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기업엔 언감생심…기안기금 운용실적 '0%' 예상보다 높은 이율, 까다로운 사용 조건에 '개점휴업'
고설봉 기자공개 2020-09-07 08:02:17
이 기사는 2020년 09월 04일 16:0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기간산업안정기금(이하 기안기금)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시중은행보다 이율이 높고 각종 제약에 따라 문턱이 너무 높다는 평가다. 기업과 산은의 중간에서 기금신청을 대리하는 시중은행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4일 금융권에 따르면 설립 3개월차를 맞은 기안기금의 운용실적이 단 한건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안기금 운용을 전담하고 있는 산업은행은 이렇다할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7월 7일부터 기업들을 상대로 신청을 받기 시작됐지만 아직까지 한 건도 신청이 들어오지 않다.
기안기금은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한 기업들의 유동성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설립했다. 지난 4월 29일 기안기금 설치를 위한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후 산은은 5월 21일 기금을 운용할 전담조직인 기간산업안정기금본부(이하 기안기금본부)를 출범했다.
기안기금본부는 구조조정본부와 기업금융실이 소속된 기업금융부문의 하위 조직으로 만들어졌다. 기업금융부문은 2본부, 9실(국), 1센터 체제로 운영된다. ‘기업’에 초점이 맞춰진 기금의 특성상 구조조정본부와 기업금융실과의 협업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기업금융부문은 산은에서 오랫동안 기업금융과 구조조정을 담당한 최대현 부행장이 총괄한다.
하지만 화려하게 출범했던 것과는 달리 현재 기안기금본부는 제 역할을 못하는 양상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업들의 기안기금에 대한 기대도 낮아지는 추세다.
기업들이 기안기금 신청을 기피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우선 금리가 시중은행보다 높다. 현재 산은이 제시하는 금리는 시중금리 '플러스 알파(+a)'다. 일각에서는 신용도에 따라 다르지만 시중금리에 100bp 정도 이자를 더 내야 한다는 말도 들린다.
특히 기안기금의 경우 기업이 직접 산은에 신청할 수 없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기업은 시중은행과 상담을 거치고 그 뒤 시중은행이 대리로 산은에 기금을 신청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시중은행 금리와 기안기금 금리 비교가 이뤄지는데 대부분 기업이 예상보다 높은 기안기금 금리에 놀라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산은에서 내려오는 기금성 대출은 정책금리라고 해서 확정금리 상품들이 많았다”며 “기안기금의 경우 금리가 시중금리 플러스 알파다 보니 기업들이 신청을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산은은 시중은행보다 기안기금의 금리를 더 높일 수 밖에 없는 속사정이 있다고 말한다. 금리를 낮춰 대출하면 자칫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논리다. 더불어 산은은 이번 기안기금은 기업이 보유한 기존 여신한도 외에 별도로 추가 한도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금리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기업들이 기안기금을 기피하는 이유는 또 있다. 금리 외에 기안기금 사용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는 지적이다. 특히 기안기금 지원조건 가운데 ‘기업 정상화 이익 공유’와 ‘도덕적 해이 방지’ 등은 기준과 적용이 주관적이어서 오히려 기업들을 옭아매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안기금을 받는 기업들은 반드시 금액의 최소 20%를 출자전환 해야 한다. 더불어 대주주와 경영진의 급여 등도 산은이 직접 통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조항들이 있다. 산은은 ‘리스크를 지고 대출을 해주는 대신 향후 경영 정상화로 회사의 가치가 높아지면 이익을 나눈다’는 명목에서 이런 조항들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업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미 금리를 시중보다 높인 만큼 산은이 리스크를 그게 지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더불어 중간에서 기금 신청을 대리하는 시중은행들도 산은의 자금 운영 방식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시중은행들도 산은의 기안기금 운영에 대해 의문스럽다는 입장이다. 시중은행들은 정부에 보조를 맞춰 정책금융 역할을 수행하면서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까지 유동성 공급을 하고 있는데 오히려 산은이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인다는 생각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금 공공성을 지킨다는 명분을 앞세운 나머지 현실과 동떨어져 기금이 운영되고 있다”며 “한계로 몰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기업만 신청할 수 있는 취약점이 있는데, 기업인들이 기간산업을 지키기 위해서는 꼭 한계까지 도달해야만 하는 것이냐”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산은 관계자는 “기안기금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예비용자금이며, 2차 방어선의 성격이 있는 자금”이라며 “기금 조성이 정부보증채로 돼 있어 기업에게 출자전환 등 타이트한 조건을 부여하는 것이고, 기업이 정상화 됐을 때 책임과 이익을 공유하기 위해서 출자전환 등의 조건을 붙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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