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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퇴직연금 시장]뜨거운감자 '디폴트옵션'…한발 물러선 증권업계①디폴트옵션에 원리금보장형 상품 포함 사실상 확정…향후 디테일 논의 변수

이돈섭 기자공개 2021-08-02 07:58:53

[편집자주]

퇴직연금 시장이 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자동적으로 포트폴리오가 구성되는 디폴트옵션(사정지정운용) 제도 도입이 가시화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는 확정급여(DB)형 제도를 도입한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은 적립금 운용위원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관련 제도들이 시장에 가지고 올 변화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상황을 분석해 본다.

이 기사는 2021년 07월 29일 16:10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 제도가 도입될 수 있을까. 디폴트옵션은 적립금 운용 방식을 명시적으로 지정하지 않으면 사전에 지정한 상품으로 운용하게 하는 제도다.

증권업권이 디폴트옵션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은행·보험업권 주장을 대폭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디폴트옵션 운용상품 군에 실적배당형 상품만을 포함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 발자국 나아가 원리금보장형 상품도 포함할 수 있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문제는 디테일이다. 은행·보험업권은 어설픈 절충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디폴트옵션이 도입되면 퇴직연금 시장의 고질병으로 지목되는 낮은 수익률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모든 금융업권이 보고 있다. 하지만 퇴직연금 적립금을 누가 가져와서 운용하느냐에 따라 각 업권의 수익이 좌우되기 때문에 각자가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해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약 256조원이다. 향후 5년 뒤에는 350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 케케묵은 디폴트옵션…원리금보장형 일부 포함 대안 주목

박화진 고용노동부 차관은 지난달 2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주최로 열린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 질의과정에서 "디폴트옵션 운용상품 군에 예·적금 상품 등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추가하는 게 어떻겠는가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린다"고 언급했다.

박 차관의 언급은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 관련 여야 간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으면서 제도 도입 자체가 차일피일 미뤄진 데 따른 고육책 성격이 짙다. 현재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 관련 법안은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 안과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 안이 대치하고 있다. 윤 의원 안은 디폴트옵션 운용상품 군에 원리금보장형을 포함케 한 반면, 안 의원 안은 실적배당형만 포함케 했다.

윤 의원 안과 안 의원 안은 각각 은행·보험업권과 증권업권 지지를 받고 있다. 증권업권은 디폴트옵션 제도를 도입하는 이유가 퇴직연금 적립금 수익률을 높이는 데 있는 만큼, 운용상품 군에 원리금보장형을 추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반면 은행·보험업권은 금융소비자 선택권 보호를 위해 원리금보장형과 실적배당형을 골고루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은 19대 국회부터 다수의 법안 발의를 통해 시도됐지만 이렇다 할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회기 종료로 번번이 무산돼 왔다. 퇴직연금 제도 전체를 주관하는 고용노동부 안에서도 저성장·저금리 상황을 고려해 디폴트옵션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으면서, 증권업계를 필두로 이번 21대 국회에선 반드시 통과됐으면 좋겠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증권업권 지지를 받고 있는 안 의원의 여당 안은 고용부 협의를 통해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부 관계자는 "전문가 간담회 등을 통해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고, 디폴트옵션 운용상품 군에 원리금보장형을 포함하지 않는 것이 제도 도입 취지에 맞다는 의견은 전달했다"면서 "원리금보장형 포함 안과 비포함 안, 일부 포함 안을 모두 검토한 것은 맞다"고 언급했다.

그래서 금융업권에서는 '원리금보장형 일부 포함 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나재철 금투협회장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원리금보장상품도 디폴트옵션 상품 유형에 포함한 법안을 조속히 통과 시켜 달라"고 언급한 것 역시 제도 도입을 위해 한 발자국 물러선 증권업계 분위기를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다. 지난달 국회 법안심사소위에서 박 차관의 발언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남은 문제는 해당 절충안이 은행·보험업권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여부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디폴트옵션 운용상품 군에 원리금보장형을 100% 포함하자는 것이 보험업권의 주장이었지, 일부에 한해 적용하자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국회 관계자는 "결국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 자체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 증권업계 "도입 위해 은행·보험업권 주장 일단 받아들여야"

은행·보험업권의 한치 양보없는 태도는 관련 시장 규모를 보면 납득이 된다. 지난해 말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약 256조원. 2015년 말 126조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5년 만에 2배 이상으로 확대했다. 5년 후 350조원 이상으로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퇴직연금 적립금 절반 이상은 은행·보험업권 원리금보장형으로 운용되고 있어, 운용에 제한이 걸리면 수익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실적배당형 상품은 중장기적으로 운용해야 의미 있는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데, 규모가 작은 사업장의 경우 근속년수가 짧고 고용이 불안하기 때문에 원리금보장형 상품이 오히려 적합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바통은 가입자에게 넘어간다. 금융업계 이해관계에 따라 제도를 손볼 것이 아니라, 가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안을 선택하게 하자는 제안이다.

지난달 말 법안심사소위 당시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이 "한노총 민노총이 다 찬성하게 되면, 이 법은 바로 속전속결로 들어갈 수 있다"면서 "노동자를 대표하는 기관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찬성을 해 줘야 한다"고 말한 것이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국내 양대노총 의견 역시 하나로 모아지지 않으면서 여야 논의가 평행선을 달리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노총은 예전부터 실적배당형 중심의 디폴트옵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민주노총은 회의적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디폴트옵션 제도 하나만 보고 찬성, 반대를 따질 수 없는 문제"라며 "전 사업장 퇴직연금 가입 의무화 문제와 충당금 관련 제도, 기금형 운용제도 등 관련 시장 제도 전체를 따져본 뒤에야 근로자 권익이 높아질지 의견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규모 사업장에도 퇴직연금 가입이 의무적으로 이뤄지고, 관련 제도로 애먼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완충장치가 구축돼야 논의에 임할 수 있다는 것. 이 관계자는 "금융기관 주도로 퇴직연금 제도 개선이 이뤄지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면서 "이러한 내용을 당국과 국회에 전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현재 국회 환노위와 고용부 등은 민주노총으로부터 공식 답변을 받지 못한 상황이다.

증권업계는 최악의 경우 은행·보험업권 요구를 100% 그대로 받아야 한다는 데 입을 모은다.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어떤 식으로든 일단 디폴트옵션 제도가 시장에 도입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제도에 하자가 있다면 논의 등을 통해 개선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으로 적립금 운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실적배당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 환노위가 적극 논의에 나선다면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이 급물살을 탈 수 있다. 하지만 환노위에 계류된 안건이 상당수인데다, 내년 대선 정국 영향으로 논의가 진전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달 말 법안심사소위에서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은 "퇴직연금 운용으로 금융기관이 1년에 1조 가까이를 가져간다"며 "(그 이익을) 노동자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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