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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상속세 점검]"불붙은 물납제 논쟁, 정부 산하 전담위원회 필요"③물납제 필수요건 투명한 '가치평가제도'... 현행 민간의존 가치평가, 공정성 논란 불식 불가

이민호 기자공개 2021-05-11 13:10:50

[편집자주]

‘이건희 컬렉션’이 삼성가(家) 상속과정에서 이슈화되면서 미술품 상속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알려진대로 국가와 지자체에 기증되는 작품 외 삼성문화재단 출연이나 유족 상속분이 여전히 남아 있어 미술품 상속 이슈는 현재 진행형이다. 더벨은 현재의 미술품 상속제도를 살펴보고 그 근간이 되는 시가감정의 개선방안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1년 05월 07일 14:2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미술품 물납제 도입을 위해서는 신뢰성 있는 가치평가(감정평가) 체계를 우선 확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현재 가치평가 환경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만큼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국가에 귀속할 만큼의 예술적·역사적·학술적 가치를 평가할 체계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미 상속세 대물변제 대상에 미술품을 포함시키고 있는 프랑스·영국·일본의 사례를 참고해 정부가 미술품 가치평가를 전담하는 위원회를 설치하거나 전문성을 갖춘 독립기관을 출범시키는 방안이 제시된다.

◇현재 유가증권·부동산 물납 한정...관리·처분 가능 여부가 핵심

미술업계는 상속세법에 대한 미술품 물납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미술품 물납제는 상속세 일부를 금전 대신 미술품으로 납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예술적·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미술품의 해외유출을 방지하고 국민의 문화 향유도 제고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세무업계 일각에서도 미술품 상속시 납세를 위한 조기처분에서 손실이 발생하거나 처분 불능으로 체납 가산금이 부과될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이유로 물납제 도입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미술품 물납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물납가능 재산의 범위를 정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73조에 미술품을 포함시키는 내용이다. 현재 기획재정위 심사가 진행 중이지만 뚜렷한 진전을 보지는 못하고 있다.

현행 세법은 상속세와 재산세에 대해 물납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지만 물납대상 재산을 유가증권과 부동산만으로 국한하고 있다. 국내 조세제도는 금전납부가 원칙이다. 다만 유가증권과 부동산의 가액이 상속재산가액의 2분의 1을 초과할 경우 물납신청이 가능하다.

현행 세법에서 물납가능 재산의 범위를 판단하는 핵심은 관리와 처분의 가능 여부다. 물납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것도 세무당국이 물납재산을 처분해 금전납부의 경우와 동일한 세액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 71조를 두고 해산사유가 발생하거나 회생절차가 진행 중인 회사가 발행한 유가증권 또는 지상권·지역권·전세권·저당권 등 재산권이 설정된 부동산 등에 대해 물납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가치평가 체계 제도적 확립 선행요건…소수 민간인력 의존

이런 기준에서 보면 미술품도 △제때 처분해 현금화할 수 있고 △처분할 때까지 납부 당시 가치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물납대상 재산에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국내 미술품시장은 이들 조건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먼저 국내 미술품시장 규모 자체가 작은 문제가 있다. 국내 화랑·경매회사·아트페어 등을 모두 포함한 미술품 거래규모는 연간 4000억원 수준으로 글로벌시장과 비교해 작다. 미술품 처분을 위해서는 갤러리 등 브로커를 통한 수의계약이나 경매회사를 통한 경매에 부쳐야 하지만 시장수요가 적으면 제때 처분이 어려울 수 있다. 처분하지 못하면 보관 등 발생하는 비용이 세무당국에 전가되며 납부 당시 가치가 유지되지 못할 위험도 있다.

미술업계 주장대로 국가기관으로 귀속돼 전시용으로 쓰인다 해도 전시가치가 있느냐의 문제가 남아있다. 이는 물납대상 미술품의 범위를 구체화해야 할 필요성과 직결된다. 전시가치가 없는 미술품은 납부하더라도 결국 처분해야 하는 만큼 전시 가능한 예술적·역사적·학술적 가치 여부를 판단할 별도의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미술품 가치평가 체계가 제도적으로 구축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물납제는 금전을 미술품으로 대납하는 개념인 만큼 가치평가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공정성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 미술품 가치가 실제보다 높게 매겨지면 납세자의 부담도 그만큼 경감되기 때문이다.

미술업계와 세무업계는 국내 미술품 가치평가가 소수 인력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는 환경을 한계로 지목하고 있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이 소장품 가치평가를 진행할 때도 민간 감정단체 3곳에 의뢰할 만큼 세무당국이 미술품 가치평가가 가능한 별도의 위원회를 두고 있지 않으며 정부가 인정하는 전문 독립기관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감정시가가 기준이 되는 현행 미술품 감정평가수수료 체계는 우려를 더하는 요인이다. 국내 미술품 감정평가수수료는 감정시가의 1% 수준으로 매겨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수료 기준이 감정시가인 것 자체는 해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국내 감정평가 시장이 불투명한 만큼 감정평가사의 수수료 수입 극대화와 납세자의 절세 유인으로 감정시가를 높게 잡을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프랑스·영국·일본 미술품 물납 인정…국내 정부 산하 전담위원회 필요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10월 발간한 관련 입법·정책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상속세에 미술품 물납을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국가는 프랑스, 영국, 일본이 대표적이다. 프랑스의 대물변제제도(La Dation en Paiement), 영국의 대물변제제도(AiL·Acceptance in Lieu), 일본의 등록미술품제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프랑스가 상속세·증여세·공유세·재산세에서 미술품 물납을 비교적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반면 영국과 일본은 상속세에만 한정하고 있는 점은 다르다.

이들 국가는 공통적으로 정부부처가 주도해 전문가로 구성된 독립 위원회로부터 물납대상 미술품에 대한 가치평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예술적·역사적·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미술품에 대해서만 물납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5명의 가치평가 전문가로 구성된 부처간 위원회인 대물변제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영국은 공공기관인 영국예술위원회(Art Council England) 산하 10명의 자문위원으로 구성된 대물변제심의위원회(AiL Panel)에 심의를 요청한다. 일본의 경우에도 문화청 장관이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한 이후 등록미술품 부합 여부를 결정한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미술품 물납제 도입에 앞서 이들 국가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물납대상 미술품의 가치평가를 전담하는 위원회를 설치하거나 정부가 인정하는 독립기관에 이런 권한을 위임하는 방안이 제기된다.

미술업계 관계자는 “미술품을 물납대상으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가치평가 체계화가 선행돼야 한다”며 “가치평가에 신뢰성이 확보될 때 물납제 도입에 따른 과세 형평성 논란도 불식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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