 불만을 피력했다. 주총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고 경영진과 크반트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그때 마테른이라는 이름의 한 대리점 대표가 소수주주들의 입장을 정리했다. BMW는 이례적으로 주주와 종업원들의 충성도가 높은 회사이니만큼 전반적인 자동차 경기의 활황을 등에 업고 새 출발을 모색해보자는 것이었다.

마테른은 BMW의 항공기엔진 제조 계열사를 MAN에 매각한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MAN은 사실 오래전부터 그 회사를 3천만 마르크에 사들이려고 노력해 왔다. 이 돈을 마련하고 동시에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의장은 마테른의 대안이 현실성이 없을 뿐 아니라 최대주주의 이해관계에도 맞지 않아 채택되지 못할 것으로 보았다. 주총은 이미 10시간을 경과하고 있었다.

이때 마테른이 주총의 연기를 제안했다. 이 제안은 거의 70%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도이치은행이 반대하면 부결되는 의안이지만 마테른은 독일 회사법에서 회사의 사업보고서에 하자가 있는 경우 10% 주주의 찬성만으로 주총을 연기할 수 있다는 규정을 찾아냈다(마테른은 변호사 출신이었다). 그리고 1958년 손익계산서에서 신차 개발비 관련 회계오류가 있다는 것도 발견해냈다. 표결이 진행되었고 소수주주 측이 승리했다. 주총장은 박수 소리로 떠나갈 듯했다. 극적인 이변이 연출된 것이다. 주총이 무산되어 합병안도 자동 폐기되었다.

이 모든 과정을 직접 지켜본 크반트는 큰 충격을 받았다. 대주주로서의 자신은 포기한 회사를 소수주주들과 종업원들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는 과연 회사가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며 자신은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합병 외의 대안을 찾아 동참해야 하는가였다. 결국 크반트는 행운을 기대하면서 자신이 직접 나서 회사의 구조조정과 정상화를 진행하기로 결심했다.

크반트는 먼저 회사의 경영개선과 제품의 품질관리에 집중해 BMW의 자동차들을 환골탈태시키는 작업에 착수했다. 부품의 조달과 품질관리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MAN에 자산을 매각해 3700만 마르크를 확보했다. 다음은 유상증자였다. 도이치은행은 동참할 의사가 없었다. 크반트는 다른 은행들을 찾아내 총액인수가 아니라 시장에서 인수되지 않는 신주 물량은 모두 자신이 떠안는다는 당시까지 전례가 없던 조건으로 자금조달을 진행했다. 4천만 마르크 대의 위험을 부담했다. 그러자 회사의 주주들이 화답했다. 1960년 12월 1일의 주총에서 96%의 주주가 구조조정계획에 찬성했고 유상증자에서 5250만 마르크가 조달되었다. 크반트가 떠안은 물량은 10만 마르크에 그쳤다. 독일 경제사의 위대한 페이지가 씌여지는 순간이었다.

크반트의 올인으로 1962년 BMW는 손익을 맞췄고 1963년부터는 배당을 실시할 수 있었으며 1965년부터는 주문이 밀리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크반트의 결심이 자동차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그때까지는 부친이 물려준 재산의 투자자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주총을 계기로 기업가로 변신해 공장과 제품에 창의적으로 직접 기여해 보겠다는 의지가 발현되었다는 것이다. 소수주주들과 종업원들의 회사에 대한 애정이 50세의 크반트를 그렇게 만들었다.

당시 BMW의 주식은 보수색이 짙은 바이에른 지역의 주민들이 널리 소유하고 있던 일종의 국민주였다. 바이에른 주민들은 BMW에 애착을 가진 나머지 주식을 상속의 대상으로 여기고 절대 팔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선장이 없는 배였던 BMW에서 경영진과 이사진은 무기력하고 지지부진했다. 주주, 종업원들의 신뢰를 받는 헌신적인 오너의 등장이 모든 것을 바꾸었고 오늘의 BMW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Rüdiger Jungbluth, Die Quandts: Deutschlands erfolgreichste Unternehmerfamilie (2015), 207-23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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