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1년 11월 22일 07:4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자꾸 알람을 듣지 못해 고민이다. 잠귀가 밝은 편인데 요즘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소리를 화재경보음 수준으로 해뒀으니 볼륨 문제는 아니고. 시간별로 알람을 스무 개 넘게 맞춰놔도 효과가 없다. 청력이 이상해졌나 걱정될 지경이지만 작은 카톡 소리에는 또 잘만 눈이 떠진다. 환장할 노릇이다.아마 범인은 ‘스누즈 버튼(snooze button, 잠시후 다시 울림)’인 것 같다. 수면 중인 뇌는 중요한 자극인지 아닌지 걸러가면서 반응을 결정한다고 한다. 일상적인 소음을 무시하고 잘 수 있는 것도 그래서다. 아무튼 알람이 울릴 때마다 이 버튼을 너무 눌러댔더니 머릿속에서 못들은 척해도 되는 소리로 분류된 모양이다. 오래 쓴 알람 사운드를 바꾸게 생겼다.
두산그룹이 두산건설 경영권을 끝내 사모펀드에 넘긴다. 두산건설을 두고는 10년도 더 전부터 경고 신호가 시끄러웠지만 두산가(家)는 이렇다할 대응을 꺼려왔다. 소비재에서 시작해 중공업으로 체질을 바꾼 두산의 역동적 역사를 생각하면 의외의 망설임이다.
두산은 1896년 문을 연 '박승직 상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면직물과 화장품을 주로 팔았다. 그러다 아들 박두병 초대회장이 1952년 OB맥주를 사들이면서 첫 변신, 1990년대에는 페놀 유출 사태로 비난 여론이 들끓자 다시 OB맥주를 매각했다. 이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과 고려산업개발, 대우종합기계를 차례로 인수해 환골탈태를 이뤘다.
시류에 재빨리 대처한 게 백년생존의 비결이지만 두산건설에 대해서는 유독 태도가 달랐다. 박용만 회장은 2010년 두산건설의 자금악화설로 두산그룹주가 일제히 급락하자 트위터에서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ㅋㅋㅋ”라며 우려를 일축했다.
그 뒤로 2조4000억원에 이르는 돈이 두산건설로 빠져나갔다. 2016년에는 정지택 전 두산중공업 부회장이 추가 지원은 없다고 못 박았으나 3년 뒤 또 3000억원을 지원해줬다. 조금만 더, 한 번만 더. 스누즈 버튼을 수 차례 누르는 동안 위기에 둔감해졌다. 부실이 번져 그룹 전체를 흔들었다.
미련의 배경에는 오너일가의 애정이 있다. 두산건설은 박정원 회장이 그룹 총수가 되기 직전까지 일했던 회사다. 당시 그는 레미콘 제조등으로 사업 다각화를 꿈꿨다. 고비만 넘기면 알짜 계열사로 거듭날 수 있다는 기대가 발목을 잡았다.
처음 경고음이 났을 때부터 귀를 기울였더라면 어땠을까. 후회를 떨치기 어렵다. 평생 시간과 싸워온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알람시계가 없느니만 못한 것이 스누즈 버튼"이라고 했는데 그의 말대로다.
이번 매각은 시기도 절묘하다. 두산의 DNA를 바꾸는 결단을 책임졌던 박용만 회장이 최근 그룹에서 완전히 퇴장했다. 박정원 회장과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 중심의 4세 체제에 진짜 막이 오른 셈이다. 다시 변곡점, 두산이 잠에서 깰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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