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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핵무기급 포이즌 필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1-04-15 08:00:17

이 기사는 2021년 04월 15일 08: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21년 2월 26일 미국 델라웨어 주 법원은 뉴욕증권거래소 상장회사인 윌리엄스(Williams Companies)가 경영권 방어장치로 설치한 포이즌 필(Poison Pill)을 무효로 하고 윌리엄스 이사회의 동 포이즌 필 설치 결의는 이사들의 충실의무 위반을 구성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같은 내용의 포이즌 필을 설치한 다수의 상장사들에 큰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기념비적 판결로 불린다.

포이즌 필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으나 윌리엄스 포이즌 필(이하 ‘윌리엄스 필’)은 극단적인 형태다. 코로나19 창궐에 즈음해서 주가가 크게 하락하자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공격에 대비해 2020년 3월에 고안되고 설치된 것이다. 법원은 윌리엄스 필을 ‘핵무기급 포이즌 필’이라고 불렀다.

재미있는 사실은 포이즌 필 설치를 경영진이 아닌 사외이사 한 사람이 제안했다는 것이다. 윌리엄스 필은 모든 형태의 주주행동주의에 1년간의 모라토리엄을 부과한다. 명분은 시장의 불확실성이 행동주의로부터 회사 경영진을 격리시킬 필요성을 발생시켰다는 것이다. 이사들은 3월 18일에 개최된 이사회에서 포이즌 필 초안을 검토하지도 않은 채 승인했고 익일인 19일에 전문가들의 설명을 듣고 공식화했다.

1년간 유효한 윌리엄스 필은 지분 5%를 취득한 주주가 있으면 발동된다. 여기서 5%는 직접 또는 간접 취득을 포함하는데 간접취득 개념은 증권법이 규정하는 범위보다 넓고 법률상의 공동보유자도 포함하며 울프팩도 해당된다. 또, A와 B가 공동보유 관계이고 A와 C가 공동보유 관계일 때 B와 C를 공동보유 관계로 본다(이른바 ‘daisy chain’). 단순투자 목적도 매우 좁게 정의했다.

이에 대해 장기투자 주주 두 사람이 2020년 8월에 각각 소송을 제기했다. 이사들의 충실의무위반이 이유다. 윌리암스 필은 1년 유효하지만 연장될 것으로 본 것 같다. 법원은 두 사건을 병합했다. 법원은 원고가 윌리엄스 필이 주주의 의결권과 주식을 매도할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주주들이 아닌 회사가 원고가 되어야 한다는 피고 측 주장을 배척했다. 나아가 법원은 윌리엄스 필이 주주간 소통을 제한한다는 점과 이사선임권을 제약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따라서 이 소송은 주주대표소송이 아닌 주주의 직접소송에 해당하므로 회사에 대한 제소청구는 요구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또, 피고들은 이 사건 포이즌 필이 일반적인 경영권 방어장치가 아닌 행동주의 헤지펀드에 대응하기 위한 장치이므로 경영권 방어에 관한 기존의 판례가 적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포이즌 필은 그 목적과 내용에 관계없이 언제나 경영진의 사적 이익 추구에 사용될 수 있다고 하여 원고측 주장을 배척하고 포이즌 필의 유효성을 기존 판례에 따라 두 가지 요건에 따라 심사했다. 첫째, 그 설치에 정당한 회사 사업 상의 목적이 있는가. 둘째, 경영권에 대한 위협에 합리적인 수준의 대응으로 도입되었는가. 이를 ‘유노칼(Unocal) 테스트’라고 한다.

법원은 행동주의의 위협이 경영권에 대한 위협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이사의 선임에 있어서 주주들이 잘못 판단할 위험이 있다는 논리는(이를 ‘we-know-better’ 논리라고 부른다) 인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행동주의는 언제나 경영권에 대한 위협이라고 보는 것은 주주들이 잘못 판단할 위험이 있다는 논리의 극단적인 형태라고 한다. 나아가, 법원은 행동주의가 단기실적주의를 조장하므로 그 자체 경영권에 대한 위협이라는 피고측 논리도 배척했다. 행동주의가 조장하는 단기실적주의가 회사경영에 대한 위협을 발생시킬 수는 있으나 가상적인 단기실적주의는 그렇지 않다고 보았다.

또,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급속히 주식을 매집해 5%를 초과할 위험이 있어 포이즌 필이 조기경보로 작동해 증권법상의 갭을 메꾸어준다는 피고들의 주장도 배척되었다. 미국 연방증권거래법은 5%를 넘은 후 10일 이내에 지분 변동을 공시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 10일 동안 비밀리에 울프팩이 결성될 수 있다. 피고들은 이 10일간의 갭을 메꾸는 것이 회사 사업상 목적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시장 상황이 불안정할 때 주식 저평가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그러한 주장이 타당하다고 해도 윌리엄스 필은 합리적인 수준의 대응이어야 한다는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였다고 판시했다.

2020년 초 코로나19 창궐 초기에 기업들이 갑자기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고 주가가 하락하자 다수의 미국 회사가 포이즌 필을 서둘러 도입했고 의결권자문회사들도 종래의 심사기준을 완화해서 일정 수준의 포이즌 필을 허용했는데 이제 그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백신의 출시로 상황이 호전되기 시작한 데도 이유가 있겠지만 이제 미국 자본시장이 종래와 같은 규칙에 따라 운영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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